2018/2018_생활2018.11.13 06:23


요새 일본 드라마를 많이 보고 있다. 한국 드라마보다 짧아서 몰아 보기가 좋다. 일본 특유의 과한 연기에도 적응이 된 것 같다. 9월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아래에 쓰고 나니까 이것이 물리적으로 가능한 시간이었나 싶다.


Yui Aragaki와 Masato Sakai가 나오는 것 위주로 한자와 나오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아빠와 딸의 7일간, 코드 블루 1-2-3, 전개걸, 리갈 하이 1-2, 하늘을 나는 홍보실, 결혼 못하는 남자, 드래곤 사쿠라, 마이 보스 마이 히어로, 파견의 품격, 5시부터 9시까지 나를 사랑한 스님, 관료들의 여름, 닥터 린타로, 노다메 칸타빌레. 아마 적지 못한 드라마도 있을 것 같다. 집중해서 몰아 보니까 작품 내용은 기억에 더 잘 남는 것 같다.


ONE OK ROCK이라는 일본 그룹의 음악도 많이 듣고 있고, 여름에 홋카이도에 갔다온 이후 아무래도 일본에 약간 취해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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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숑
2018/2018_머리2018.11.13 05:35


지난 글의 연장선 상에서 생각이 파생되었다. 잘 모르는 분야여서 글쓰기가 조심스럽지만 궁금함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남긴다.


([3] 보통은 자기 주장이 비교적 약하고 연구에 진중하며 조심성이 많은 사람들이 연구의 오용을 우려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은 전문가에게 강한 주장과 근거를 원하고요. 그러다보니 연구자 세계에서 높게 평가되는 분들과 대중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분들에 간극이 조금 생기는 것 같고요.)


우리 회사, 한국은행, KDI, IMF 등 주요 기관에서 경제성장률 등을 예측할 때 구간추정치(interval estimate)가 아닌 점추정치(point estimate)를 제시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단순한 엑셀 산식을 통해서든 복잡한 동태적 거시경제모형(DSGE)을 통해서든 2.7%와 같은 구체적인 경제성장률이 도출되기 위해 고용, 무역, 재정 등등 경제의 핵심 부문이 고려되었을 것이다. 2.7%라는 숫자의 도출에는 내년도에 어떻게 될지 정확히는 알 수 없는 각각의 부문에 대한 가정이 상당 수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에 변화가 생기면 2.7%라는 숫자도 변동할 것이다.


따라서 2.7%라는 점추정치를 제시하는 것보다는 주요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2.6-2.8%와 같은 구간추정치를 제시하는 것이 조금 더 중립적인 자세를 견지하면서 차분하고 건전한 논의를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어려운 모형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는 전혀 없다. 다만 고용에서 부정적, 무역에서 긍정적 등등 핵심 요인을 분해하여 여러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만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강력한 노벨경제학상 후보이기도 한 Charles Manski도 비슷한 논의를 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Policy Analysis with Incredible Certitude"라는 논문에서 Manski는 덜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더 강력하게 말하는 정책 연구의 여러 사례와 그 이유(conventional certitude, dueling certitudes, conflating science and advocacy, wishful extrapolation, illogical certitude, and media overreach)에 대해서 설명한다.


가정이 강하면 강한 주장을 할 수 있지만 그만큼 신뢰도가 떨어진다. 가정이 약하면 신뢰도 높은 주장을 제시할 수 있지만 그만큼 주장의 강도가 약해진다. "덜 확실하지만 더 솔직한 분석"과 "더 확실하지만 덜 솔직한 분석"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을 찾기가 쉽지 않다. 나는 이 중에서 무엇이 더 옳다고 답을 내릴 수 있는 수준에 있지 않다. 다만 덜 확실하지만 더 솔직한 분석을 제시하는 과학자들의 연구를 조금 더 잘 이해하고 조금 더 신뢰하는 의사결정자가 되어 최선의 판단을 내리겠다는 생각을 한다.


Posted by 고숑
2018/2018_가슴2018.11.06 11:54


대학원에서의 시간은 나에게 "좀생이"로서의 가능성을 다분히 보여주었다. 식별 전략이 맞네 틀리네 등등 단지 학계 사람들 몇몇만 관심 가질 이야기로 자위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자각할 때면 불현듯 불안해진다. 세상을 글로 먼저 마주하는 특수한 세계이다. 자꾸 좀생이가 되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느낌이 싫어서 당장은 학교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주장이든 선동이든 자기 생각을 뒷받침하는 좋은 논문 겨우 하나 찾아서 "이것 보아라. 이 글도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하는 것만큼 편협하고 현실 감각 부족한 것도 없다. 물론 제대로 된 근거 하나조차도 찾지 않으면 무식한 사람이 되겠지만, 불완전한 활자에만 천착하면 비슷한 급의 지리멸렬한 사람이 될 뿐이다.


경제학과 대학원생들의 여러 정신 질환을 조사한 보고서가 있는데, 나는 아래 항목에 해당하는 사람인 것 같다.

Only 26% of Economics students report feeling that their work is useful always or most of the time, compared with 70% of Economics faculty and 63% of the working age population.


정답뿐만 아니라 결론도 없는 연구는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정답은 없을지언정 결론은 명확한 현실로 이제는 돌아올 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원래부터 상당히 세속적인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그 감각을 더 살리고 싶다. 김우재윤태진 교수님의 칼럼을 곱씹어 읽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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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09. 추가.


선배들과의 대화.


[1] 쪼잔함이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말씀에 충분히 공감합니다. 그 사소함까지 집요하게 파고 드는 이곳의 문화를 무척 좋아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학교 밖에서 그 쪼잔함을 보이면 그 순간 그 세상에서는 도태된다는 것에 있지요. 학계의 전문용어를 쓰고 학계의 세심한 태도를 밖에 보여주는 순간 그 사람이 어떤 취급을 당할지는 형님도 충분히 인지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근본적으로 학교에 있고 싶은 사람이 아니니까 고민이네요. 


의사 결정에서 좋은 연구가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할까요? 과연 항상 우선순위에 둘 수 있을까요? 심지어 그 연구가 정답이 아니라면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그에 따른 책임은 누가 어떻게 져야 할까요? 연구자들은 연구가 의사 결정에서 정말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더 큰 난관과 장애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독립 단위로 활동하는 연구자와 조직 단위로 활동하는 회사원은 관점이 본질적으로 다른 것 같습니다.


분명 서로 역할이 다르겠지요. 다만 사람은 자기중심적이죠. 그래서 서로의 역할에 대한 존중보다는 물어뜨는 것이 사회의 기본 생리인 것 같고요. (현실도 모르는 놈이 떠든다 vs.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놈이 떠든다) 두 입장을 모두 이해하고 싶어서 공부를 했지만, 여기에서 시간을 보내니까 앞으로 어떤 스탠스를 잡아야 되는지 더욱 헷갈려집니다.


[2] "시장을 믿는다." 시장, 경쟁, 자유, 자생적 질서, 제가 성역처럼 여기는 원칙이고 저 또한 이 문장을 굉장히 신뢰하지요. 다만 경제학도로서는 기본적인 이 개념 역시 말을 꺼내는 순간 밖에서는 시장만능주의자라든지 신자유주의자라든지 하는 프레임으로 싸잡아 비판 받는 것을 자주 목도합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우매하다고 비판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시장원리가 세상을 관통하는 유일무이한 원리가 아닐 수 있으니까요.


[3] 보통은 자기 주장이 비교적 약하고 연구에 진중하며 조심성이 많은 사람들이 연구의 오용을 우려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은 전문가에게 강한 주장과 근거를 원하고요. 그러다보니 연구자 세계에서 높게 평가되는 분들과 대중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분들에 간극이 조금 생기는 것 같고요. 둘 다 잡으면 좋겠지만 Krugman 같은 사람조차 비판 받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타협이 필요해 보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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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숑
2018/2018_가슴2018.11.05 07:57


졸업논문 중 두 번째 장이 한 저널에서 개정(revision) 요청을 받았다. 논평을 보는데 몇몇은 수준이 상당하다. 최대한 숨기려고 했던 약점을 정말 잘 찾아서 지적하고 있다. 개정에 반 년이라는 시간을 줄 정도로 지적이 많아서 최종적으로 출판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어렸을 때부터 자존심이 셌던 나는 싫은 소리를 들을 때면 혼자 분해하며 자주 울었다. 그래서 사람과 그 사람의 일을 별개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세상은 어쩔 수 없이 싫은 소리가 오가는 곳인데 그럴 때마다 혼자 속앓이를 하면 어떻게 버티냐는 것이었다. 프로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프로는 내 작업에 대한 상대방의 비평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나 역시 상대방의 작업을 객관적으로 비평하며, 이 비평을 그 사람에 대한 비평이 아닌 비평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나는 이 말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공연히 트집만 잡을 뿐이다. 프로가 되면 그렇게 하기가 더욱 어렵지 않을까. 자신의 작업에 자신의 혼을 불어넣는 것이 프로 아닌가. 그러면 나 자신과 내 작업 간의 경계가 더욱 희미해지고 그러할수록 내 작업에 대한 비평은 나에 대한 비평으로 인지되기 쉽지 않을까.


나의 일, 나의 연구, 나의 가족, 나의 친구, 나의 외모, 나의 성격 등등 이들 중 어디까지가 내가 생각하는 진짜 나의 영역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어찌 되었든 나는 이들에 대해 남으로부터 싫은 소리 듣는 것을 여전히 무서워하고 두려워한다. 군대에도, 회사에도, 대학원에도 있었으니 싫은 소리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을 법도 한데 나는 아직도 이것에 대한 내성이 그리 강하지가 않다. 웃기는 사실은 그렇게 싫은 소리에 내성이 강하지 못하면서도 또 겉으로는 최대한 의연한 척 태연한 척 군다는 것이다. 화초인 주제에 잡초처럼 군다.


싫은 소리가 나의 객관적 평가에서 비롯되었다면 이것을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텐데 나는 그렇게까지 대범하지는 못하다. 혼자 속앓이를 많이 한다. 물론 싫은 소리를 성장의 밑거름으로 승화시키려고 스스로 애쓰는 편이다. 그렇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싫은 소리에 고스란히 담긴 나의 약점과 한계를 마주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나에게 화가 나고 싫은 소리를 한 상대에게도 나쁜 마음이 생긴다. 프로가 되고 싶은데 여전히 프로가 되지 못하고 있다. 싫은 소리에 초연해지고 항상 중심을 잘 잡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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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숑
2018/2018_머리2018.10.31 06:56


실증경제학 논문은 상당히 정형화된 틀을 따른다. 크게 7가지 목차로 구분할 수 있다.


1. 서론(Introduction)

 - 서론이 서론이 아니다. 사실상 모든 내용을 함축하여 전달한다. 독자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데 매우 중요하다.


2. 기존 문헌(Literature Review) 및 배경 설명(Background Knowledge)

 - 이 연구와 유사한 주요 문헌들을 소개하고 동 연구가 기존 문헌을 어떻게 보완하는지 설명한다.

 - 사회제도적 맥락 등 동 연구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배경 지식을 간단하게 요약한다.


3. 데이터(Data) 및 샘플 구성(Sample Construction)

 - 어떤 데이터를 사용했는지 소개한다. 특별한 데이터라면 이 점을 강조하게 된다.


4. 실증 전략(Empirical Strategy)

 - 인과관계를 어떻게 밝힐 것인지 계량 분석 방법에 대해서 논한다.


5. 실증 결과(Empirical Result) 및 강건성 검증(Robustness Checks)

 - 결과를 도출하고, 이 결과가 여러 다른 위험 요소로부터도 강력히 방어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6. 메커니즘 탐구(Mechanism)

 - 이 인과관계가 어떤 채널을 통해 나타나는지 여러 가설 중 강력한 것들을 제시한다.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


7. 결론(Conclusion)

 - 연구 요약, 정책적 시사점, 앞으로의 과제 등에 대해 말한다.


논문의 계량적 측면을 평가함에 있어 기존에는 4번의 타당성 검증에 초점이 맞추어졌다면 최근에 잘 나가는 AEJ 논문 등을 보면 4번뿐만 아니라 추론의 영역인 6번의 설득력에도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 같다. 좋은 전략으로 어떠한 실증 결과를 도출한 후 이것이 "왜" 나타났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도 제시하기를 원한다. 대체로 연구자들은 4번과 6번에 많은 공을 들인다. 그러나 연구를 활용하는 정부 등지의 사람들은 2번을 더 필요로 할 때가 많다. 물론 개인적인 느낌이다.


오늘 레프리 리포트(Referee Report)를 하나 작성했다. 나의 잘못은 안 보여도 남의 잘못은 잘 보이는 법이다. 다만 성의를 보인 논문에 대해서는 한 번 정도 기회를 더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적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논문이 더욱 발전할 수 있고, 해당 저널에서 최종 리젝을 받더라도 다른 저널에 투고할 수 있을 정도로 논문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


쌀쌀한 비가 내린다.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


18.11.04. 추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면서 사회에도 중요한 "연구 주제"가 더 중요한가, 아니면 연구 주제를 제대로 분석하는 "인과관계성 검증(식별 전략)"이 더 중요한가? 연구를 평가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두 축이다. 무엇이 더 중요한가? 데이터의 한계 등으로 생각보다 많은 경우에 있어 둘은 상충된다. 이와 관련하여 가슴에 참 와닿는 문구를 보았다.


 - Noneconmetrician statisticians underemphasize good identification strategies in observational studies, but econometricians way overemphasize it. Step one should always be posing a scientifically interesting research question. How one goes about answering it should always be step two, not step one. I'd rather read a paper that offers suggestive evidence with messy identification on an interesting question than one that offers clean identification on an uninteresting question. I'd also be more interested in a paper that gets a precise enough estimate with an imperfect identification strategy than one that gets clean identification but enormous variance.


 - I am generally sympathetic to the idea that we emphasize too much on endogeneity. Of course, causality matters a lot and it is great to see evidence from a good natural experiment. However, I'd personally enjoy a paper that summarizes the relationships in the data, and presents a variety of theories that are consistent with these relationships.


Posted by 고숑
2018/2018_머리2018.10.27 07:57


사립유치원의 회계 투명성과 관련하여 많은 이야기가 오가는 상황이다. 고려대 이한상 교수님의 칼럼이 이를 잘 보여준다. 자연스럽게 보육/육아정책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원래부터 "워킹맘"은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소재이기도 했다. (글 1, 2, 3, 4, 5)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성별 임금격차와 가구 내 육아 부담의 비대칭성 문제"라는 제목의 (학술논문은 아니지만) 시사성 있는 보고서가 재정포럼 2018년 10월호에 실렸다. 최 박사님 보고서에는 82년생 김지영의 애환을 그래프로 그려본 내 잡문도 소개되어 있다.


박사님은 글 말미에 아래와 같은 정책적 시사점과 주의점을 언급하신다.


 - 첫째, 출산에 따른 성별 임금격차가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면 보육정책을 통한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제고 노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제고는 보육정책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 둘째, 가구원 중 1인이 육아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사용해야 하는데 이 일차적 책임을 많은 경우 여성이 부담하고 있다. 이 부담을 함께 나누어야 하는 남성은 오히려 결혼과 출산이라는 사건에 대해 여성과 반대로 노동시간을 늘리는 방향으로 대처하고 있었다. 결국 이 문제는 현재 육아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다른 가구 구성원(기혼 남성근로자)이 보다 많은 시간을 육아에 투여함으로써 해결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노동시간의 감축이 필요하다. 즉 독박육아를 막기 위해서라도 만성화된, 정규 근로시간 종료 후 2시간 이내의 초과근무는 사라져야 한다.


 - 셋째, 보육 및 육아에 있어 정부의 재정지원을 고민함에 있어 그 초점을 육아비용을 줄이는 데 두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분포를 남녀 간 대칭적으로 만드는 데 두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 내놓은 임금 삭감 없는 육아기 근로시간 1시간 단축 정책은 의미가 있다. 만약 본 연구에서의 분석처럼 하루 중 병목 현상이 퇴근 전 혹은 퇴근 직후 1-2시간에 집중되고 있고 이것이 취학 아동보다는 미취학 아동에게서 더 자주 관찰되는 현상이라면 노동시간을 최대한 유연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위원회는 육아휴직을 남녀 공동 사용하도록 법을 개정하겠다고 했는데 육아휴직의 경우 오히려 남녀가 공동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서로 교차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타당할 수도 있다. 


 - 결혼과 출산 이후 여성의 가사와 육아 시간이 남성보다 더 늘어난다는 연구결과를 해석함에 있어 주의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그 원인을 해석함에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현상을 남녀 간 역할에 대한 차별적 사고의 결과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기혼 남성이 미혼 남성에 비해 근로시간을 크게 늘린다는 점에서 결혼과 육아에 따른 가구의 비용 상승에 대한 자기보험의 선택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박사님의 정책적 제안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


일단 "자기 필요에 의한 야근이 왜 문제입니까? 좋은 일꾼이 필요한 회사와 그 회사에서 성공하고 싶은 사람은 무슨 죄입니까?"라고 물어보는 자발적 노예 성향이 다분한 나로서는 둘째 제안에 물음표를 붙이게 된다.


셋째 제안은 남편의 육아 독려를 목적으로 부부 간 육아휴직을 교차 사용하자는 것이다. 일견 타당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과연 원하는 효과를 가져올지는 확실한 판단이 서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는 분명히 다르고, 서로 다르기 때문에 시간 사용에서 비대칭이 발생한 것일 수 있다. 인위적으로 구조화된 제도의 대칭성이 과연 원하는 결과를 낳을 것인지 의문이다. 따라서 평균적인 우리나라 부부가 이 제도를 어떻게 활용할지 예측이 잘 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아빠만 쓸 수 있고 엄마에게 양도할 수 없는 스웨덴의 유급 육아휴직제도가 부부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한 AEJ 논문이 있다. 놀랍게도 동 논문은 이 제도가 결혼 초기 이혼률을 높였다는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이 제도의 취지는 엄마 대신 아빠가 육아를 하고 이를 통해 엄마가 계속 일을 하게 돕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의도와 다르게 현실에서는 엄마가 무급을 감수하고서라도 육아를 하는 선택을 했다. 따라서 동 제도는 가구 총소득을 줄였고, 이것은 이혼률을 증가시키는데 일조했다. 물론 아이슬란드 사례를 이용하여 비슷한 제도를 연구한 논문은 상반된 결과를 도출한다는 점에서 해석에 주의를 요한다. 우리나라는 어떠할 것인가?


Posted by 고숑
2018/2018_머리2018.10.26 03:28


2018-2019 잡마켓 논문들을 "흝어" 보고 있다. 매년 이맘때쯤 즐기는 취미이다. 논문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하나하나를 아주 꼼꼼하게 보지는 않는다. 졸업하게 되면 한동안 즐길 수 없을 취미 혹은 앞으로 잊혀질 취미가 될 것 같아서 올해는 더 애착이 간다.


관심 있게 본 논문들을 아래에 간단히 소개했다. 계속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Mingyu Chen. The Value of US College Degrees in Foreign Labor Markets: Experimental Evidence from China

"중국에서 미국 학부 졸업장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라는 주제로 27,000개의 가짜 이력서를 직접 제출해서 계량적 증거를 탐구한 논문이다. 예전에 흑인/백인 이름으로 가짜 이력서를 회사에 제출했던 실험과 유사하다(Bertrand & Mullainathan, 2004). 조기유학 열풍이 있었다가 점점 사그라들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참고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내가 알기로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가짜 이력서 보내면 업무방해죄로 처벌 받는다.


Jaime Arellano-Bover. Career Consequences of Firm Heterogeneity for Young Workers: First Job and Firm Size

청년층의 첫 직장이 대기업인지 중소기업인지에 따라 커리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는 논문이다. 동 논문은 뱀 머리보다는 용 꼬리의 길을 택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인과관계 측정을 위해 Bartik IV를 차용하였다. 논란이 많은 도구변수(IV) 분석이지만 그래도 정형화된 도구변수 중 하나가 바로 Bartik IV이다.

(The IV approach uses variation in the composition of regional labor demand across time and space. It relies on the notion that the idiosyncratic hiring shocks of a small number of large employers can impact regional labor demand composition. Expansions or openings of new operations will make large firms hire batches of inexperienced workers differentially across years. Depending on when and where a young worker enters the labor market, she will be exposed to different propensities to join larger or smaller firms.)


Yiwei Chen. User-Generated Physician Ratings - Evidence from Yelp

많은 환자들이 병원 방문 후 Yelp에 리뷰를 남기는데 이것이 의료서비스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한 논문이다. 데이터 수집을 위해 머신 러닝 기법을 이용하였고, 영리하고 독특한 IV를 사용하여 내생성 문제를 완화하였다.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주제, 테크닉 등 여러 측면에서 매우 압도적이다.


Y. Joy Chen & Sitian Liu. Mate Preferences and House Prices in China: Evidence from Online Mate Search

잡마켓 논문이 아니어서 덜 다듬어지기는 했지만 두 학생이 같이 공저한 논문 중에는 중국에서 짝을 찾는데 있어 부동산이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엄한 현실을 보여주는 글이 있다. 내 또래 남자들이 느끼는 압박감을 잘 보여준다. 집을 가진 남자가 유리하다는 결론이다. 그밖에도 두 학생은 배우자 동의 없는 이혼이 끼리끼리 매칭을 야기한다든지 명나라 관료의 사회경제학적 기원을 밝힌다든지 등등 상당히 재미있는 주제의 논문을 많이 쓰고 있는 것 같다.


Kieu-Trang Nguyen.

우연히 홈페이지를 둘러보게 되었다. 내 졸업논문 첫째 장을 작성하는데 영감을 준 사람이라 기억하고 있다. 연구 능력이 출중한 것 같다.


Lauren Russell. Better Outcomes Without Increased Costs? Effects of Georgia's Public College Consolidations

조지아 주에서 있었던 대학 통합이 학생 등록률 및 졸업률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한 논문이다. 나와 비슷한 스타일로 논문을 쓴다는 느낌이었다. 다른 MIT 학생들과 비교할 때 특출난 논문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문제의식과 시사성이 좋아 보인다. 이 논문을 읽으면서 나는 다른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우리나라의 경우 몇몇 지방 대학이 주요 거점 국립대로 통합되면서 갑자기 "신분 상승"을 경험한 학생들이 있다. 이 사건을 이용하여 명문대 효과(신호 효과)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SCM 방법 등으로 분석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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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16. 추가.


Valentin Bolotnyy. Why Do Women Earn Less Than Men? Evidence from Bus and Train Operators

성차별의 주요 이슈 중 하나인 남녀 임금 격차의 원인을 탐구하면서 여성이 노동시간 유연성에 가치를 조금 더 주는 행태가 이러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내가 쓰고 있는 82년생 김지영 논문, Goldin & Katz 논문 등과 이 상당히 유사하다.

Mechanically, the earnings gap can be explained in our setting by the fact that men take 48% fewer unpaid hours off and work 83% more overtime hours per year than women. The reason for these differences is not that men and women face different choice sets in this job. Rather, it is that women have greater demand for workplace flexibility and lower demand for overtime work hours than men. These gender differences are consistent with women taking on more of the household and childcare duties than men, limiting their work availability in the process.

최근 이수역 사건이 부각되면서 남녀 차이 논쟁이 불필요한 방향으로 전개된다는 인상을 받는다. 어느 한 극단으로 휩쓸리기 쉬운 분위기를 경계한다.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이슈라는 점을 잘 인지하고 관련 논의를 근본적으로 풀어가는 것이 내가 갖추어야 할 자세라고 생각한다.


Posted by 고숑
2018/2018_머리2018.10.22 21:59


9시 등교제와 관련한 논문 한 편을 Asia Pacific Education Review라는 교육학 저널에 올린다. 저명한 저널도 아니고 경제학 저널도 아니다. 부족함이 많은 논문이지만 그래도 첫 출판이라고 애정은 있다. 사랑하지만 숨기고 싶은 자식 같다고 할까. 출판에 일 년 이상 걸렸다. 회사에 비해 호흡이 긴 세계인지라 조금 답답하다.


다른 분야에 어떠한 끈도 없는 경제학도가 여타 사회과학 분야 저널에 단독 저자로 논문을 출판할 만큼 경제학의 범용성을 확인했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 내 능력에 경제학 탑저널은 불가능한 꿈이라는 것을 일찍 깨달았다. 어차피 연구자가 길이 아니라면 남들과 다르게 가자는 생각으로 여러 사회과학 분야 저널에 출판하겠다는 특이한 길로 선회했다. 다만 대부분이 단독 저자라 졸업하면 처리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흔히 박사에게 전문성을 기대하지만, 사실 박사의 박이 "넓을 박"이기도 하다. 타 분야에 대한 존중을 전제한다면 다른 영역에 기웃대는 것을 고깝게 여길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비단 연구에만 한정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더 많은 경제학도들이 더 다양한 영역에 나아갔으면 싶다. 공직도 마찬가지여서 경제 부처뿐만 아니라 다른 부처에도 경제학도가 많이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사변과 구호는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운좋게 물려받은 약간의 번뜩임과 부지런함 덕분에 자기 스스로 사변과 구호 너머의 경제학적 증거를 탐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작은 요량과 성실에 비하면 정말 큰 선물인 것 같다.


물론 사회과학적 현상에 대한 인식이 완전한 과학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이념, 정치, 현실, 힘의 논리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나도 너무나 잘 안다. 내 스스로가 매우 세속적이고 또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몸에 밴 사람이라 똑똑한 연구는 좋아하면서도 갑갑한 연구자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재미있는 모순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세상사를 최대한 과학이라 여기고 싶은 신념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그러한 측면에서 기술관료는 참 괜찮은 이상향이다. 연구 자체의 책임은 이상적인 과학자가 짊어지고, 연구 반영의 책임은 현실적인 기술관료가 부담한다. 훌륭한 과학자에게 자유로운 연구를 위임하고, 분별력 있는 기술관료가 이를 참고한다. 기술관료는 궁극적으로 연구자가 아닌 연구를 빌릴 수 있어야 한다. 사람 말고 그 사람의 연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짧은 기간 동안 이 세계를 거치면서 만든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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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26. 추가.


저널에 출판된 나의 첫 논문은 9시 등교제와 관련된 것이다. 이 논문을 볼 때면 나는 상당히 복잡미묘한 감정이 생긴다. 지도교수님 등 여러 사람들이 동 논문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일견 타당한 측면이 있었기 때문에 저널에 올리기에는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투고했던 저널에서는 논문이 호평을 받으면서 큰 어려움 없이 출판되었다.


Alan Sokal의 "Sokal Affair"를 떠올리게 한다. 과학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포스트모더니즘 학자들이 과학을 비판하는 세태를 풍자하고자 Alan Sokal은 적진 한가운데로 침투, 가짜 논문을 작성하여 이것을 포스트모던 학술지에 올리는데 성공한다. 가짜 논문을 저널에 투고하는 행동 자체는 학계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경박함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연구에 대한 최고의 진지함이 담겨 있다. 잘 알지 못하면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 내 논문은 고의로 조작된 것이 아니고 능력이 되는 선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의 타당한 비판을 제법 많이 받았다. 그러한 측면에서 내용적으로나 결과적으로나 결국 가짜로 조작된 논문과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 이 경우 나는 내 논문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그렇기 때문에 나는 논문이 출판된 저널의 랭킹을 따지고 그렇게 연구자들을 서열화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내 연구가 많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어느 수준에서는 용인되는 것을 직접 겪으니까 더욱 그렇다. 연구자를 서열화하는 나를 두고 학문에 대한 진지함이 없다면서 천박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랭킹 놀이"를 하는 내 경박함의 이면에는 사실 좋은 연구만을 참고하고 싶다는 나만의 진지함이 담겨 있다고 스스로를 변호한다.


궁극적으로 어디에서든 경쟁을 피할 수는 없다. 이것을 자신에게 얼마나 긍정적으로 승화시키느냐가 중요하다. 실제로 존재하는 실력의 차이가 분할 따름이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더 부단히 자신을 발전시키는 것이 더 나은 자세 아닐까.


Posted by 고숑
2018/2018_가슴2018.10.20 14:21


대부분의 회사원은 자리에 민감하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당장 내년에 어떤 자리에서 일하게 될지 궁금해하고 고민을 한다. 사실 보수가 아닌 인사로 보답 받는 공무원 세계는 더한 것 같다. 인사가 만사다. 그래서 어느 자리에 가느냐를 두고 물밑 작업이 치열하다. 그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청탁이 발생할 수 있다. 청탁이라는 단어 자체의 어감은 나쁘지만, 사실 무조건 부정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자신과 안면이 있는 높은 사람에게 지나가는 말로라도 "이번에 잘 좀 부탁드립니다."라고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다. 사람 사는 사회에서 청탁은 전 세계에 예외 없는 공통된 현상이다. 심지어 미국은 공식화된 청탁인 추천서가 매우 중요하게 작동하는 사회이다.


문제는 어떤 청탁이 합법적 테두리 안에 있느냐는 것이다. 이 테두리의 기준을 설정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고무줄 같은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용인되는 청탁이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부정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흔하다. 또한 청탁의 부정성 유무를 두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내로남불" 현상이 나타나기 쉽다. 자신의 중대한 이권이 달려 있기도 하거니와,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를 능력 대신 청탁 탓으로 돌리면 위풍당당한 패장으로 자신의 면을 세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자신의 풍부한 인맥을 활용하는 것을 두고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비난하기도 힘들다. 그러한 집에서 태어나지 못한 나조차도 이해할 수 있는 구석이 많다.


청탁에 관하여 크게 두 가지 원칙을 세우고 최대한 따르려고 노력한다. 물론 나도 평범한 사람인지라 자주 이 원칙을 어기고 나중에 자책하며 반성하기도 한다. 다만 그렇게 실수를 하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다. 스스로 청탁이 전무한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자제는 하겠다는 차원의 원칙이다. 


첫째는, 가능하면 부탁은 하지도 들어주지도 말자는 마음가짐을 갖추자는 것이다. 청탁은 일단 그 목적과 종류를 막론하고 좋든 싫든 어떤 사람에 대한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든다. 이 빚을 오래 지고 있으면 마음이 상당히 불편해지기 때문에 나중에 어떻게든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발현되고는 한다. 이 때가 문제이다. 반드시 거절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인정머리가 없다든지 융통성이 없다든지 등등의 비난 속에서 바른 판단이 흐려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애초에 싹을 키우지 말자는 뜻에서 "부탁은 하지도 들어주지도 말자."는 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생각보다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하고 포기해야 할 것도 제법 생긴다. 조직의 주류에서 밀려날 수도 있고, 험한 곳에 끌려가 몸이 고생할 수도 있고, 죄없는 가족까지 힘들어질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의 어려움을 너무나 잘 안다. 그리고 나한테 어려우면 다른 사람한테도 어려운 법이다. 나 자신부터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의 청탁을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다. 다만 첫째 원칙을 지키면 적어도 빚진 마음에서 해방된다는 선물을 얻을 수 있다. 나한테는 상당히 큰 선물이다. 회사 생활을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마음의 편함에 매우 높은 가치를 두는 성향이 있다. 아무래도 일신과 언행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 세속적 가치에 대한 욕망만큼 큰 사람인 것 같다.


둘째는, 마음의 불편함까지 감수하면서 청탁을 통해 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내 스스로가 먼저 실력을 갖추어 알아서 내가 원하는 자리에 쓰임을 당하자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영화 가타카에서 Ethan Hawke가 보여주는 "일단 스스로 해결책을 강구하자."는 미련함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긴밀한 사람 관계는 청탁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이해 관계의 범주 바깥에 있는 주고 받음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령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매해 담임 선생님께 아빠 과수원에서 키운 사과를 보낸다. 감사한 일이 많았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는데 학교 다닐 동안에는 당연히 그러지 못했다. 정말 순전히 그 사람에게 고마워서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다지고 싶을 때는 이해 관계에서 자유로운 시점에 그 싹을 틔워도 늦지 않는다.


회사 생활은 정말 어렵다. 절제가 필요한 회사 생활이고, 이 회사 생활을 잘 하고 싶은 욕심이 자유분방한 성격과 충돌하고는 한다. 둘 다 잡고 싶은데 정말 쉽지가 않다. 그래도 이 문제에 있어서는 조금 아둔하게 굴고 순리대로 가는 편이 결국에는 나 자신을 위한 길이라고 본다. 그러한 과정에서 상처와 손해는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상처와 손해를 보듬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래도 견뎌낼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어려움을 잘 이해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위의 원칙들을 그래도 최대한 지켜가며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받기보다 주고 싶은 사람"이라는 범주는 지금의 친구라든지 미래의 배우자라든지 가까운 사람 관계를 가꾸는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실적으로 공무원이 좋은 이유는 모든 수가 뒤틀려도 신분이 보장된다는 것 아닌가. 그러한 선물을 받은 입장이라면 조금은 더 높은 기준에서 청탁과 같은 문제를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원칙을 따르다가 정녕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정년에 이를 때가지 가까운 사람들과 오순도순 작게 잘 지내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적어도 손주들에게만큼은 잘난 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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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가슴2018.10.16 06:23


이미 과거가 된 성취에 안주하면 거기에서 성장은 끝이다. 성장하고 싶다면 새로운 것에 계속 도전해야 한다. 어제의 성취는 오늘의 출발점을 앞당기는 것에서 그 의의를 찾아야 한다. 어제의 선물 덕분에 오늘의 도전이 조금 더 수월해졌을 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도전이 어제의 노력을 빛내주는 동시에 오늘의 성장에 가장 효과적일까. 도전에 대한 의지가 있더라도 방향에 대한 고민이 없으면 힘만 불필요하게 낭비할 수 있다. 그래서 단기적으로 혹은 중장기적으로 내가 어떠한 일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를 잘 아는 것이 가장 큰 숙제이다. 나의 오랜 의문이기도 하다.


앞으로 5년 후,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 그 이후까지, 수많은 변수 속에 종국에 완성될 그림은 지금 그리는 스케치와는 전혀 다른 그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당장 5년 후,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 그 이후까지 스케치를 해야 마음이 편하다. 


내가 지금 그린 스케치가 최종적으로 산이 될지 바다가 될지 우주가 될지 알 수 없지만, 기회는 준비하는 사람의 몫이라는 말처럼 산, 바다, 우주를 그리려면 항상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그릴 수 있는 그림의 폭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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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머리2018.10.12 11:23


최근 "노벨상 수상자 중 여성은 몇 명에 불과하다." 혹은 "서울대 교수 중 여교수 비율이 너무 낮다."처럼 남녀 간 불필요한 분란을 조장하는 자극적인 기사 제목을 보니까 John List가 최근 작업하는 논문이 떠올랐다.


구인 시장을 보면 "우리 기업은 흑인, 여성,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습니다."와 같은 안내 문구를 볼 수 있다. 이 문구를 통해 우리는 소수자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구직 행동을 장려하는 정책을 펼치고는 한다.


그러나 John List에 의하면, 이 문구가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문구는 "저 사람은 능력이 아니라 소수자여서 취직했다."라는 부정적 꼬리표를 달아주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문구가 많은 소수자들의 지원 의지를 오히려 꺾는 결과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논리는 서울대 경영대 조성욱 교수님의 오늘자 인터뷰에서도 잘 드러난다. 교수님은 인터뷰에서 아래와 같이 말씀하신다.

"최근 여성으로만 교수를 채용한다는 서울대 경제학부 공고도 여성 입장에서는 다소 아쉬운 측면이 있다. 남녀 구분 없이 공평하게 채용하면 여자가 되기 어렵다는 의미가 담긴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이든 대학이든 해당 자리가 요구하는 역할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원칙이다. 선발한 후 사후에 확인해보니 남자일 수도 여자일 수도 백인일 수도 흑인일 수도 있는 것이다.


"평등은 선, 차별은 악"이라는 감정에 호소하는 이분법이 수많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 소재만큼은 내가 어떤 욕을 먹더라도 계속 생각하고 싶은 문제이다. 세상 여러 문제에 있어 꼬리가 머리를 흔드는 일이 많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마지막으로 위 논문의 저자인 John List에 대해 가볍게 남긴다. 경제학에 조금이라도 흥미가 있는 사람들은 매년 이맘때 누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을 것인지 재미있지만 아무 쓸모 없는 예측을 하면서 놀고는 한다. 아무래도 자기에게 익숙한 분야의 유명인을 응원하게 되는데, 나의 경우 항상 틀리고는 있지만 계속 밀고 있는 두 사람이 바로 John ListErnst Fehr이다. "경제학을 실제 현장(필드)으로 내보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이라는 테마로 조만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지 않을까 혼자 예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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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생활2018.10.10 00:46


9일에 디펜스를 했다. 생각해보니 한글날이다. 나는 한국 사람이니까 억지로 의미를 부여해본다.


박사 마지막 관문이었다. 네 분의 교수님을 모시고 "이제까지 연구한 것들을 보여드릴게요. 저 이렇게 열심히 했어요."라고 말하면, "그래? 한 번 볼까?"라며 1시간 30분 정도 심문하는 과정이다. 준비를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려웠다.


그나마 남아 있던 마음의 짐마저도 깨끗이 덜어내면서 이제 졸업까지는 물리적인 시간만 남았다. 다만 수업 조교 일로 어디 멀리 가지는 못한다. 디펜스를 했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듯하다.


2015년 8월에 미국에 왔으니까 박사 디펜스까지 3년 정도 걸렸다. 밝음만큼 어두움도 품었던 기간이다. 처음 1년은 눈물을 훔쳤다. 다음 1년은 논문을 썼다. 마지막 1년은 테니스를 쳤다. 누구나 박사 과정 중에 고비를 겪는데 나는 첫 1년이 그랬다. 내가 얼마나 밑바닥에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이후에는 상대적으로 수월했는데, 나와 반대로 점점 더 고생하는 사람들을 보며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고시 공부 하면서도 휴학 한 번 못해보고 학부 딱 4년 다닌 것이 항상 아쉬웠다. 대학원은 조금 더 다니는가 싶었는데, 오히려 더 짧아져서 3년 반만 보내게 된다. 나중에 또 아쉬워하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비슷한 선택을 할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는 스스로가 알겠다. 아쉬움이 있어야 새로움을 시도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한국 떠나기 전 굳은 의지만큼 미국 떠나기 전 짙은 허무가 밀려온다. 물론 그동안 너무 자유분방하게 살았다. 그래서 "컴백"이라는 말도 점점 스산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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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가슴2018.10.06 00:29


친구가 유치한 비교라는 것을 전제로 단순 궁금함이라면서 "고시 공부가 더 쉽냐, 박사 공부가 더 쉽냐?"라고 물어보았다. 예전에도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질문이 잘못되었다. 둘 다 어렵다."라고 일단 정정해주고, 박사 과정을 마쳐가는 시점에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두 공부는 당연히 다른 성격의 공부이다. 공부에는 고통이 수반되는데, 둘 다 겪은 경험에 기초해볼 때, 자신이 공부의 어떤 고통을 잘 견디는지가 가장 중요해 보인다. 내 생각에는 이것이 둘 사이의 난이도를 결정하는 것 같다.


고시 공부의 경우,

 - 100명 중 90명은 시험에 떨어지기 때문에 대부분은 자신도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 따라서 공부하는 동안은 상당히 불안하다.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다.

 -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시험에 떨어지더라도 멘탈에 큰 영향이 없다. 나쁜 결과도 덤덤히 받아들인다.

 - 결과적으로 고시 공부하는 사람 중에는 겉으로는 징징이와 투덜이가 많아 보이나 속으로는 안정감이 있는 경우가 많다.


박사 공부의 경우,

 - 100명 중 90명은 박사가 되기 때문에 대부분은 자신도 박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따라서 공부하는 동안은 비교적 편안하다.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이 작기 때문이다.

 -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박사 과정 중에 낙오하면 멘탈에 큰 영향이 있다. 나쁜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 결과적으로 박사 공부하는 사람 중에는 겉으로는 단단한 사람이 많아 보이나 속은 문드러지고 타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공부의 고통과 관련하여, 자신이 과정의 고통을 잘 견디는지 아니면 결과의 고통을 잘 견디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가능하면 둘 다 안 하는 편이 정신건강에는 좋을 것 같다. 둘 다 겪은 나의 정신건강이 많이 좋지는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징징이+겉으로 투덜이+속이 문드러짐+속이 타들어감" 네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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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머리2018.10.05 06:08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경제학 논문은 너무 길다. 분량을 줄여서 가독성과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서 American Economic Review: Insights라는 저널이 탄생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어떤 논문이 실렸는지 홈페이지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첫째, 몇몇 논문의 워킹페이퍼 버전을 확인하는데 그렇게 짧아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편집이 어떻게 될지 아직 모르지만, 덜 중요한 내용을 단순히 첨부로 돌린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 있다. 짧으려면 Economics Letters 정도는 되어야 짧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정도는 아닐 듯하다.


둘째, 저자들의 화려한 면면을 보니까 "부익부 빈익빈"이 더욱 더 심해질 것 같다. Thomas Piketty 이후 경제학계에서 불평등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는 하는데, 정작 내부의 양극화는 점점 심해지는 듯하다. 그런데 잘하는 사람이 더 잘하는 것이니까 딱히 토를 달고 싶지는 않다.


한동안 논문과 보고서를 주로 읽었는데, 이 버릇이 심해져서 이제 시중의 단행본은 거의 못 읽는 상태에 이르렀다. 새로운 유형의 문맹인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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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머리2018.10.03 03:43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에 따라 공부한지 3년을 살짝 넘긴 시점에서 최근 노동/공공경제학 잡마켓과 관련한 단상을 남긴다. 그저 그런 수준인 경제학도의 사견이다. 다만 많은 사례를 스스로 찾아보는 편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앞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은 최소한의 시행착오만 겪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현재 주류 노동/공공경제학의 목표는 두 가지이다. 첫째, 과거 정책의 효과를 평가하고, 둘째, 미래 정책의 효과를 예상하는 것이다. 현대 주류 노동/공공경제학은 이 두 가지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쉬운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아이를 낳으면 한 명 당 100만원의 보조금을 주기로 결정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경제학도는 아래의 두 문제를 탐구할 수 있을 것이다.


[1] 100만원의 보조금이 정말 출산을 장려하는 효과를 가져왔는가? 

[2] 만약 보조금을 200만원으로 늘리면 출산이 더 늘어날 것인가?


경제학계 용어로 과거 정책의 효과를 평가하려는 [1]은 축약형(reduced) 분석, 미래 정책의 효과까지 예상하려는 [2]는 구조적(structural) 분석이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한글로 번역하지 않고 "리듀스드"와 "스트럭처럴"이라고 지칭한다.


[1] 리듀스드 분석의 특징은 무엇인가?

 - [1]은 보조금이 출산을 유도했는지에 대한 두 변수 간 인과성 검증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비교적 소박하고 겸손한 분석이다.

 - [1]은 전체 세계가 아닌 두 변수 간의 관계에 초점을 두기 때문에 부분균형 분석이다.

 - [1]은 주어진 데이터에 충실하다. 기본적으로 주어진 데이터에 이중차분법, 도구변수법, 회귀단절법, 실험설계법 등의 회귀분석을 적용한다. 

 - [1]은 보조금이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아이를 더 낳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못한다.

 - [1]은 보조금이 주어진 데이터와 다른 환경에서는 어떠한 효과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해서도 말을 하지 못한다. 외부적 정합성의 문제이다.


[2] 스트럭처럴 분석의 특징은 무엇인가?

 - [2]는 목표가 한층 더 원대한 분석이다. 과거 정책의 효과를 평가할 뿐만 아니라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 정책의 효과까지 예상하고자 한다.

 - [2]는 그렇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복잡한 세계를 단순화한 모형을 세우게 된다.

 - [2]의 모형은 효용/이윤극대화 등으로 요약되는 최적화 원리에 기초하며, 전체 세계를 축약해서 보기 때문에 일반균형 분석이다.

 - [2]는 보조금이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아이를 더 낳게 만들었는지 자신이 만든 모형을 통해 설명하게 된다.

 - [2]는 모형의 모수(parameter)를 적절히 조정함으로써 다양한 환경에서의 정책효과를 예측하게 돕는다. 이를 반사실적 실험이라고 한다.


얼핏 보면 [1]보다는 [2]가 우월해 보인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도 않다.

 - 복잡한 세계를 간단한 모형으로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그래서 보통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전통적인 모형을 활용한다. 그러나 거시경제학에 비해 노동/공공경제학에서는 이 모형이 아직 정립되지 않은 편이다. 그리하여 본인이 모형을 임의로 살짝만 바꿔도 수많은 비판에 직면한다. "목적함수를 왜 그렇게 설정하였는가? 제약식은 왜 그렇게 설정하였는가? 너의 모형에는 왜 이러한 현실이 반영되지 않았는가?" 등등 수많은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 쏟아지는 비판에서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자신의 모형이 이끌어내는 데이터 패턴이 실제 데이터 패턴과 유사하다는 점을 보이려고 한다. 그러나 이 작업은 굉장히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임의적 취사 선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기 주요 교수님들의 의견에 따르면, 잡마켓 페이퍼는 다음 세 가지를 모두 보여주는 것이 최선이다.

 - 첫째, 미국 경제학계에서 매력적인 주제를 잘 골라야 한다.

 - 둘째, 깔끔한 회귀분석으로 데이터를 잘 설명해야 한다 (리듀스드 분석).

 - 셋째, 잘 만든 모형으로 반사실적 실험을 보여주어야 한다 (스트럭처럴 분석).


이와 같은 기준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위스콘신 선배들의 잡마켓 페이퍼 두 개를 참고한다. 논문은 구글링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 (첫째 ×, 둘째 ○, 셋째 ○) Taehoon Kim, "What Happens to the Wage Structure When Nearly Everyone Has a College Degree? The Case of South Korea" 

 - (첫째 ○, 둘째 ○, 셋째 ○) Siha Lee, "Household Responses to Disability Shocks: Spousal Labor Supply, Caregiving, and Disability Insurance"


만약 자신이 첫째와 둘째에서 승부를 볼 자신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셋째는 과감히 포기해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내가 스트럭처럴 분석에 상당히 비판적이기도 하지만,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 하나, 최근 빅데이터가 부각되면서 데이터 퀄리티가 좋아졌다. (자신이 데이터를 확보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 둘, 머신 러닝과 주먹구구법(back-of-the-envelope) 등을 통해 그간 리듀스드 분석의 공백이었던 예측 부문이 점차 보완되고 있다. 

 - 셋, 졸업 후 저널 출판에 있어서도 스트럭처럴 논문보다는 리듀스드 논문이 조금 더 수월한 편이다.

 - 넷, 기타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경제학만큼의 스트럭처럴 분석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첫째와 둘째를 잘 충족하는 것만으로도 잡마켓에서 좋은 성과를 올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한 프린스턴 Henrik Kleven의 최신 은 나의 생각을 어느 정도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러나 힘들게 미국까지 나와서 첫째와 둘째만 생각하기에는 유학의 의미가 많이 퇴색된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힘들다. 현재 국내 연구 추세를 볼 때, 이 경우 배우는 내용이나 잡마켓에서의 성과 측면에서 우리나라에서 공부하는 것과 별 차이가 점점 없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따라서 미국 최전선에서 연구자로 남고 싶다면 적어도 잡마켓 페이퍼에서는 스트럭처럴 분석을 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다. 물론 이러한 선택에는 말도 못할 고생과 시간이 요구된다. 만약 그러할 자신이 없다면 자기 연구의 어느 부분에서 차별화를 둘 것인지 많이 고민해야 한다.


결국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공부의 목표와 방향을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고민을 오래 하다가 막바지에 후회를 한다. 나는 박사 후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위에 소개한 선배들만큼의 논문을 박사 과정 6년 안에 써낼 자신이 있는가? 나는 처음부터 연구자의 길을 덜 고려하기도 했거니와, 나에게는 위 선배들만큼의 연구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일찍 파악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에게 최선인 선택을 비교적 빨리 내리고 그에 맞춰 기민하게 움직였던 편이다.


또한 경제학 박사 이후 학계만 고집할 필요도 없다는 점을 나는 주변에 계속 전파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대부분이 대학 때부터 공부만 해왔기 때문에 학교 밖의 세상에 막연한 두려움이 있을 것 같고, 이에 대해 공감을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에서든 학교에 남지 못하는 것을 "실패"로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 정말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난 주 스탠포드 Susan Athey가 쓴 을 마지막으로 첨부한다.


------


18.10.03. 추가.


병찬이가 코멘트를 남겼다. 좋은 내용이 많아서 정리해서 남긴다.


1. 몇몇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우선 정책효과 분석이 두 분야의 전부라고까지 말하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가 아닐까 싶다. 물론 너의 관심사가 그 둘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만. 예를 들어 내가 발을 걸치고 있는 불평등 부분에서는 여전히 그냥 현실을 잘 묘사하는 것만으로 훌륭한 연구가 된다.


 → 맞다. 과도하게 일반화했다. 알면서도 "누가 설마 읽고 지적하겠나?" 싶어서 그렇게 썼다. 사회현상에 대한 분석,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연구가 된다는 것에 동감한다.


2. 축약형이 부분균형이라는 설명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이는 내가 거시를 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관측되는 자료 자체가 현실의 일반균형 하에서 생성된 것들인데 그것을 분석해서 얻은 결과를 부분균형 효과라고 퉁치기에는 무리가 있을 듯하다. 총 효과에서 직접 효과와 일반균형을 통한 간접 효과를 구분해내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더 안전하지 않을까 싶다.


 → 그렇게 말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것 같다.


3. 축약형이 메커니즘을 밝히기 힘들다는 것도 동의하기 어렵다. 네가 든 예시의 경우 보조금이 양육비 지출, 부모의 노동시간, 자산 구성, 투자 행위 등 메커니즘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변수들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보는 방식으로 메커니즘에 대해 경험적으로 생각해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본다. 그렇게 찾아낸 경험적 증거를 토대로 모형을 만들어서 구조적 분석을 하는 것이 덮어놓고 모형으로 넘어가는 것보다 더 설득력 있기도 하고.


 → 리듀스드 분석의 좋은 페이퍼를 보면 대체로 처치 효과(treatment effect)가 잘 분석되었는지 보고, 이것이 어떤 채널을 통해 발생했나에 있어서는 따로 섹션을 둔다. 그리고 저자들은 이것이 추론(speculation)이라는 점을 미리 언급한다. 그만큼 효과가 어떤 경로를 통해 발생하는지 메커니즘을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추론의 영역이고 간접적 증거만 확인할 수 있는 상태이다. 이것이 스트럭처럴 분석에서는 모형의 메커니즘을 통해 설명된다는 강점이 있으나, 본질적으로 "그 메커니즘이 과연 절대적인가?"에 있어서는 역시나 논쟁의 영역 아닌가? 가령 누군가는 금융위기가 가계부채 때문이라고 하고 은행포지션 때문이라고 하고 등등. 요약하면 리듀스드와 스트럭처럴 모두 메커니즘에 대해 완벽한 설명은 불가능하고, 현재 리듀스드는 간접적 증거를 통해, 스트럭처럴은 모형을 통해 설명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이고, 나는 이 점에 있어 전자를 좀 더 신뢰하는 편인 것 같다.


* 정책효과 측정 및 예상 측면에서 리듀스드/스트럭처럴 논의를 지나치게 이분화한 측면이 있다. 태훈 형이 지적했듯, 사실 스트럭처럴 분석이 일반균형 분석인 것은 아니다. 내 지도교수님의 프레젠테이션을 참고한다. 수학적 내용이 조금 들어가있다.


Structural Estimation.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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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가슴2018.10.01 08:05


할 일 미루는 것을 싫어해서 논문 최종 심사일을 일찍 잡았다. 10월 9일이 지나면 박사 과정생으로서의 거의 모든 의무에서 해방될 것이다.


연구하러 온 곳에서 연구의지를 거의 상실했으니 어떻게 보면 맥이 풀리는 것도 당연하다. 새로운 동력을 찾으려고 해도 시한부가 되어서 그러한지 열정이 생기지 않는다. 이미 마음이 떠버린 상황에서 진한 허무함이 자꾸 몰려온다. 목표가 비교적 뚜렷한 삶은, 목표 달성 후에 밀려오는 공허함, 그리고 이것을 떨쳐내기 위해 새로운 목표 세우기를 반복하면서 생기는 목표 자체에 대한 회의감, 이 두 감정을 어떻게든 잘 달래야 한다는 맹점이 있다. 수없이 겪었던 이 과도기가 나는 아직도 힘에 부치다.


공익을 위해 내 한 몸 바치겠다, 큰 사람이 되어 세상을 바꾸겠다, 이러한 것들을 생각하며 살지는 않는다. 그와 같은 허세 가득한 중학생스러움은 이제는 아주 가끔씩 충동적으로 나타날 뿐이고, 보통은 오늘 하루도 적당한 자극과 도전 속에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작은 마음으로 가득하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아마도 회사에서 잘 하고 좋은 사람 만나자는, 적당해 보이는 이 두 작은 희망으로 살 것이다. 그런데 이 적당함이 사실은 가장 어렵다는 것을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체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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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숑
2018/2018_생활2018.09.24 11:34


오피스 친구들과 근처 호숫가에 하이킹을 다녀왔다. 중국 친구 Zhigang에게 "빙빙이 정말 어떻게 된 거냐?"라고 계속 물어보면서 편하게 즐기다 왔다.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내니까 무척 한국스러운 풍경이라고 했다.


오늘처럼 오피스 친구들과 멀리 나오는 것은 아마도 마지막이었을 것 같다. 다들 마음이 바빠지고 있는 시기이다. 가을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주말 동안 심심해서 황 기자의 예전 블로그 포스팅을 훑어보다가 재미있는 글을 발견했다. 멀쩡한 대기업 때려치고 수많은 사람들이 "기레기"라고 폄하하는 직업으로 전직하여 고군분투하고 있다. 모든 직업은 자기가 하기 나름인 것 같다. 황은 적성을 잘 찾았다.


"재미있는 논문 발굴은 어떤 종류건 덕후 기자의 고상한 취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페이스북 열심히 하는 한 교수는 어렵게 쓴 논문을 알기 쉽게 해석하는 것이 기자의 역할이라고 하는데, 풀어 놓고 보면 별 의미 없는 내용도 중언부언 어렵게 써놓는 것이 특기인 사람들이 할 말은 아니라고 본다. 심지어 그들이 이야기하는 재미는 그야말로 그들만의 재미이다."


"페북은 언제부터인가 소위 지식 소매상 관종들의 시장이 되었다. 어떤 종류의 이야기든 토론을 두려워하지 않고 글을 올리는 사람들을 보며 경외감이 들면서도, 가끔은 글을 올려 내 지식을 뽐내겠지만 반박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식의 전문가들도 보게 된다. 토론을 거부하는 전문가는 사실 글을 올릴 자격이 없다고 본다. 비판에 상처 받고 징징될 것이라면 애초에 글을 올리지를 말아야 한다. 비이성적인 댓글은 대한민국에서는 그저 주어진 환경이다. 언제 대한민국의 네티즌에 고상함을 기대한 적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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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머리2018.09.21 02:37


아래는 작년에 기록했던 글이다.


======

얼마 전에 여기 4학년 미국 학생이 발표를 하나 했다. 전형적인 산업조직론 논문이다. 아래 5개 문장으로 간단히 정리된다.

 - 미국의 경우 전체 인구의 15%가 시골에 사는데 전체 1차 진료(primary care) 의사 중 10%만 시골에서 근무하고 있다.

 - 이들 의사가 부족한 시골 사람들의 건강 상태가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금전적 인센티브, 가령 시골 의사의 월급을 높이는 등의 정책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 왜냐하면 의사들이 자기 고향 혹은 자기가 나온 의대 근처 지역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 성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 따라서 정부가 사회 후생을 높이려면 의사가 모자란 시골 출신을 의사로 뽑는 지역할당제를 쓰는 것이 좋다.

======


이 친구가 말하는 지역할당제가 시골의 열악한 의료 서비스를 개선할 수 있는 좋은 정책적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위 논문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최신 논문을 보면 꼭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시골에서 일하는 의사가 늘더라도 의료 서비스가 개선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에서 실시한 "MPP(More Physicians Program)" 정책은 시골에 의사 공급을 증대시키는 결과를 이끌어냈지만 국민(신생아)의 건강 수준을 향상시키지는 못했다. 이는 첫번째 논문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부분 때문이다. 바로 의사와 간호사가 서로 대체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의사 증가라는 긍정적 효과가 간호사 감소라는 부정적 효과로 이어지면서 국민의 건강 수준에는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의료 서비스 부족으로 고통 받고 있는 시골 지역에 어떠한 다른 정책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이 쯤에서 우리나라에서도 논의 중인 원격 의료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아래와 같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던지다 보면 이것이 좋은 대안인지도 불확실해 보인다.


 - 지방의 의료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 의사들이 지방으로 가지 않는 주된 이유는 무엇인지?

 - 의사들이 지방으로 가게 할 금전적 및 비금전적 유인책이 있는지?

 - 일련의 유인책이 효과가 없다면 원격 의료가 대안이 될 수 있는지?

 - 일본에서 관련 정책이 어떠한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지? 원격 의료 도입으로 어떠한 부작용이 나타나는지?

 - 원격 의료로 인해 지방 소규모 병원이 사라진다면 의료 서비스 접근성이 오히려 더 나빠지는 것은 아닌지?

 - 차라리 의료인의 의료 행위 영역을 재검토하여 약사나 간호사에게 그 역할을 맡기는 것이 원격 의료보다 좋은 것 아닌지?


그렇기 때문에 상기의 논의는 "간호사 직역의 업무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로 전환될 수도 있다. 여기에서도 소개한 바 있다. 


"지방 의료 서비스 개선"이라는 정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금전적 인센티브, 의료인 지역할당제, 원격 의료, 의료인 업무 범위 재설정 등 다양한 방법이 제시될 수 있다. 그리고 제각각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무엇이 더 나은지 우선순위를 세우는 것은 정말 어렵다. 


이 글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정책이든 연구든 어떤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생각해야 하는 연결고리가 너무 많다는 것이고, 이 순환에는 끝이 없기 때문에 이것을 모두 고려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책에서든 연구에서든 어느 선까지 생각하는 것이 최선인지 결단을 내리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모든 이해관계자의 기대에 부응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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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숑
2018/2018_머리2018.09.20 07:18


스스로 발품을 팔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우리나라 경제학자들의 좋은 연구가 참 많다. 나는 이것을 많이 아쉬워한다. 그래서, 약간의 과장을 보탠다면, 나는 최근에 졸업한 우리나라 경제학자들이 어떤 연구를 하는지 거의 다 먼저 찾아 보는 편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아무래도 경제학 박사 시장의 특수성 때문이다. 우리 회사나 한국은행 출신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잡마켓에 나가기 위해 개인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여기에 자신의 연구를 공개한다. 그 중 나의 관심 분야에서 활발하게 연구 활동을 하는 분들만 추려 즐겨찾기를 해두고 가끔씩 취미 삼아 들러보고는 한다.


응용미시 분야에서 우리나라 사례를 이용한 연구의 경우, 진심으로 반가운 마음에 해당 논문을 굳이 읽어보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나 대신 우리나라 사회 현상 분석과 정책 연구를 해준 것인데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굉장한 영광이다. 가끔 감격이 넘칠 때면 미친 척하고 메일도 보내본다. 특이한 오지랖이다. 물론 답이 오지 않을 때도 있지만 단짝 친구들에게도 "읽씹" 당하는 것이 일상인지라 개의치 않는다. (적어도 태바는 항상 답을 해주니까 위로가 된다. 보통 "배고파. 잠이나 자."라고 한다.)


예전에 우리나라 사례로 좋은 연구를 하여 화제가 된 외국인 교수님이 있다. 프린스턴 대학에 있는 David Schoenherr인데, 이 교수님과 인연이 닿는 것으로 보이는 한 박사님이 역시나 우리나라 사례를 이용한 연구를 들고 잡마켓에 나온다. "자본이득 과세가 기업 투자, 주가 및 주식 발행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이다. 논문이 탄탄하다. 혼자 읽기 아까워서 소개한다. (아직 비공개이고, 나는 구버전을 읽은 적이 있다.)


참고로 David Schoenherr은 우리나라 사례를 이용한 또 다른 두 편의 연구를 공개하고 있다. 하나는 2006년에 공포된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중 제74조 [기존 경영자 관리인 제도]의 도입이 어떠한 경제적 효과를 낳았는지 분석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려대로 이어지는 학연이 은행의 기업자금 대부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한 것이다. 일본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한자와 나오키"라는 드라마가 있다. 은행원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는 기업 파산, 자금 대부 등과 관련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이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았다면 우리나라 금융시장에 관한 이 두 논문 역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우리나라 학자들도 분석하기 어려운 것들을 도대체 어떻게 했는지 너무나도 신기하다.


현장의 경제부처 사무관들이 더 많은 경제학 연구를 이해하고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다만 현장에서 그렇게 할 시간이 전혀 없다는 것을 매우 잘 안다. 다들 극악의 업무 환경이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비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사무관들이 잠시나마 공부할 기회를 얻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국책연구기관이 그것을 대신 해주는 것 아닌가?"라고 말하기에는 서로의 간극이 생각보다 크다.


------


18.10.04. 추가.


위에 소개한 문석민 박사님의 논문과 굉장히 흡사한데 단지 중국 사례를 이용했다는 차이가 있는 논문이 AEJ("How do Tax Incentives Affect Investment and Productivity? Firm-Level Evidence from China")에 실린다. 우리나라 독립 사례 연구도 세계 경제학계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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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숑
2018/2018_머리2018.09.19 06:49


* 스스로의 이해를 돕기 위해 비속어를 썼다. *


재미있는 데이터 패턴을 잘 보여주는 공헌으로 논문이 좋은 저널에 실리는 경우가 간혹 있다. 내가 좋아하는 Bertrand 교수님의 2015년 논문이 좋은 사례이다. 첨부한 그림은 아내의 소득이 남편보다 많아지는 순간 아내가 남편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가정의 비율이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을 보여준다.



이 그림을 보며 [한남충]은 성차이의 원인을 논할 것이다. "여자는 결국 자기보다 잘난 남자를 만나려는 경향이 있다."로 그림을 해석하는 사람이다. 경제학 용어로 [한남충]은 이 그림을 매칭 시장의 균형 상태로 보고 있다.


이 그림을 보며 [김치녀]는 성차별의 결과를 논할 것이다. "여자가 남자보다 더 잘 나가면 안 된다는 사회적 억압을 보여준다."로 그림을 해석하는 사람이다. 경제학 용어로 [김치녀]는 이 그림을 매칭 시장의 실패 상태로 보고 있다. (Bertrand 교수님은 이쪽 해석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 소개하는 논문은 [한남충]도 [김치녀]도 아닌 전혀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한남충]과 [김치녀]는 모두 이 데이터 패턴을 우측 분포가 찍어눌린 시각에서 보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와 같은 시각에서는 이 그림을 "남편보다 아내가 돈을 더 버는 가정의 비율이 줄었다."로 해석하게 된다.


그러나 이 그림은 우측 분포를 찍어눌러서도 가능하지만, 사실 좌측 분포를 끌어올려서도 가능하다. 고정관념에 빠져 있으면 좀처럼 생각하지 못하는 방향이다. 만약 우리가 이 그림을 좌측 분포가 끌어올려진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이 패턴을 "아내 소득이 남편 소득에 근접할 정도로 상승했다."로 볼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그림 패턴에서 성차별적 사회 관념의 존재를 이끌어낸 Bertrand 교수님의 해석과는 180도 다른 해석을 할 수 있게 된다. 직관적으로 정말 탁월한데 이 간단한 원리를 생각하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오타쿠]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통계청장 교체 시점에 특정 통계의 해석과 관련하여 많은 이야기가 돌았다. "당신들이 데이터를 제대로 다루고 타당한 추론을 했는가?"라는 큰 우산 밑에서 누구인가는 [한남충]이 되고 누구인가는 [김치녀]가 되어 열띤 논쟁을 벌였다. 아마 나도 그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오타쿠]스러운 논문을 보니 내가 우산 속에 갇혀 있던 것은 아니었는지, 특정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놓쳤던 것은 없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우측 분포만 짓누르는 [한남충], [김치녀]보다는 좌측 분포도 올려보는 [오타쿠]가 아무래도 낫지 않나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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