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018_가슴2018.07.21 04:56


가까운 친구들이 결혼을 앞두고 있다.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그러한 친구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문제에 있어 마음은 점점 더 차갑게 식어가는데 머리는 점점 더 뜨겁게 타오르는, 이성은 다른 종류의 사람도 받아들여야 함을 말하는데 감성은 여전히 같은 종류의 사람에게 끌리는, 이래저래 설명하기 힘든 오묘함이 존재한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신은 조만간 좋은 사람 만나서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있다. 고민과 선택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해서 더욱 그러한 것 같다. 아직까지 정신을 못 차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진짜 그렇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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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머리2018.07.21 01:27


노동시장에서 나타나는 남녀 차이의 핵심에는 "출산"과 "시간"이 존재한다. 나의 직관과 분석은, "출산에서 비롯되는 남편과 아내 간 시간 사용의 차이"가 노동시장의 차이로 이어지고, 이것의 효과가 오랫동안 지속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육아에 소모되는 아내의 시간적 부담을 남편이 얼마나 공유하고 분담할 수 있는지가 노동시장 내 남녀불평등을 해소하는데 중요한 문제가 된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과 "모성애는 엄마가 아이를 돌보게 만든다."는 자연적 사실 중 어느 것이 더 육아의 짐을 엄마에게 귀속시키는지 알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만약 후자의 효과가 매우 강력하다면 정책은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다만 전자의 문제가 상당히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현재의 상황을 비추어 볼 때, 정책의 적극적 역할을 어느 정도는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교육 등을 통해 육아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있어 남녀평등 사상을 고취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고, 조금 더 공격적으로 나선다면 육아가 부부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보육정책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현재 공공부문의 경우 여성의 육아휴직이 최대 3년, 남성의 육아휴직이 최대 1년으로 규정되어 있는데, 육아로 인한 노동시장 내 남녀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급진적인 방법으로 이를 맞바꾸어서 적용하는 혁신적인 방안을 제시할 수도 있다. 어떠한 방법이든 정부는 가정(부부) 단위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여러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에 따른 결과는 시장의 몫이며, 정당한 차이이자 차별이 된다.


국가가 사회적으로 출산을 장려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의문은 여전히 존재한다. 출산은 근본적으로 개인의 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 단위가 아닌 국가 단위에서 저출산이 극복해야 될 과제라는 보편적 인식이 존재한다면, 저출산 대책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보육정책"을 최우선순위로 두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신혼부부에게 아파트를 공급하는 등의 정책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지만, 이들은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수 있을지 채널이 불확실하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육아의 시간적/금전적 부담을 정부가 어느 정도 해소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해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조치는 노동시장 내 남녀불평등도 일부 해소하는 부가적 효과를 제공할 수 있다.


어느 정도 한계는 있을지언정 정책은 철저한 증거와 분석에 기반해야 한다. 성별 자체가 노동시장에 차별을 야기한다는 주장은 현재로서 지지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라서 노동시장에서 차별받는다."는 식의 현재의 단순하고 조악한 프레임을 극복해야 한다. 정책은 선동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내가 우리나라 데이터로 작업 중인 논문과 밀접하게 연관된 정말 좋은 논문 두 편을 소개한다. 두 논문 모두 공교롭게도 덴마크의 방대한 데이터를 이용하였다. (링크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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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생활2018.07.20 07:32


2주 동안 짧게 한국에 다녀왔다. 중간에 태바, 롱바와 홋카이도도 살짝 들렀다.


미국에 돌아오니까 확실히 알겠다. 여기는 내가 잠깐 머무는 곳이라는 사실을. 본래의 자리로 빨리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도 돌아가는 내년까지 할 일은 해야 한다. 쉬는 동안 해야 할 것들이 쌓여 있다. 부지런히 따라잡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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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머리2018.06.27 04:32


요새 경계인스럽게 생각했던 것들.


하나.


한국 시사에 많은 관심을 가진 중국 친구는 나에게 종종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주로 내가 거의 모르는 북한과 관련한 질문을 던진다. 스스로 답답한 마음에 학교 도서관에 단 한 권 있는 모교 김병연 교수님의 "Unveiling the North Korean Economy"를 빌려보고 대답해주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소득주도성장이 무엇인지 물어보길래 많이 놀랐다. 솔직히 나도 궁금하다. 기본적으로 경제학에서 소득은 여러 설명변수의 상호작용 결과로 드러나는 종속(결과)변수인데, 정부가 주도해서 이 소득 자체를 높여준다고 하니, 내 눈에는 신개념임에 분명하다.


요새 말이 많은 소득주도성장이라든지 혁신주도성장이라든지, 이에 대해 나는 아는 것이 많지 않다. 그러니까 모자란 오지랖마저도 부릴 것이 없다. 케인지언 논의도 슘페터리언 논의도 아닌 것 같은데 어느 새 이 둘이 대립 구도에 있다는 것도 신선할 따름이다. 어쨌든 둘 다 정부가 전면에 나서서 소득을 높이고 혁신을 선도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나로서는 정권을 막론하고 대다수 경제 정책은 각론만 살짝 다를 뿐 총론은 비슷해 보인다. 기업의 성장을 지원하겠다, 과도한 규제를 합리화하겠다, 분배에 신경을 쓰겠다 등등 본질은 비슷하다. 수사만 다르다고 보는데 새 정권마다 내용도 엄연히 다르다고 하니, "아, 다른 것이구나."하고 넘어간다. 또한 말하고 있는 경제 정책은 모두 시장 기능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처럼 보이는데, 왜 매번 정부가 주도한다는 뉘앙스가 들어있는지 이것도 잘 모르겠지만,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간다.


시키는 일 군말 없이 잘 하는 것이 실무자의 역할이고 나도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다. 그래도 스스로가 시키는 일에 납득이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는 바람은 있다. 노는 정말 열심히 저을 자신이 있는데 적어도 이 배가 어디로 가는지는 알고 싶은 마음이랄까.


대개는 정책을 대중에만 설파하는데 실무자도 설득하는 작업이 있으면 싶다. 그러한 작업이 실무자 수준에서는 거의 부재하다시피 하다. 정녕 시키는 일만 하는 존재로 여긴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서도, 그리고 나라는 사람은 아마도 시키는 대로 일을 꾸역꾸역 잘 하겠지만서도, 실무자가 "나도 이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본새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이 중국 친구의 기본적인 물음에도 대답을 잘 못한 지금의 상황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다.


둘.


나는 독특하고 소소한 소재로 경제학적 직관과 분석을 이끌어내는 Steven Levitt 스타일의 연구를 좋아한다. 그런데 "거대하고 중요한 소재"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러한 스타일의 연구를 깎아내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할 때면 감정이 복잡해진다.


보통 "연구는 자신의 흥미에서 출발해야 한다. 유희에서 걸작이 나온다."라는 말을 들으며 공부를 하게 된다. 그러나 정작 한 개인의 흥미가 가득 담겨 있는 글에 대해서는 "이것이 사회에 무슨 가치가 있는가?"라며 갑자기 사회에 대한 공헌을 강조하고 연구의 근원적 출발점인 흥미를 폄하하고는 한다. 그리하여 어디에 초점을 두어야 할지 헷갈린다.


이외에도 이곳 세계에는 쉽게 풀기 어려운 오묘한 이중성이 존재한다.


자기애와 외골수적 기질 등 개인주의적 성향이 다분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세계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들 스스로가 바라는 것은 그리고 세상이 이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개인주의적 성향 이상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모르겠다.


예로부터 공부는 가진 사람의 전유물이었다고 하는 만큼 여기는 전체적으로 "있는"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런데 세상은 이들에게 "없는 사람을 위함"을 논하라고 한다. 피할 수 없는 위선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므로 이 또한 고역이다.


고상하고 도도한 척하기에 나는 아무래도 상스럽고 투박한 사람이다. 눈은 저 위를 바라보지만 발은 여전히 저 아래에 담그고 있다. 그래서 종종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경계인의 정체성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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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머리2018.06.21 11:40


내 생각의 기본 틀을 다지는데 큰 영향을 미친 경제학자들이 몇몇 있다. 이들은 내 사고 체계의 본류가 된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하게 느껴지고는 한다. 시장 기능을 신뢰한 Friedrich Hayek, 경제학적 사고의 정점을 보여준 Gary Becker, 한 사람의 정체성을 강조한 George Akerlof 등이 대표적이다.


Marianne Bertrand도 그러한 경제학자 중 한 명이다. Marianne Bertrand 교수님의 최근 연구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인터뷰를 읽었다. 인터뷰에서 소개되고 있는 성차별, 유리천장, 과시적 소비 등 커다란 연구 주제 하나하나 모두 매우 중요하다. 예전에 많이 생각해보았던 문제인데 Marianne Bertrand 교수님은 이들을 실제 경제학의 언어로 풀어냈다. 각각의 주제마다 내용을 곱씹으며 인터뷰를 읽어보기에 시간이 절대 아깝지 않다.


얼마 전 성차별과 관련한 논쟁에서 보여준 나의 많은 의견이 사실은 이 교수님의 최근 논문과 많이 맞닿아 있다. 또한 최근에 법조계 전관예우와 관련한 논문 및 남녀 시간 사용과 관련한 논문, 두 개의 작업을 동시에 하고 있는데, 이들 역시 이 분의 연구에서 여러 영감을 얻고 있다. 종합하면, 이 특별한 경제학자는 내 생각의 많은 부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오직 자신의 직관과 논리만으로 다른 사람을 감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황홀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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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생활2018.06.18 12:56


일주일 동안 시애틀과 애틀란타에 갔다 왔다. 시애틀에서는 태훈 형과 혜윤 누나 집에서, 애틀란타에서는 연학 형과 정희 형수 집에서 3박 4일을 보냈다. 머무는 동안 다들 편하고 즐겁게 대해주셔서 무척 고마웠다.


사실 아기들이 있는 집이어서 내가 가서 더 고생시키는 것은 아닐까 걱정을 했다. 아기를 예뻐하고 나름 잘 돌보는 편이기는 하지만, 직접 키우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을 며칠 동안 같이 지내면서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잠깐도 눈을 떼지 못하고 아이를 돌봐야 하는 모습을 보며 그냥 혼자 살까 싶기도 했다. 그래도 가족이 오손도손 사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시애틀과 애틀란타 지역은 적당히 크고 살기 좋은 동네라는 느낌을 받았다. 시애틀 공기의 청량함과 애틀란타 대지의 광활함이 기억에 남는다. 좋은 인상을 심고 돌아왔다. 다시 미국에 나올 때면 나도 가족과 함께 했으면 한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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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머리2018.06.03 03:17


어젯밤 4시간 동안 테니스를 치고, 술자리에서 똑같은 4시간 동안 성차별과 관련하여 열띤 논쟁을 벌였다. 아래에 살짝 남겨본다. 이와 관련하여 비슷한 생각을 자주 남기고는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확신하게 되지만, 토론은 누군가를 설득하는 과정이 아니다. 그저 자기 생각의 배설이자, 같은 편과 다른 편을 가르는 과정이다.)


==========


최근 쓴 논문에서 나는 남녀 간 시간 사용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리고 나는 이 차이가 성별의 차이 때문에 비롯되는지 인과관계의 측면에서는 제대로 된 말을 하지 못했다. 이 논문에 기초하여 조금 더 근본적인 생각을 솔직하게 던져 본다.


차이(원인)가 있다면 차별(결과)은 자연스럽게 발생하지 않는가? 남자가 여자보다 일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쓴 차이가 존재한다면, 남자는 여자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는 차별적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지 않은가?


내 분석에서 남녀 간 시간당 임금에 차이가 있다는 통계적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성별 간 임금 총량의 격차는 결국 "누가 더 많이 일을 했느냐?"라는, 스스로가 통제할 수 있는 자기선택(self-selection)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비율이 남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을 뿐이고, 야근을 선택한 여자들은 분명 존재하며, 그렇게 일을 많이 한 여자는 그에 준하는 대우를 남자와 동등하게 받고 있다.


왜 야근을 선택하는 여성의 비율이 적을까? 나는 이것을 자신의 제반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자기선택의 결과라고 보기 때문에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여자들 스스로가 야근이 없는 직업, 교사, 약사 등을 선호하며 비슷한 직종에 몰리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한 선택을 하는 것 아닌가. 어떠한 부당한 차별적 요소가 있는 것이 아니라, Thomas Schelling이 말하는 자연적 분리(segregation) 현상 같은 것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령 "여성 임원이 적은 것이 문제다."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위와 같은 여성의 자기선택을 적절히 고려하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다. 여성 임원이 적은 이유는 과거에 여성들이 임원이 되는 길(=미친 듯한 야근 등등)을 덜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조금 더 신빙성 있게 느껴진다. 극단적 페미니즘은 이 문제를 단순히 성차별의 문제로 귀속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열심히 일해서 높은 자리를 꿰찬, 같은 여성에 대한 모욕이다.


"Women Can Do Anything." 나는 이 멋진 문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가정을 포기하고 일에 몰두하여 출세를 하든, 돈 많은 남자를 골라 편하게 살든, 그것은 여성 개인 선택의 문제이고 존중 받아 마땅하다.


두 개의 좋은 논문을 소개한다. 하나는 AER, 다른 하나는 QJE 논문이며, 경제학에서 가장 유명한 저널의 논문이다.


여전히 이해가 잘 안 되는 것이 있다. 일과 가정 중에 선택을 강요하는 환경 자체가 잘못되었고, 이것이 여성에게 조금 더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주장이다.


일과 가정의 양립? 경쟁이 기본인 세계에서 이것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는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주말에 일을 하지 말라고 해도 일을 하는 사람이 생기고, 공부하지 말라고 해도 공부하는 사람이 생기는데, 이 자연스러운 현상을 누가 어떻게 막을 수 있다는 것인가? 당장 우리에게 6시에 퇴근하라고 하는 높은 분들이, 만약 자신이 젊었을 때 6시에 퇴근했으면 그렇게 높은 분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세상의 많은 문제는 성별 프레임을 넘어선다. 직장에서 중요한 것은 성별이 아니라 능력과 노력 아닌가. 시장에서 생존이 달린 전쟁 중에 있는 기업과 고용주가 일을 더 많이 하는(=능력이 좋고 노력도 많이 하는) 일꾼을 찾는 것은 당연하고, 이것은 본질적으로 성별의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왜 이것을 성별 대결의 구도에서 바라보는가.


==========


아래는 최근 논문의 진행상황을 보면서 쓴 잡상.


==========


최근에 내 논문들이 몇몇 저널에서 최종 거부되었고, 이에 오기가 생기는 중이었다. 이러한 찰나에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는 말이 기억났다. 근거 없이 혹은 불완전한 근거로 바람직한 못한 형태의 페미니즘을 사람들에게 전파하여 돈을 벌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것을 올바른 페미니즘과의 구별을 위해 "극단적"이라는 수사를 붙이고, 이하에서도 계속 극단적 페미니즘이라고 지칭하고자 한다.)


나는 이 극단적 페미니즘이 내가 처한 맥락에서도 적용이 되는지 도전적인 자기실험을 해보았다. 경제학적 근거는 불충분하지만 극단적 페미니즘을 옹호할 여지가 있는 논문이 관련 저널 출판에 도움이 되는지 시도해본 것이다.


여러 사회과학 분야를 막론하고 좋은 논문은 바로 "인과관계"를 제대로 규명하는 논문이다. 어떤 요인 A가 어떤 결과 B를 야기하는지에 대한 엄밀한 분석이야말로 사회과학 연구자들의 평생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극단적 페미니즘의 문제는 이 인과관계를 호도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가령 남녀 간 임금격차가 발견되고 있다면 이것이 오직 성별 차이 때문일까? 이것을 밝혀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성별 외에도 수없이 많은 다른 요인이 임금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어떤 평행 우주에 모든 특성은 완전히 동일하고 오직 성별만 다른 사람이 존재하는 가운데, 이들 사이에 임금 격차가 발생하는지 비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극단적 페미니즘은 복잡하기 그지 없는 세상의 수많은 문제를 오직 성대결의 구도로 치환하고는 한다. 모든 문제를 단순히 "여자"이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구조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같은 편을 만드는 데에는 매우 영리한 전략일 수 있겠다.) Jordan Peterson과 Cathy Newman의 유명한 논쟁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영상 링크)


최근 쓴 논문에서 나는 남녀 간 시간 사용 패턴의 차이를 보였다. 그리고 나는 이 차이가 성별 차이 때문에 비롯되는지 인과관계의 측면에서는 제대로 된 말을 하지 못했다.


저널마다 맑시즘, 페미니즘 등과 같은 특정 이념적 색채는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그러한 이념적 색채는 "과학"이라는 단어 앞에서 어느 정도는 희석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따라서 적어도 공신력 있는 연구자들의 세계라면, 가령 SSCI급 저널에 논문을 출판하는 문제라면, 이에 대한 자정 작용이 대중 사회보다는 강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내 기준에 SSCI급 저널이라면 인과관계를 매우 엄밀히 다루어야 하고 따라서 내 논문은 데스크에서부터 리젝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페미니즘 색채가 강한 저널에서 이 논문은 우호적인 평가를 받았다. 다른 SSCI급 저널에서 과연 이 논문은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알 수 없다. (개정 작업 중인데 극단적 페미니즘에 의해 악용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진행을 여기에서 멈출까 싶다.)


나는 이와 같은 결과가 어떤 요인 때문인지 밝혀내기 어렵기 때문에 "페미니즘은 출판에 도움이 된다."는 애초의 가설에 쉽게 결론을 내리지 않으려고 한다. 이것 역시 알아내기 매우 어려운 인과관계의 한 문제이다.


사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가짜 이력서를 뿌려 흑인이 차별 받고 있음을 밝힌 Bertrand and Mullainathan (2004) 식의 실험 설계를 생각해보기는 했지만 결국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보수적인 학계에서 나의 가벼운 자세를 그리 좋게 보아줄 것 같지는 않다. 왜 저널 출판에 있어서는 "쇼핑"이 허용되지 않을까? 여러 저널에 논문을 동시에 투고한 다음 저자가 가장 선호하는 저널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경쟁을 통한 질적 제고와 논문 출판 기간 축소에 유리하지 않은가? 자못 궁금해지는 문제이다.


------


18.06.06. 추가.


유경준, 황수경 박사님의 연구보고서가 위의 논의를 이해하는데 매우 효과적인 이론적 배경을 안내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두 분 모두 통계청장을 역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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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가슴2018.06.01 12:58


나이가 들면서 나의 모든 언행이 나의 통제 하에 있었으면 하는 집착이 강해진다.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을 많이 두려워하게 되는 것 같다. 가끔은 차분해 보이고, 가끔은 열정이 넘쳐 보이고, 가끔은 차가워 보이고, 가끔은 따뜻해 보이는, 이러한 일련의 모습들이 사실은 그렇게 보이고 싶은 계산 하에 비롯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가슴 한 켠에 자리잡고 있다. 솔직한 모습마저도 그렇게 가장하고 싶다는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는 한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의 인상을 상당히 신중하게 보게 된다. 중년 이후 자신의 얼굴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옛말이 와닿을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아빠, 김병연 교수님, 손석희 앵커처럼 지적이고 차분한 인상을 좋아하지만, 나는 삶의 곳곳에서 매우 되바라지게 굴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는 어떤 인상을 지니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나이가 들면서 예전보다 성장에 대한 욕구가 많이 사그라든다. 어릴 적에는 어느 한 고비를 넘어선 이후에도 불안감과 자괴감이 가시지 않아서 또 다른 고비를 마주하고 넘겠다는 마음이 가득했다. 요새는 이러한 성장에 대한 갈망이 제법 수그러들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여전히 강한 성장욕을 지니고 있지만, 이제는 어느 하나를 얻으면 어느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는 균형의 원칙을 보다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같다.


오늘은 모처럼 하루종일 아무 생각 없이 일만 했다. 인생 첫 저널 출판에 한 걸음 더 다가선다는 느낌은 있는데 결과는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하루가 정말 빨리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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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생활2018.05.31 05:40


학교 기숙사로 집을 옮겼다. 미국에 와서 매해 이사를 하게 된 셈이다. 다행히 짐이 별로 없어서 이사도 금방 끝낼 수 있었다. 새로 이사온 집에는 침대나 책꽂이 같은 가구가 없지만, 이들 없이도 충분히 살 수 있을 것 같다.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괜찮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적당히 조용한 집에서 적당한 여백과 함께 살고 싶다. 당장 떠오르는 곳은 아무래도 절이다. 고요히 울려퍼지는 목탁 소리, 잔잔히 감싸오는 향 내음, 상쾌히 스며드는 나뭇바닥 촉감이 그리울 때가 있다. 물론 그렇게 살기 어려운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지만, 종종 그러한 것들이 생각나고는 한다.


나는 가지고자 하는 사람일까 버리고자 하는 사람일까. 나는 바쁘고 싶은 사람일까 여유롭고 싶은 사람일까. 어느 하나를 가까이 하기도 멀리 하기도 쉽지가 않다.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아마 평생하지 않을까 싶다.


욕심은 부리되 미련은 갖지 않는다면, 큰 것을 하나씩 이루어가면서도 여전히 작은 것에 행복하고 감사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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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가슴2018.05.31 05:02


지금 생각해보면 참 황당하고 어이없지만, 처음 일하던 때에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이렇게 무의미한 일을 왜 해야 할까?"라는 알량한 마음도 한몫했다. 주제도 모르고 콧대만 높아서 일하는 처음부터 엄청나게 중요한 일을 할 줄 알았던 모양이다. 당시에는 문서, 의전, 회의, 대기 등 각종 행정이 모두 쓸데 없는 일처럼 보여 깊은 회의감에 빠진 적도 있다.


그래서 그 시절에는 새로운 것을 계속 배우고 써내면서 사회에 기여한다고 하고 심지어 일신상 자유롭기까지 하다는 박사 과정에 대한 동경이 강했다. 적어도 그 길에서는 내가 잠시나마 잃어버린, 사실은 나도 실체를 잘 모르는, 그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그 의미를 찾으려고 온 이곳에서 몇몇 논문을 쓰고 평범한 저널에 제출하여 거절도 받아보고 개정도 하다보니까, 재미있게도 당시에 느꼈던 비슷한 감정이 솟아올랐다. 솔직히 미흡한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에 나로서든 세상으로서든 논문들에서 어떤 큰 의미를 찾기는 힘들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계속 써내는 삶에서 내가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회의감이 몰려왔다. 차라리 회사에서 하는 것들은 시의성도 있고 눈에 띄는 변화가 생기기라도 하는데, 따지고보면 이들은 그조차도 없는 것 아닌가.


그렇지만, 변하기 쉽지 않은 사람도 시간의 힘을 빌어 조금씩은 변하는가보다. 예전 같으면 이 의미 없음에 공허함을 느끼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새로운 자극을 찾아 나섰을 텐데, 이제는 별로 그러할 생각이 없다. 타성에 젖어서 그러는지도 모르겠지만, 나의 무의욕과 부작위에 더 이상 큰 죄책감도 가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동경했던 회사와 학교, 이들을 모두 겪어보니까, 큰 일을 기대하며 의미를 찾는 편보다는 작은 일을 마주하며 의미를 주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소한 일 하나하나 사뿐히 처리해내는 것에서 사소한 기쁨을 누리는 편이, 완벽하겠지만 사실상 나오지도 않을 한 개의 걸작을 노리기보다는 부족하겠지만 계속 보완해갈 여러 개의 습작을 써내는 편이, 그래도 삶을 조금이나마 더 다채롭게 채우는 길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사실 업무든 연구든 내가 맡은 일에서 크고 중요한 어떤 의미를 찾기에는 스스로의 주제와 분수를 깨달아버린 탓도 크다. 엄청난 무엇인가를 해낼 역량도, 그에 딸릴 엄청난 책임을 질 자신도 없어보인다. 예전에 수습이었던 우리들에게 당시 임 차관님께서는 이러한 말씀을 해주셨다. 이제 자기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보내야 한다고. 아둔한 나로서는 그 말씀이 한참 후에서야 제대로 와닿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의 하찮은 일과 연구가 그렇게까지 무의미하다고 보지는 않으려고 노력한다. 회사에서 잡스러운 일을 하는 것도, 학교에서 시시한 연구를 하는 것도, 아무래도 그저 좋다는 자기최면을 건다. 그러한 자기최면 상태를 한국에 돌아가서도 유지하고자 한다. 그래서 주어진 일도 열심히 하고 논문도 취미 삼아 종종 쓰려고 한다.


그렇게 나는, 의미를 찾기보다는 의미를 주기로 노력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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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생활2018.05.26 05:17


추천을 받아서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았다. 드라마를 보고나서 여운이 남아 관련 글을 찾아보았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논란에 휘말려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냥 감성이 풍부한 드라마라는 생각뿐이었는데 뜻밖이었다. 이 드라마에서 무엇이 그렇게 이들을 불편하게 했는지 잘 모르겠다.


내 삶 전체를 어떤 하나의 원리로 궤뚫을 수 있는 일치성과 정합성을 추구하겠다는 마음이 여전히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러한 것이 정말 존재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링크 1, 2)


종교든 이념이든 사람과 세상을 단 하나의 잣대로 보는 것은 나와 어울리지 않다. 모든 것은 맥락에 의존한다. 나는 다양한 정체성을 갖춘 불완전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고 있고, 이러한 자기인식은 내 자신이 스스로에게 기특해 하는,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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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가슴2018.05.14 04:08


졸업식에서 부모와 함께 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많이 보았다.


졸업식에서 당신들은, 알아서 제 살 길을 찾아가는 자식의 모습에 뿌뜻함을 느꼈을 수도 있고, 이제는 당신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자식의 모습에 서운함을 느꼈을 수도 있다.


어려운 환경에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던 부모를 둔 나로서는, 졸업식은 자식에게 기특함과 아쉬움을 동시에 느낄 당신들을 위한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당신들이 모르는 세계로 들어섰다. 괜찮은 직장을 구하고 유학까지 나오면서 나와 당신들이 겪는 경험의 간극은 더욱 벌어졌다. 그래서 사소한 핀잔과 조언도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한때는 가방끈도 길고 돈도 잘 벌고 하는, 소위 잘나가는 부모를 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다. 내가 힘들 때 손쉽게 도와줄 수 있는, 그러한 당신들이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얄팍한 수가 보이는데 아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요새는 지금의 당신들에게 감사할 때가 많다. 내 인생 내가 주도권을 잡을 수 있어서. 내 인생을 "당신들 덕에" 혹은 "당신들 탓에" 따위로 떠넘기지 않을 수 있어서. "이미 아들은 많이 보여줬어." 정도의 정서적 격려면 충분한 것 같다. 그 이상은 나의 몫이고, 어느 순간에 나는 그 사실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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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생활2018.05.09 07:55


지구 온난화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봄은 정말 잠깐 스쳐 지나갈 뿐이고 곧바로 여름이 찾아온다. 


오피스 친구의 졸업을 축하해주기 위해, 가까운 한국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기 위해, 어떠한 핑계든 이를 볼모 삼아 학교 앞 호숫가에서 맥주를 마시고는 한다. 일상 속 소소한 즐거움이다.


메디슨의 하절기는 겨우내 남아 있던 약간의 우울함조차도 시원하게 날려보낼 정도로 환상적이다. 아마도 메디슨에서의 마지막 여름으로 남게 될 날들을 보내고 있다. 한국에 돌아가면 이곳의 여름을 종종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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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09. 추가.


메디슨의 또다른 장점 중 하나는 테니스 칠 환경이 정말 좋다는 것이다. 이번 여름은 테니스 정말 많이 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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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가슴2018.05.03 04:18


유감이지만, 나는 그저 그런 경제학 박사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시험 잘보는 한국인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1학년 논문자격시험도 한 번의 실패 끝에 어렵게 통과했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몇몇 논문들을 작업하고 있지만 거듭 되는 실패에 이들을 삼류 저널에라도 실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공부를 통해 사회 문제에 대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딱히 그렇게 되지 않았다. 학계 특유의 고집스러움과 우악스러움은 내 알량한 자존심과 맞물려 나의 꼰대스러움을 더욱 키웠다. 여전히 잘 모르고 확신도 못 하면서 괜히 더 있는 척하고 아는 척하는 뻔뻔함이 늘었다. 험한 세상을 영리하게 사는데 필요할 유연함은 점점 희미해졌다.


박사 과정 이전과 이후를 비교했을 때 본질적으로 달라진 점은 거의 없다는 것이 솔직한 자평이다. 그렇게 나는 그저 그런 경제학 박사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시시하고 평범한 박사가 되더라도 이 길 자체에는 후회가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후회하지 않는 이유를 파고 들면 마음 한 켠에 너무나도 속물적인 본성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서, 참 복잡미묘한 기분이 든다.


여기는, 한 두세 달 시간 내어 종이 몇 장에 글씨 몇 자 채운 후 이것을 자기들끼리만 읽을 문집에 올리기만 하면, 그래도 적지 않은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곳이다.


저기는, 한 반 년은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땡볕에 땅을 파고 가지를 치고 약을 뿌려가며 누구나 좋아하는 과일을 키워내고, 이마저도 자연이 허락하지 않으면 모두 날려버리게 되는데, 이 녀석들을 고작 몇 만원과 맞바꾸는 곳이다.


노력에 비해 너무 편히 사는 여기 있는 자식의 처지가 저기 있는 아빠의 처지와 어쩔 수 없이 대비될 때면, 다행스러움, 민망함, 부끄러움 등등 못난 속물적 본성이 솟아오르고 오만 감정이 교차한다. 최근에 시작한 논문 작업을 위해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한 자기모멸감을 느끼면서도 내가 쥐고 있는 것을 내려놓을 용기가 아직은 크지 못한 것을 보면, 나는 그저 그런 경제학 박사이기 이전에 이미 그저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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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생활2018.04.24 11:39


최 박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농담 섞인 질문을 하나 던졌다.


"경제학을 잘 모르거나 잘 알아도 밥그릇을 지키고 싶은 법조인에게 전관예우와 관련한 실증 분석에 대해 설명/설득하는 것과, 강력한 이념으로 무장한 페미니스트 경제학자에게 남성 역시 성차별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설득하는 것, 둘 중 무엇이 더 어려울까요?"


나는 후자가 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념에서 출발하는 사람은, 마치 종교 광신도와 같아서, 답을 미리 정하고 자신의 논리를 그 답에 끼워맞춘다는 꺼림칙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답이 정해져 있으면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


객관성을 지향해야 하는 경제학도라면 자신의 이념을 최대한 배제해야 옳다. 데이터를 다룰 때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페미니즘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는 사실이 데이터의 왜곡된 해석으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분명 가설에는 이념이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가설의 바탕이 되는 통계의 해석은 최대한 객관적이어야 한다.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난 "82년생 김지영"과 "79년생 정대현"이 평일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통계청 데이터를 정리해보았다. 30대 상용직 임금근로자로 표본을 한정했다.


(맨 아래 부분에 새로 업데이트했다.)


데이터 자체만 보면 누구나 아쉬운 말을 할 수 있다. 정대현은 회사에서 늦게까지 일하느라 힘들고, 김지영은 회사에서 빨리 돌아와 육아와 청소를 하느라 힘들다. 일터에서 야근하고 집에서 바로 쓰러지는 정대현과 일터에서 집중하고 집에서 가사를 돌보는 김지영. 둘이 서로 보듬어도 모자랄 텐데 둘이 왜 그렇게 싸우는지, 내가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러한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여전히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결국 역지사지가 중요하다고 할 것이지만, 말은 쉽다. 선천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자신의 고됨 앞에서 상대의 고됨을 알아채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그래도 조금만 서로 이해를 하려고 노력하면 지금처럼 심하게 싸우지는 않을 것 같은데.



------


18.04.24. 추가.


위의 그림을 페이스북에 올렸고 여러 좋은 견해를 들을 수 있었다. 아래에 정리해서 남긴다.


이 그래프 및 Casey Mulligan 교수의 그래프가 던져주는 시사점은, 남성이 장시간 일할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하기 싫어하는 시간(새벽)에 더 많이 일한다는 것이고, 이 점이 소위 남녀임금 차이의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는 겁니다. 차이만 나타나면 그것을 무턱대고 차별이라고 외치는 행태에 제동을 거는 또다른 측면이라고 봅니다.


애시당초 경제적 삶의 질이란 "가구 소득/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개인 소득/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가 노동자 효과(Added Worker Effect)"라고 노동경제학에서 부르는 것이 있는데, 간단히 말하면 남편이 직장에서 벌어오는 돈의 현재 추이와 미래 예측 추이에 따라 여성이 노동공급을 결정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개인 소득"이 정말로 경제적 삶의 질을 결정한다면 이런 실증적 패턴을 설명할 수가 없지요. 뿐만 아니라, 노동시간 측면에서 보면 가구 전체 노동시간이 아니라 개인의 노동시간과 노동시간 타이밍이 해당 개인의 삶의 질에 영향을 끼친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죠.


부가 노동자 효과(AWE)는 결혼하고 직장을 그만두는 것 뿐만 아니라 이미 결혼하고 몇십 년 지난 상태에서도 남편이 실직하거나 혹은 실직 가능성이 커 보이면 여성이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것까지 포괄하는 개념이죠. 그러한 미시적 행동의 거시적 결과는 여성은 경제활동 참가율이 경기변동 사이클에 대해서 그다지 동행적(procyclical)이지 않다는 것이고 이것이 Mankart and Oikonoumou (2017) 논문에 기술되어 있습니다.


("남자는 외조, 여자는 내조"라는 전통적 규범(traditional norm)이 사실은 여성의 선택에서 비롯되었고 해석하시는 것인가요?) 이것이 선택이냐 강제냐라는 논의는 선택과 강제라는 단어 자체가 수리과학적으로 통일된 정의가 있지 않기 때문에 논의가 지난해지지만, 저는 이것을 성별 분업으로 해석하는 Gary Becker의 주장이 제일 설득력이 강하다고 봅니다. 이것을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강제라고 부른다면 Adam Smith가 말하는 분업도 강제적 분업일텐데 이것은 강제성에 대한 제대로 된 정의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더군다나 남성이 새벽이나 늦은 밤에 더 많이 일하는 경향을 나타내는 이 자료는, 이것을 선택이라고 부르느냐 강제라고 부르느냐 여부와 상관없이 여성보다는 남성에게 불리한 분업 형태를 보여주는 자료죠.


(남녀임금 차이를 설명하는 노동경제학 논문들은 언제쯤 소진이 될까요?) 극히 최근까지도 전혀 새로운 논문이 계속 나오는 것을 보면 아마 계속될 주제일 것 같습니다. 심지어 최근 나온 논문 중에는 남자들은 친구가 많은데 그 친구들이 서로 친구가 아닐 가능성이 높고, 여성들은 친구는 적은데 그 친구들끼리 서로 친구일 가능성이 높은 소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데, 이 점을 토대로 불확실성이 높은 직군에서 남녀임금 차이가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한 논문도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채널인데 이러한 논문이 계속 나오는 것을 보면 아직 할 것이 많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18.04.26. 추가.


왼쪽은 2004년 30대, 오른쪽은 2014년 30대의 하루 시간사용 패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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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가슴2018.04.22 02:12

나는 아직도 나를 잘 모르겠다. 크게 살고 싶은지 작게 살고 싶은지, 시끄럽게 살고 싶은지 조용하게 살고 싶은지, 바쁘게 살고 싶은지 여유롭게 살고 싶은지, 혼자 살고 싶은지 함께 살고 싶은지, 아무 것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냥 내 기분에 맞춰 나만의 동굴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고 있다는 편이 정확해 보인다.

잘하면서 또 좋아하는 것이 업이 되면 얼마나 행복하겠느냐만 그러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좋아하는 것도 업이 되면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변하는 경우를 수없이 많이 경험했다. 그래서일까, 잘하는 것을 업으로 하고 좋아하는 것을 취미로 두어야 한다는 이분법적 사고가 굳건하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연구는 취미로 해야겠다는 마음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어떤 사람에게도 존경이라는 단어를 쓰기는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으로부터 본받고 싶은 부분은 여전히 찾을 수 있다. 우리 회사에는 여러 측면에서 훌륭한 분들이 많고, 학구열이 넘치기로는 윤종원 대사님이 단연 돋보인다. 현업 중에도 논문을 쓰시는 것을 보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신선한 자극이다.

본업에 충실하면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 일 잘한다는 말을 들으면서 그래도 봐줄 만한 논문을 종종 써내는, 그러한 경제관료로 살아갈 수 있을까. 내 능력과 노력에 비추어 너무 큰 욕심을 부리는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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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머리2018.04.18 07:18


일부 정치학자들의 연구도 경제학자들의 연구와 접점이 많다. 로체스터 출신들은 수학 모형을 이용하여 정치 현상을 설명하는 경우가 많고, 이들은 이론 미시경제학을 전공하는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인상을 준다. James M. Snyder Jr.가 건재한 하버드 출신들은 수리 모델보다는 실증 분석에 중점을 두는 것 같다. 정치 현상을 계량적으로 분석하는데 나의 흥미와 많이 겹친다. 이와 관련하여 박정희 지지율과 신문/라디오 방송 간의 관계를 재미있게 분석한 논문을 하나 읽었다.


This study explores whether and how exposure to mass media affects regime support in competitive authoritarian regimes. Using geographical and temporal variation in newspaper circulation and radio signal strength in South Korea under Park Chung Hee's competitive authoritarian rule (1961–1972), we find that greater exposure to media was correlated with more opposition to the authoritarian incumbent, but only when the government's control of the media was weaker. When state control of the media was stronger, the correlation between media exposure and regime support disappeared. Through a content analysis of newspaper articles, we also demonstrate that the regime's tighter media control is indeed associated with pro-regime bias in news coverage. These findings from the South Korean case suggest that the liberalizing effect of mass media in competitive authoritarian regimes is conditional on the extent of government control over the media.


경제학이 미디어에 관심을 가진지도 시간이 많이 흘렀다. 예전에 을 남긴 Matthew Gentzkow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도 종종 비슷한 연구들을 엿보고는 한다.


내가 자주 확인하는 Melissa Kearney 역시 유사한 연구를 한 적이 있다. "Media Influence on Social Outcomes: The Impact of MTV's 16 and pregnant on Teen Childbearing"은 청소년 임신의 부작용을 경고하는 TV 프로그램이 실제 10대 출산율을 줄였다고 분석하고 있으며, 이 논문은 경제학 최고 저널인 American Economic Review에 실렸다. 또한 미국의 "Sesame Street"는 우리나라의 "뽀뽀뽀"나 "하나둘셋"에 상응하는 TV 프로그램인데, American Economic Journal에 실리는 "Early Childhood Education by MOOC: Lessons from Sesame Street"는 이 채널을 본 아이들의 학교 성적이 향상되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두 논문 모두 경제학에서 매우 저명한 저널에 수록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분석이라고 보인다.


중학교 졸업하는 해까지 우리집 TV는 채널이 딱 4개 나왔다. MBC, KBS1, KBS2, 그리고 EBS. 포켓몬스터가 나오는 SBS(충북은 CJB)를 그렇게 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당시 우리집 TV가 머리를 세게 내려쳐야만 잘 나왔던 마법의 Goldstar TV였기 때문에. 


TV가 바보상자라는 이상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아빠는 맨날 TV 전기코드를 뽑아서 숨겨두었다. 그런데 버리지는 않았다. 이 뜻은 자기가 보고 싶을 때는 나도 TV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주말 저녁은 네 가족이 모여 같이 드라마를 보는 시간이었다. 첫사랑, 파랑새는 있다, 여우와 솜사탕, 이러한 것들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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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머리2018.04.14 06:41


연구자들 세계에 와서 이들을 최대한 흉내내려고 아둥바둥하고 있다. 여기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논문을 어느 저널에 내느냐"라는 큰 틀 안에서 많은 것들이 이루어진다. 이 우산 속에 내재된 각종 세세한 룰을 엿볼 수 있는데, 내가 속한 세계의 룰과는 많이 다르다. 


나는 기본적으로 연구자들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옹호하는 편이다. 지금도 그러한 기질이 있어서, 연구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강하게 내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축에 속한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가 실제로 이어져야 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감히 말하지만, 실제는 연구자의 몫이 아니라고 본다. 만약 그러고 싶다면 우리 세계 사람들을 영리하게 설득하거나 스스로가 우리 세계로 기민하게 넘어와야 한다.


직역마다 운영 원리가 다르다. 그리하여 새로운 세계에서는 새로운 언어를 이해해야 한다. 여러 생각이 있겠지만, 우리 세계의 본질은 "타협"이라고 본다.


순전히 나만의 느낌이지만, 연구자들은 이 타협을 잘 못하는 경향이 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연구자들은 최대한 자신이 옳다고 말해야 하는 룰에 따라 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연구자들은 새로운 세계의 룰을 배우려고 하기보다는 새로운 세계에 자신들의 룰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안 그러는데 너네는 왜 그러냐?"라는 말을 유독 많이 한다는 느낌이 있다.


타협이 기본인 우리 세계에 오고 싶은 연구자라면, 때로는 연구자로서의 소신도 버릴 수 있어야 하고 그래서 이중적이라는 비난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세계에 오기 위한 최소한의 마음가짐이다. 그럴 용기와 배짱이 없으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는 편이 낫다. 나도 주관이 뚜렷한 편이지만 그것은 내 개인 사정일 뿐이다. 좋든 싫든, 우리 세계에서는 어느 정도 타협, 절충, 균형의 원리를 존중해야 한다.


사실 연구자 자신들의 세계에서 자기반성을 할 줄 안다면 우리 세계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타협은 "나는 틀릴 수 있다."를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연구를 얼마만큼 신뢰하는가? 내 연구를 그렇게까지 신뢰하는데 내 연구는 왜 좋은 저널에 실리지 않는가? 내 연구가 좋은 저널에 실리지 않았는데 내 소신이 옳다고 믿을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설령 내 연구가 좋은 저널에 실렸다 할지라도 내 연구를 근거로 정책이 형성되었을 때 나는 결과에 책임을 질 자신이 있는가?


이들 질문을 곱씹으면 왠지 스스로가 작아지면서 타협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나는 스스로를 연구자들 세계에 잠시 방문한 손님이라고 여긴다. 그렇지만 내 능력이 닿는 한에서 이들의 룰을 배우려고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 여기에 나의 악취미가 더해져서, 거짓말 조금 보태자면 나는 내 분야의 우리나라 주요 경제학자들이 무슨 연구를 하는지 거의 다 안다.


그래서일까, 우리 세계에 관심이 많은 이쪽 세계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노력을 했으면 바람이 있다. 그러면 서로 조금 더 편안한 소통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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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숑
2018/2018_생활2018.04.01 07:36


봄방학에 서부를 가볍게 돌고 왔다. 자연으로 갈수록, 몸이 힘들수록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다. 좋은 음식을 먹거나 가만히 쉬거나 하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니다. 이제는 돈보다는 시간이 아쉬운 시점이 되었다. 되도록 많은 곳을 돌아다니려고 노력 중이다.


 


나는 여기에서의 삶에 만족하는 편이고 대부분은 "헬조선" 탈출을 꿈꾼다고 하지만, 내 마음은 천천히 한국으로 떠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중요한 선택들, 가령 결혼이라든지 가족계획이라든지 커리어라든지 하는 것은, 한국에서의 고된 삶을 먼저 생각하면서 결정할 것이다.


부침이 있는 삶이고, 어려운 상황에서 그 사람의 본성이 드러난다. 이는 전쟁 속에서 찾을 수 있지 평화 속에서는 찾을 수 없다. 지나친 밝음에 도취되었을 때 내리는 결정은 앞으로 겪어야 할 어두움의 깊이를 간과한다. 그리고, 나는 내 본성에 역하는 결정을 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싶지는 않다. 


왜 굳이 힘든 상황을 우선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쾌한 답은 솔직히 없다. 다만 나는 영화 "가타카"의 Ethan Hawke처럼, 투박하고 미련하고 구식적인 삶에 진한 향수를 느낀다. 특이한 향수이다.


전쟁터에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존중 받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이에 대한 이해를 공유하지 못하면 오랫동안 함께 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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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숑
2018/2018_가슴2018.03.26 07:15


차별 주제를 연구할 만한 우리나라 데이터를 구하게 되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데이터를 만져보고 있다. 성별/직업별 근무시간 및 임금격차를 성차별 문제와 연결 짓는 시도를 해보려고 하는데, 공부하는 과정에서 사소하게나마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오랜만인 것 같다. 참고 문헌도 다시 찾아 읽고 있다. (링크 1, 2)


관련 연구를 찾다 보니까 좌파에 가까운 경제학자들의 글도 많이 접하게 된다. 이상헌 박사님은 균형이 잘 잡힌 노동경제학자이다. "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라는 책을 쓰셨는데, 딱딱한 보통의 경제학 서적과는 다르게 상당히 문학적인 감성으로 현실 경제 이야기를 잘 풀어쓴 책이다. 글을 참 따뜻하고 예쁘게 잘 쓰신다.


차별과 관련하여 자성의 목소리가 담긴 이 분의 을 하나 읽었다. 진솔함이 담긴 자기반성의 글은 그 솔직함이라는 매력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묘한 힘이 있다.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인간적인 말을 하면서 정작 자신은 차별에서 우위를 선점하고 있는 동물적인 행동을 볼 때면 자연스럽게 반감이 생긴다. 위선에 대한 적대감은 상당히 자연적인 반응이고, 나는 이 원초적인 감정에 잘 굴복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나 역시 위선의 덫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삶의 많은 부분이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모순으로 가득차 있다. 또한, 그렇게 위선적인 사람을 싫어하냐고 묻는다면, 또 그렇지도 않다. 나는 종종 실수를 저지르면서 이것에 터무니 없는 고집도 부리고 과한 자책도 하는, 사람냄새가 나는 사람이 좋다. 그리고 이들은 결국 나처럼 모자라고 부족하고 위선적인 사람이다.


대체로 공부하는 사람들은 차가운 이성과 철저한 논리가 주가 된 냉철한 지식인이 되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한 치의 오차와 모순도 허용하지 않는 삶을 꿈꾸고, 그래서 자신의 삶 자체도 하나의 완벽한 원리로 관통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사람 세계에서든 자연과 우주 세계에서든, 하나의 완벽한 원리라는 것 자체가 사실은 신기루일지도 모른다. 부존재하는데 존재한다고 착각하고 열심히 좇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몸 따로 머리 따로 노는 것은, 내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표현을 빌어오자면, 정말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사람을 생각의 집합체로만 보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사람을 사람 그 자체로 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사람들의 위선을 바라보면, 아예 이해를 못할 일도 아닌 것 같다.


상원이네 가는 길, 석양이 피어오르는 하늘에 떠 있는 반달. "사소한 감정따위는 개나 줘버려, 이성이 최고야!"라고 말하면서도 종종 괜한 시적 감수성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위선을 거부하겠다는 나의 원대한 꿈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타고난 팔자조차도 이러한 모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의 선조는 일백번 고쳐 죽어도 뜻을 굽히지 않겠다고 외치다가 세상을 떴다. 그러나 당신의 후손인 나는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정신으로 일백번 고쳐 죽어도 지조를 지키겠다는 사람이 못마땅해서 철퇴를 든 사람에게 더 공감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참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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