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2019_머리2019.01.16 09:32


"금융당국 출신 인사의 금융회사 재취업에 따른 경제적 효과"라는 KDI 보고서를 읽었다. 현재 KDI 홈페이지에는 8페이지 요약 보고서만 올라와 있는데 나는 운좋게 영어 원문과 한글 원문을 모두 읽을 수 있었다. 이 분야를 전공하며 비슷한 논문을 썼고 유사 논문들에 대해 레프리 리포트를 작성했던 경제학도로서 간단하게 비평을 남긴다. 


1. 응용미시를 전공한 사람들은 일단 타당한 식별전략을 수립하여 처치효과(금융권 인사의 재취업 효과가 발생하였는가?)를 깔끔하게 잡아내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한다. 이것을 완벽하게 해내야만 메커니즘(전문성 가설/부당공동행위 가설)도 논할 수 있게 된다. 많이 발전한 현대 실증경제학에서조차 메커니즘은 아직도 추론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그러나 이 보고서의 경우 메커니즘을 처음부터 가장 강조하면서 본말이 전도되었다는 인상이 있다. 저자들이 미시이론/산업조직론을 전공했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의 이해가 결여되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2. 어떤 공공 부문의 인사가 언제 왜 그 민간 회사로 옮겼는지 자기선별 가능성이 있다. 처치효과의 명확한 식별을 위해서는 이것에 대한 설명과 방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놀랍게도 이 보고서에는 이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다. 실증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이것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것은 보고서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다. 좋은 연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


3. 공직 인사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조금 부족해 보인다. 보고서의 경우 유독 금융감독원만 문제를 삼고 있는데 현실에서는 누구를 금융감독원 출신 인사라고 명확하게 따지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가령 기획재정부에서 일하다가 금융위원회로 갔다가 금융감독원에서 은퇴했으면 이 사람은 어디 출신인가? 한국은행에서 일을 오래 했다가 금융감독원에서 잠깐 일한 후 은퇴했으면 이 사람은 어디 출신인가? 실제 존재하는 경우이다.


4. 성과지표로 채택한 종속변수가 결과값이 나온 것 위주로 임의 취사되었다는 불안한 심증이 있다. 재무제표를 볼 때는 수익성/안정성/성장성 측면에서 여러 지표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기본이다. 왜 부실자산비율과 위험가중자산만 선택하여 금융회사 경영의 성과지표로 활용했는지에 대한 명쾌한 소명이 없다. 또한 경영목표가 엄연히 다른 금융기업들을 일괄적으로 포괄해서 분석했는데(은행, 보험, 증권, 카드 등), 성격이 다른 이들을 동일한 성과지표로 평가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5. 분석 대상이 되는 임원에 왜 대표, 부회장, 감사, 사외이사, 일반 임원이 모두 포함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들 모두가 분석 대상인 종속변수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감사의 경우 회사 내에서 주요 의사결정권자도 아니다. 이 경우 처치변수와 종속변수 사이에 명쾌한 연결고리가 없게 되고, 따라서 보고서가 핵심으로 삼는 메커니즘의 설명력도 약해진다.


6. 회전문 인사의 강도를 조건부 확률로 측정하였는데, 이것이 과연 보고서에서 말하는 조건부 확률로 측정이 가능한 것인지 회의적이다. 조직의 절대적 규모뿐만 아니라 상대적인 지위에서도 기관 간 차이가 있는데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외부인으로서 국민들의 주목을 받는 어떤 단체의 인사와 조직 등을 논할 때에는 많이 신중해야 한다. 잘 모르는 사람들을 호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KDI의 실력과 자정작용을 신뢰한다. 저자 두 분 역시 무척 훌륭한 경제학자이다. 보고서가 아직 설익은 느낌인데 앞으로 더 단단한 연구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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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019_생활2019.01.13 16:24


주말에 당일치기로 서울 한 번 다녀오려면 생각보다 많은 기력이 필요하다. 운동 체력과 생활 체력이 다른 모양인지 테니스 코트에서는 몇 시간을 보내도 몸이 멀쩡한데 길거리에서는 약간의 시간만 써도 몸이 축난다.


오랜만에 일치반 06 동기들끼리 여의도에 모여서 롱바와 황의 결혼을 축하해주는 모임을 가졌다. 서울 다녀온 후 기절에 가까울 만큼 몸살감기를 심하게 앓고 있지만, 그래도 간만에 친구들을 볼 수 있어서 많이 좋았다. 우리 반 우리 학번 동기들이 유독 사이가 좋은 것 같다. 다들 멋지게 살고 있다.


복직이 확정됐다. 잠시 떠나있었던 본업으로 복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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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019_머리2019.01.03 12:30


"감세를 하니까 오히려 세수가 늘었다."는 주장으로 유명한 Arthur Laffer 교수가 우리나라 소득주도성장에 대해서 신랄한 논평을 남겼다. 민감한 이슈에 깊게 생각하지 않은 개인적 소견을 남긴다.


어느 정부에서나 성장과 분배라는 핵심 두 축은 유효하다. 단지 둘 사이에서 무게균형이 바뀔 뿐이지 어느 하나만 추구되지는 않는다. 수많은 언행에서 시장주의자라는 사실이 묻어나오는 나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장만을 중시하고 재분배를 경시하지는 않는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현 정부의 구호는 성장이라는 단어가 사람들을 헷갈리게 할 뿐 사실상 재분배정책과 다름 없다. 따라서 내용에 대한 이해 없이 소득주도성장이라는 프레임 자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무의미한 논쟁만 야기할 뿐이다.


근본적으로 시장 대 정부, 자유 대 평등과 같이 도식화된 이념적 구분으로 점철된 과거의 경제학에서 벗어나야 한다. Arthur Laffer 같은 구 경제학자들이 이러한 성향을 숨김 없이 드러낸다. 최근의 유망한 신진 경제학자들은 그렇지 않다. 이념이 생각의 출발점이 될 수는 있지만, 생각의 전개 자체는 선입견을 배제하고 실제 데이터에 근거하여 최대한 과학자적 자세를 견지하고자 노력한다. 사안별로 상황별로 시기별로 합리적 대안이 다르기 때문에 철저히 실용주의적 접근을 취한다.


과거의 경제학이 "크지만 불완전한 관점"이었다면 현대의 경제학은 "작지만 완전한 관점"으로 진화하고 있다. 정책 영역도 이를 따라갈 필요가 있다. 이념 경제학에 현혹되지 말고 실증 경제학의 세계로 넘어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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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019_생활2019.01.02 14:04


미국에서 총 5번의 학부 수업 조교를 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마지막 TA 평가 결과를 받았는데 아주 엉망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마지막 학기여서 아무래도 학생들과의 개인적인 교류가 가장 적었고 수업 자체에도 신경을 제일 덜 쓴 편이었는데 평가는 가장 좋다. 많은 경우에 있어 예상과 결과가 엇갈린다는 사실을 이번에도 체감한다.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이 단짝과도 같으면 정말 좋겠지만 그러한 경우는 많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적당히 온화한 환경에서 계약서에 명시된 사항만 합리적이고 깔끔하게 이행할 수 있다면 특별한 정서적 교류는 없어도 괜찮다고 본다. 자기 일에 책임을 다하면 될 뿐 그 이상은 강요될 수 없다. 물론 나는 일에서 그 이상을 바라는 편이지만 담백한 사이도 나쁘지 않다. "우리가 남이가?" 남이다. 


 - Thanks!

 - He did a great job.

 - Hoyong was also very kind and inclusive.

 - TA explained concepts better than the professor. TA was fantastic.

 - His content knowledge was very high and answered all questions well.
 - He was great! I went to another section occasionally and my TA was a lot more intelligent. I was lucky to have him.

 - The discussions were the only thing that gave us a sense of direction because the lectures were so unengaging and difficult to follow.

 - I do like the format of the discussion handouts, because it covers great main concepts and equations in an easy to understand format. I also like that (TA) Hoyong highlighted important information to remember verbally during discussion. His organization and preparation for the content material showed in his explanations of the material show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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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생활2018.12.26 06:09


이민가방 두 개로 떠나서 이민가방 두 개로 돌아왔다. 미국에서 워낙 작은 삶을 살았던 모양이다. 물론 여기에서도 사생활은 계속 작은 삶을 살 것 같다. 가지고 있는 것이 귀하고 많으면 괜히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럽다. 깔끔한 여백이 많은 것이 좋다.


다만 "움직이면 돈이다."라는 말을 실감한다. 새로 시작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서 무엇을 하더라도 어디를 가더라도 돈이 필요하다. 가령 미국에서 변해버린 몸에 예전에 입었던 옷들은 모두 기부해야 할 판이니 그러할 법도 하다. 나잇살인가 싶다.


이렇게 한 해를 또 보낸다. 1월 중순부터는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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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머리2018.12.21 09:06


영국 잡지 이코노미스트는 10년마다 당대 최고의 소장 경제학자들을 선정하여 그들의 연구를 소개하고는 한다. 예전에 다른 글에서 이 기사를 잠깐 언급한 기억이 난다. 아래는 당시 선정되었던 경제학자들이다.


1988년.

Larry Summers, Jeffrey Sachs, Andrei Shleifer, Paul Krugman, Gregory Mankiw, Sanford Grossman, Alberto Alesina, Jean Tirole.


1998년.

Michael Kremer, Edward Glaeser, Casey Mulligan, Steve Levitt, Caroline Hoxby, Glenn Ellison, Wolfgang Pesendorfer, Matthew Rabin, David Laibson.


2008년.

Jesse Shapiro, Roland Fryer, Esther Duflo, Amy Finkelstein, Raj Chetty, Iván Werning, Xavier Gabaix, Marc Melitz.


그리고 올해 2018년.

Melissa Dell, Isaiah Andrews, Nathaniel Hendren, Stefanie Stantcheva, Parag Pathak, Heidi Williams, Emi Nakamura, Amir Sufi.


지적 황홀경을 선물하는 이들의 업적을 담담히 훑어보며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현대 주류 경제학계의 연구 경향을 어느 정도 잘 이해했다고 자평한다. 1998년 이후로 응용미시, 실증미시가 경제학계 내에서도 확실한 주류로 부상하였으며 이 흐름은 2018년에도 유효하다.


그러나 경제학은 끊임 없이 변화하고 발전한다. 이코노미스트도 현 시대 최고의 소장 경제학자들은 한 순간의 영감으로 거침 없이 곡을 써내려가는 모짜르트가 아니라 곡이 잘 써지지 않아 머리를 쥐어 뜯어가며 부단히 노력하는 모짜르트라고 강조한다.


이를 보면 앞으로 학교를 잠시 벗어나더라도 공부를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졸업 이후에도 스스로 꾸준히 정진하면서 국내 좋은 연구자들과도 계속 교류할 수 있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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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생활2018.12.18 01:57


졸업식을 치렀다. 미국 대학 졸업식의 경우 한 번쯤은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아도 괜찮다. 흥미로운 요소가 많다.


예전에도 생각했지만 졸업식은 부모를 위한 날이다. 다만 시간, 비용, 날씨 등 여러 조건이 그다지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엄마아빠를 부르지 않고 이곳 친구들과 조촐하게 보냈다. 사진을 찍어 보내는 것으로 당신들의 아쉬움을 달랬다. 어디인가에 자랑할 것 같은 모습이 눈에 선하지만 하루 정도는 그 마음을 이해해주기로 한다.


2010년 2월 26일 학부 졸업사진을 꺼내 보았다. 김연아가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날이라 기억한다.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겉모습이 크게 변한 것 같지는 않다. 궁극의 노안이다. 그렇지만 속마음만큼은 조금은 더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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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가슴2018.12.10 06:13


"내가 무엇을 해냈다."라는 똑같은 자기 과시에도 어떤 사람에게는 진실이라 응원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허세라 폄하한다.


"내가 누구를 안다."라는 똑같은 인맥 자랑에도 어떤 사람에게는 있어 보인다 생각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없어 보인다 생각한다.


"걔는 괜찮다."라는 똑같은 본인 칭찬에도 어떤 사람에게는 고마움을 느끼고 어떤 사람에게는 부담감을 느낀다.


똑같은 자기 과시, 똑같은 인맥 자랑, 똑같은 본인 칭찬에도 나는 사람마다 다른 마음을 먹는다. 결국 내 스스로가 어떤 사람과는 더 가까워지고 싶고 어떤 사람과는 더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소박하고 수수하고 조용하고 차분한 사람이 좋다. 그러나 정작 내 자신한테는 이와 반대되는 성향이 점점 두드러진다. 스스로도 이 점을 잘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자꾸만 잃어가는 나의 이상향을 주변 사람에게 대신 찾고 싶은 것일까. 나와 맞는 사람은 누구일까. 비슷한 고민을  꾸준히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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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머리2018.12.04 06:08


흔히 경제관료에게 거시경제 통찰력이나 금융 전문성 등을 기대하지만 나는 이 영역에 관심이 적은 편이다. 나는 고용노동, 교육, 의료보건, 과학기술 등 실생활에 와닿는 미시 부문의 구체적인 정책에 애착이 더 크다. 소수의 회사 사람들이 경제학 박사 과정에 들어와서 거의 거시경제학을 전공하는데 비해 나는 노동/공공경제학을 전공했다. 회사 내에서 이들을 계속 다루려면 해당 분야의 예산 편성이나 정책 조정 업무를 해야할 텐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분야가 사무관들 사이에서 인기가 크게 있지는 않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어느 영역에서 일하게 될지 아직 잘 모르겠다. 고되지만 흥미 있는 일이 좋을까, 흥미는 없지만 편한 일이 좋을까, 아니면 다 필요 없고 승진 같은 요소만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모처럼 우리나라 맥락에서도 간접적으로 참고할 수 있는 교육경제학 논문 두 편을 훑어 읽었다. 둘 다 내가 자주 즐겨 읽는 Economics of Education Review 저널에 수록된다.


하나, 선생의 실력을 공개하면 실력 있는 선생으로의 학생 쏠림 현상이 두드러질 수 있다. LA에서 제자들의 학업성취도로 선생들의 실력을 평가한 적이 있고 이것이 대중들에게 공개된 바 있다. 이러한 정보 공개는 실력 있는 선생에게 성적 좋은 학생이 몰리는 결과를 야기했다. 논문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대학원 연구실을 운영하는 교수들에 대한 학생들의 솔직한 평가가 담긴 "김박사넷"이라는 웹사이트가 떠올랐다.


내가 지나치게 실용적인 사람일 수도 있지만 학교 선생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면 안 된다고 보는 편이다. 수업 내용 전달과 면학 분위기 조성이 최우선이다. 과하게 말하면 학생에게 필요한 지식을 잘 전달한다는 담백한 목표가 학교 선생에게 기대할 수 있는 전부이다. 학생과의 정서적 교감과 같은 것은 선생에게도 학생에게도 강요하기 힘들다. 이들은 추상적이기도 하거니와 두 주체 간 공식적 계약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다.


둘, 학교 운영에 자율성을 부여하여 학교 간 경쟁을 강화시키는 것이 학생들 성적 향상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사실 교육 정책은 분석 대상의 맥락이 무척 다양해서 직접적으로 참고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분명 우리나라 자율형 고등학교와 폴란드 자율형 고등학교의 환경에 큰 차이가 있으므로 해석에 주의가 필요할 것이다. 현재 한 저널에서 리뷰 중인 내 졸업논문의 두 번째 장과 연관이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나의 분석 역시 학교 간 경쟁이 학생들의 좋은 학업 성적으로 치환되었다는 뚜렷한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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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머리2018.11.28 07:09


의식의 흐름에 따라 글을 쓰다 보니 크게 세 가지 소재가 중구난방으로 얽혀 있다.


얼마 전에 한인 경제학과 박사생들끼리 조촐한 식사 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들었다. 어느 수강생의 엄마가 1학년 경제원론 수업을 듣고는 내용이 학생들에게 너무 어려운 것 같다고 담당 교수에게 항의했다는 것이었다. 자녀 대신 입시설명회를 쫓아다니는 부모, 자녀의 낮은 학점을 항의하는 부모 등과 같은 사례는 들었어도, 수업이 어렵다고 따지는 부모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극성맞은 부모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전 세계 공통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부모들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는 힘들어도 이들 자녀의 성적이 조금 더 좋을 것이라는 심증은 있다. 어느 풍파에서도 자신을 강력히 보호해주는 부모가 있다면 자녀는 오직 자기 공부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위 논의의 맥락을 국가와 산업 단위로 넓히면 Friedrich List의 유치산업보호론을 떠올릴 수 있다. 어느 산업이 국제 무역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일정 기간 동안 국가 차원에서 보호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달 American Economic Review에는 유치산업보호론과 관련한 Reka Juhasz의 엄청난 논문이 하나 수록되어 있다. 읽으면서 한 편의 대서사시라는 느낌이 들었다.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806년 대륙봉쇄령으로 인해 프랑스 북부 지방은 남부 지방에 비해 영국 산업혁명의 혜택을 덜 받게 되었다. 가까운 바닷길이 막히면서 지중해 쪽으로 무역로가 선회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륙봉쇄령은 일종의 자연실험적 상황으로 작동한다. 왜냐하면 프랑스 북부 지방은 자체적으로 방적 산업(cotton spinning)의 기계화를 도모해야 했기 때문이다. 대륙봉쇄령이 프랑스 북부 지방의 방적 산업을 보호하는 효과를 야기한 것이다. 동 논문은 나로서는 엄두도 못낼 데이터 작업 등을 거쳐 이것의 장단기적 효과를 체계적으로 분석한다.


위 논문은 경제사 영역에 해당한다. 경제사 분야에서 대중적으로 유명한 경제학자는 아무래도 장하준 교수님이다. 예전에는 장 교수님의 다양한 주장을 어느 정도 우호적으로 평가하는 이었다. 그러나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한 이후에는 조금 더 비판적인 자세에서 바라보게 된다. 특히 내생성 통제를 핵심으로 하는 노동/공공경제학을 전공하니까 더욱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유치산업보호의 긍정적 효과를 주장했다는 점에서 위 논문의 저자와 장 교수님은 공통되지만, 이와 같은 주장의 타당한 근거를 보여줄 수 있는 연구자로서의 역량에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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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가슴2018.11.27 05:06


전반적으로 무미건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도 종종 느끼는 무심하고 냉소적인 성향이 더욱 두드러진다. 밝고 다채로운 상태에서는 작은 삶도 큰 삶도 모두 의미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둡고 무미건조한 상태에서는 작은 삶도 큰 삶도 모두 부질없다고 생각한다. 종종 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연기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기계적으로 열심인 삶에는 자신이 있다. 나도 모를 의무감과 책임감이 나를 감싸고 있고, 그렇게 사는 삶은 보람을 느끼게도 가슴을 벅차게도 만든다. 그러나 왜 그러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하다. "아, 나는 무엇을 위해 살까?"처럼 답도 없는 궁금함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다만 "아, 생각하기 싫다."라는 귀찮음이 위와 같은 궁금함을 깨끗하게 지워버린다. 또한 기계적으로 열심인 삶은 사람을 단순하고 바쁘게 만들기 때문에 왜 그러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잊게 만든다. 앞으로 바빠질 것을 생각하면 "왜?"는 사실 사치스런 고민이기는 하다. 


나에 대한 자성의 힘이 사그라드는 것처럼 남에 대한 비평의 날도 무뎌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만의 개똥 철학은 더욱 확고해지는 반면에 이것을 상대에게 설득하려는 다혈질적 기질은 점점 줄어드는 탓이다. 원만함인지 소심함인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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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생활2018.11.22 06:02


몇몇 사람들과 함께 시카고에서 테니스를 치고 왔다. 뱃살이 불어난 모습이 눈에 띈다. 운동하는 것만큼이나 마시는 것을 덜 절제하는 탓이다. 서브할 때 엉덩이가 앞으로 더 튀어나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은 뱃살 때문일 것이다. 운동은 곧잘 하지만 몸은 비대해진, 생활 체육을 즐기는 아저씨의 몸으로 바뀌고 있다. 


SNS를 통한 자기표현의 빈도에 비례하여 실수, 찬사, 비난의 수도 비례한다. 조금 더 무게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 더욱 흠모했을 분들의 인간적인 모습에 대한 양가적 감정을 느낀다. 물론 예전에 자기계발서에 대해 느낀 감정과 비슷해서 딱히 특별할 것은 없다. 다만 권위에 대한 존중이 점점 사라지는 세상에 아쉬움이 있다. 이 역시 아저씨스러운 마음인 것 같다.


몸도 마음도 아저씨가 되어간다. 아저씨가 되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피터팬과 꼰대 사이의 어느 지점을 찾아 균형 있게 서 있는 좋은 아저씨가 되는 것이 최선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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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숑
2018/2018_생활2018.11.13 06:23


요새 일본 드라마를 많이 보고 있다. 한국 드라마보다 짧아서 몰아 보기가 좋다. 일본 특유의 과한 연기에도 적응이 된 것 같다. 9월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아래에 쓰고 나니까 이것이 물리적으로 가능한 시간이었나 싶다.


Yui Aragaki와 Masato Sakai가 나오는 것 위주로 한자와 나오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아빠와 딸의 7일간, 코드 블루 1-2-3, 전개걸, 리갈 하이 1-2, 하늘을 나는 홍보실, 결혼 못하는 남자, 드래곤 사쿠라, 마이 보스 마이 히어로, 파견의 품격, 5시부터 9시까지 나를 사랑한 스님, 관료들의 여름, 닥터 린타로, 호타루의 빛. 아마 적지 못한 드라마도 있을 것 같다. 집중해서 몰아 보니까 작품 내용은 기억에 더 잘 남는 것 같다.


ONE OK ROCK이라는 일본 그룹의 음악도 많이 듣고 있고, 여름에 홋카이도에 갔다온 이후 아무래도 일본에 약간 취해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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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21. 추가. 


리뷰어 노트 쓰는 것이 조금 귀찮았었는데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라는 드라마를 보니 꼼꼼히 보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긴다. 일본드라마에 여전히 푹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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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숑
2018/2018_머리2018.11.13 05:35


지난 글의 연장선 상에서 생각이 파생되었다. 잘 모르는 분야여서 글쓰기가 조심스럽지만 궁금함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남긴다.


([3] 보통은 자기 주장이 비교적 약하고 연구에 진중하며 조심성이 많은 사람들이 연구의 오용을 우려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은 전문가에게 강한 주장과 근거를 원하고요. 그러다 보니 연구자 세계에서 높게 평가되는 분들과 대중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분들에 간극이 조금 생기는 것 같고요.)


우리 회사, 한국은행, KDI, IMF 등 주요 기관에서 경제성장률 등을 예측할 때 구간추정치(interval estimate)가 아닌 점추정치(point estimate)를 제시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단순한 엑셀 산식을 통해서든 복잡한 동태적 거시경제모형(DSGE)을 통해서든 2.7%와 같은 구체적인 경제성장률이 도출되기 위해 고용, 무역, 재정 등등 경제의 핵심 부문이 고려되었을 것이다. 2.7%라는 숫자의 도출에는 내년도에 어떻게 될지 정확히는 알 수 없는 각각의 부문에 대한 가정이 상당 수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에 변화가 생기면 2.7%라는 숫자도 변동할 것이다.


따라서 2.7%라는 점추정치를 제시하는 것보다는 주요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2.6-2.8%와 같은 구간추정치를 제시하는 것이 조금 더 중립적인 자세를 견지하면서 차분하고 건전한 논의를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어려운 모형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는 전혀 없다. 다만 고용에서 부정적, 무역에서 긍정적 등등 핵심 요인을 분해하여 여러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만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강력한 노벨경제학상 후보이기도 한 Charles Manski도 비슷한 논의를 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Policy Analysis with Incredible Certitude"라는 논문에서 Manski는 덜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더 강력하게 말하는 정책 연구의 여러 사례와 그 이유(conventional certitude, dueling certitudes, conflating science and advocacy, wishful extrapolation, illogical certitude, and media overreach)에 대해서 설명한다.


가정이 강하면 강한 주장을 할 수 있지만 그만큼 신뢰도가 떨어진다. 가정이 약하면 신뢰도 높은 주장을 제시할 수 있지만 그만큼 주장의 강도가 약해진다. "덜 확실하지만 더 솔직한 분석"과 "더 확실하지만 덜 솔직한 분석"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을 찾기가 쉽지 않다. 나는 이 중에서 무엇이 더 옳다고 답을 내릴 수 있는 수준에 있지 않다. 다만 덜 확실하지만 더 솔직한 분석을 제시하는 과학자들의 연구를 조금 더 잘 이해하고 조금 더 신뢰하는 의사결정자가 되어 최선의 판단을 내리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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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20. 추가.


현재 한국 최고의 계량경제학자이신 이석배 교수님이 내 생각과 비슷한 칼럼을 쓰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정답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현대사회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실증 토대를 구축해 나가고자 하는 것이 맨스키 교수가 주창하는 계량경제학의 유토피아인 셈이다. 그의 고견이 경제 정책 수립 및 실증 분석에 광범위하게 이용되는 그날이 오길 고대한다."


Posted by 고숑
2018/2018_가슴2018.11.06 11:54


대학원에서의 시간은 나에게 "좀생이"로서의 가능성을 다분히 보여주었다. 식별 전략이 맞네 틀리네 등등 단지 학계 사람들 몇몇만 관심 가질 이야기로 자위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자각할 때면 불현듯 불안해진다. 세상을 글로 먼저 마주하는 특수한 세계이다. 자꾸 좀생이가 되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느낌이 싫어서 당장은 학교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주장이든 선동이든 자기 생각을 뒷받침하는 좋은 논문 겨우 하나 찾아서 "이것 보아라. 이 글도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하는 것만큼 편협하고 현실 감각 부족한 것도 없다. 물론 제대로 된 근거 하나조차도 찾지 않으면 무식한 사람이 되겠지만, 불완전한 활자에만 천착하면 비슷한 급의 지리멸렬한 사람이 될 뿐이다.


경제학과 대학원생들의 여러 정신 질환을 조사한 보고서가 있는데, 나는 아래 항목에 해당하는 사람인 것 같다.

Only 26% of Economics students report feeling that their work is useful always or most of the time, compared with 70% of Economics faculty and 63% of the working age population.


정답뿐만 아니라 결론도 없는 연구는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정답은 없을지언정 결론은 명확한 현실로 이제는 돌아올 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원래부터 상당히 세속적인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그 감각을 더 살리고 싶다. 김우재윤태진 교수님의 칼럼을 곱씹어 읽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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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09. 추가.


선배들과의 대화.


[1] 쪼잔함이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말씀에 충분히 공감합니다. 그 사소함까지 집요하게 파고 드는 이곳의 문화를 무척 좋아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학교 밖에서 그 쪼잔함을 보이면 그 순간 그 세상에서는 도태된다는 것에 있지요. 학계의 전문용어를 쓰고 학계의 세심한 태도를 밖에 보여주는 순간 그 사람이 어떤 취급을 당할지는 형님도 충분히 인지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근본적으로 학교에 있고 싶은 사람이 아니니까 고민이네요. 


의사 결정에서 좋은 연구가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할까요? 과연 항상 우선순위에 둘 수 있을까요? 심지어 그 연구가 정답이 아니라면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그에 따른 책임은 누가 어떻게 져야 할까요? 연구자들은 연구가 의사 결정에서 정말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더 큰 난관과 장애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독립 단위로 활동하는 연구자와 조직 단위로 활동하는 회사원은 관점이 본질적으로 다른 것 같습니다.


분명 서로 역할이 다르겠지요. 다만 사람은 자기중심적이죠. 그래서 서로의 역할에 대한 존중보다는 물어뜨는 것이 사회의 기본 생리인 것 같고요. (현실도 모르는 놈이 떠든다 vs.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놈이 떠든다) 두 입장을 모두 이해하고 싶어서 공부를 했지만, 여기에서 시간을 보내니까 앞으로 어떤 스탠스를 잡아야 되는지 더욱 헷갈려집니다.


[2] "시장을 믿는다." 시장, 경쟁, 자유, 자생적 질서, 제가 성역처럼 여기는 원칙이고 저 또한 이 문장을 굉장히 신뢰하지요. 다만 경제학도로서는 기본적인 이 개념 역시 말을 꺼내는 순간 밖에서는 시장만능주의자라든지 신자유주의자라든지 하는 프레임으로 싸잡아 비판 받는 것을 자주 목도합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우매하다고 비판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시장원리가 세상을 관통하는 유일무이한 원리가 아닐 수 있으니까요.


[3] 보통은 자기 주장이 비교적 약하고 연구에 진중하며 조심성이 많은 사람들이 연구의 오용을 우려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은 전문가에게 강한 주장과 근거를 원하고요. 그러다 보니 연구자 세계에서 높게 평가되는 분들과 대중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분들에 간극이 조금 생기는 것 같고요. 둘 다 잡으면 좋겠지만 Krugman 같은 사람조차 비판 받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타협이 필요해 보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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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숑
2018/2018_가슴2018.11.05 07:57


졸업논문 중 두 번째 장이 한 저널에서 개정(revision) 요청을 받았다. 논평을 보는데 몇몇은 수준이 상당하다. 최대한 숨기려고 했던 약점을 정말 잘 찾아서 지적하고 있다. 개정에 반 년이라는 시간을 줄 정도로 지적이 많아서 최종적으로 출판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어렸을 때부터 자존심이 셌던 나는 싫은 소리를 들을 때면 혼자 분해하며 자주 울었다. 그래서 사람과 그 사람의 일을 별개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세상은 어쩔 수 없이 싫은 소리가 오가는 곳인데 그럴 때마다 혼자 속앓이를 하면 어떻게 버티냐는 것이었다. 프로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프로는 내 작업에 대한 상대방의 비평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나 역시 상대방의 작업을 객관적으로 비평하며, 이 비평을 그 사람에 대한 비평이 아닌 비평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나는 이 말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공연히 트집만 잡을 뿐이다. 프로가 되면 그렇게 하기가 더욱 어렵지 않을까. 자신의 작업에 자신의 혼을 불어넣는 것이 프로 아닌가. 그러면 나 자신과 내 작업 간의 경계가 더욱 희미해지고 그러할수록 내 작업에 대한 비평은 나에 대한 비평으로 인지되기 쉽지 않을까.


나의 일, 나의 연구, 나의 가족, 나의 친구, 나의 외모, 나의 성격 등등 이들 중 어디까지가 내가 생각하는 진짜 나의 영역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어찌 되었든 나는 이들에 대해 남으로부터 싫은 소리 듣는 것을 여전히 무서워하고 두려워한다. 군대에도, 회사에도, 대학원에도 있었으니 싫은 소리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을 법도 한데 나는 아직도 이것에 대한 내성이 그리 강하지가 않다. 웃기는 사실은 그렇게 싫은 소리에 내성이 강하지 못하면서도 또 겉으로는 최대한 의연한 척 태연한 척 군다는 것이다. 화초인 주제에 잡초처럼 군다.


싫은 소리가 나의 객관적 평가에서 비롯되었다면 이것을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텐데 나는 그렇게까지 대범하지는 못하다. 혼자 속앓이를 많이 한다. 물론 싫은 소리를 성장의 밑거름으로 승화시키려고 스스로 애쓰는 편이다. 그렇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싫은 소리에 고스란히 담긴 나의 약점과 한계를 마주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나에게 화가 나고 싫은 소리를 한 상대에게도 나쁜 마음이 생긴다. 프로가 되고 싶은데 여전히 프로가 되지 못하고 있다. 싫은 소리에 초연해지고 항상 중심을 잘 잡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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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숑
2018/2018_머리2018.10.31 06:56


실증경제학 논문은 상당히 정형화된 틀을 따른다. 크게 7가지 목차로 구분할 수 있다.


1. 서론(Introduction)

 - 서론이 서론이 아니다. 사실상 모든 내용을 함축하여 전달한다. 독자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데 매우 중요하다.


2. 기존 문헌(Literature Review) 및 배경 설명(Background Knowledge)

 - 이 연구와 유사한 주요 문헌들을 소개하고 동 연구가 기존 문헌을 어떻게 보완하는지 설명한다.

 - 사회제도적 맥락 등 동 연구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배경 지식을 간단하게 요약한다.


3. 데이터(Data) 및 샘플 구성(Sample Construction)

 - 어떤 데이터를 사용했는지 소개한다. 특별한 데이터라면 이 점을 강조하게 된다.


4. 실증 전략(Empirical Strategy)

 - 인과관계를 어떻게 밝힐 것인지 계량 분석 방법에 대해서 논한다.


5. 실증 결과(Empirical Result) 및 강건성 검증(Robustness Checks)

 - 결과를 도출하고, 이 결과가 여러 다른 위험 요소로부터도 강력히 방어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6. 메커니즘 탐구(Mechanism)

 - 이 인과관계가 어떤 채널을 통해 나타나는지 여러 가설 중 강력한 것들을 제시한다.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


7. 결론(Conclusion)

 - 연구 요약, 정책적 시사점, 앞으로의 과제 등에 대해 말한다.


논문의 계량적 측면을 평가함에 있어 기존에는 4번의 타당성 검증에 초점이 맞추어졌다면 최근에 잘 나가는 AEJ 논문 등을 보면 4번뿐만 아니라 추론의 영역인 6번의 설득력에도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 같다. 좋은 전략으로 어떠한 실증 결과를 도출한 후 이것이 "왜" 나타났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도 제시하기를 원한다. 대체로 연구자들은 4번과 6번에 많은 공을 들인다. 그러나 연구를 활용하는 정부 등지의 사람들은 2번을 더 필요로 할 때가 많다. 물론 개인적인 느낌이다.


오늘 레프리 리포트(Referee Report)를 하나 작성했다. 나의 잘못은 안 보여도 남의 잘못은 잘 보이는 법이다. 다만 성의를 보인 논문에 대해서는 한 번 정도 기회를 더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적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논문이 더욱 발전할 수 있고, 해당 저널에서 최종 리젝을 받더라도 다른 저널에 투고할 수 있을 정도로 논문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


쌀쌀한 비가 내린다.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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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04. 추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면서 사회에도 중요한 "연구 주제"가 더 중요한가, 아니면 연구 주제를 제대로 분석하는 "인과관계성 검증(식별 전략)"이 더 중요한가? 연구를 평가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두 축이다. 무엇이 더 중요한가? 데이터의 한계 등으로 생각보다 많은 경우에 있어 둘은 상충된다. 이와 관련하여 EJMR 웹사이트에서 가슴에 참 와닿는 문구를 보았다.


 - Noneconmetrician statisticians underemphasize good identification strategies in observational studies, but econometricians way overemphasize it. Step one should always be posing a scientifically interesting research question. How one goes about answering it should always be step two, not step one. I'd rather read a paper that offers suggestive evidence with messy identification on an interesting question than one that offers clean identification on an uninteresting question. I'd also be more interested in a paper that gets a precise enough estimate with an imperfect identification strategy than one that gets clean identification but enormous variance.


 - I am generally sympathetic to the idea that we emphasize too much on endogeneity. Of course, causality matters a lot and it is great to see evidence from a good natural experiment. However, I'd personally enjoy a paper that summarizes the relationships in the data, and presents a variety of theories that are consistent with these relationshi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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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04. 추가.


병찬이와 대화하다가 남긴다.


경제학자들에 대한 세간의 기대와 이들의 작업이 불일치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있다. 특히 최근의 경제학 박사 과정이 "할 수 있는 말만 하는 훈련 과정"으로 변모하면서 이러한 불일치는 더욱 심해지는 듯하다.


"할 수 있는 말만 하는 훈련 과정"은 아래의 1과 2로 요약된다.

1.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대로 된 방법론을 차용했는가?

2. 1을 통해 나온 결과가 신뢰할 수 있는 범위에 있는가?


문제는 1과 2가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정작 중요한 0을 놓치는 측면이 있다는 사실이다.

0. 어떤 문제를 다룰 것인가?


가령 2002년에 경제학 최고 저널 AER에 실린 페널티킥 사례 분석 논문이 세상에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는지 비판 받을 여지도 충분히 있다고 본다. (물론 나는 해당 논문의 가치를 인정한다. 학문은 유희로부터 발전되는 부분도 있다.) 다만 논문을 저널에 투고해보면 알겠지만 대부분의 논문 리젝 사유는 1과 2에서 파생된다. 경제학자도 먹고 살기 위해 타협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위의 문제는 많은 경제학도들이 공감하는 것들이다. 다만 나 같은 사람이 말하면 아무도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다. 일단 현업에서 인정 받는 수준이 되어야만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법이다. 냉혹한 세상의 이치이다. 따라서 저명한 경제학자들의 논의를 참고한다.


0과 1에 대해, 저명한 경제학자 Christopher J. Ruhm이 "Shackling the Identification Police?"라는 글을 올렸다. 이 세상에 의미 있는 주제의 선정이 더 중요한가, 아니면 사소한 문제이더라도 이를 경제학적으로 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중요한가? 대가도 비슷한 고민을 한다. 아직 방법론 안에서도 리듀스드 분석과 스트럭처럴 분석이 서로 대립하는 편인데, 이보다 근본적인 고민인 "경제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필요도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2에 대해, 5% 신뢰수준에서 유효값이 나오지 않은 논문의 가치에 대한 Alberto Abadie의 논문이 흥미롭다. 


Posted by 고숑
2018/2018_머리2018.10.27 07:57


사립유치원의 회계 투명성과 관련하여 많은 이야기가 오가는 상황이다. 고려대 이한상 교수님의 칼럼이 이를 잘 보여준다. 자연스럽게 보육/육아정책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원래부터 "워킹맘"은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소재이기도 했다. (글 1, 2, 3, 4, 5)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성별 임금격차와 가구 내 육아 부담의 비대칭성 문제"라는 제목의 (학술논문은 아니지만) 시사성 있는 보고서가 재정포럼 2018년 10월호에 실렸다. 최 박사님 보고서에는 82년생 김지영의 애환을 그래프로 그려본 내 잡문도 소개되어 있다.


박사님은 글 말미에 아래와 같은 정책적 시사점과 주의점을 언급하신다.


 - 첫째, 출산에 따른 성별 임금격차가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면 보육정책을 통한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제고 노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제고는 보육정책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 둘째, 가구원 중 1인이 육아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사용해야 하는데 이 일차적 책임을 많은 경우 여성이 부담하고 있다. 이 부담을 함께 나누어야 하는 남성은 오히려 결혼과 출산이라는 사건에 대해 여성과 반대로 노동시간을 늘리는 방향으로 대처하고 있었다. 결국 이 문제는 현재 육아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다른 가구 구성원(기혼 남성근로자)이 보다 많은 시간을 육아에 투여함으로써 해결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노동시간의 감축이 필요하다. 즉 독박육아를 막기 위해서라도 만성화된, 정규 근로시간 종료 후 2시간 이내의 초과근무는 사라져야 한다.


 - 셋째, 보육 및 육아에 있어 정부의 재정지원을 고민함에 있어 그 초점을 육아비용을 줄이는 데 두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분포를 남녀 간 대칭적으로 만드는 데 두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 내놓은 임금 삭감 없는 육아기 근로시간 1시간 단축 정책은 의미가 있다. 만약 본 연구에서의 분석처럼 하루 중 병목 현상이 퇴근 전 혹은 퇴근 직후 1-2시간에 집중되고 있고 이것이 취학 아동보다는 미취학 아동에게서 더 자주 관찰되는 현상이라면 노동시간을 최대한 유연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위원회는 육아휴직을 남녀 공동 사용하도록 법을 개정하겠다고 했는데 육아휴직의 경우 오히려 남녀가 공동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서로 교차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타당할 수도 있다. 


 - 결혼과 출산 이후 여성의 가사와 육아 시간이 남성보다 더 늘어난다는 연구결과를 해석함에 있어 주의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그 원인을 해석함에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현상을 남녀 간 역할에 대한 차별적 사고의 결과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기혼 남성이 미혼 남성에 비해 근로시간을 크게 늘린다는 점에서 결혼과 육아에 따른 가구의 비용 상승에 대한 자기보험의 선택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박사님의 정책적 제안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


일단 "자기 필요에 의한 야근이 왜 문제입니까? 좋은 일꾼이 필요한 회사와 그 회사에서 성공하고 싶은 사람은 무슨 죄입니까?"라고 물어보는 자발적 노예 성향이 다분한 나로서는 둘째 제안에 물음표를 붙이게 된다.


셋째 제안은 남편의 육아 독려를 목적으로 부부 간 육아휴직을 교차 사용하자는 것이다. 일견 타당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과연 원하는 효과를 가져올지는 확실한 판단이 서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는 분명히 다르고, 서로 다르기 때문에 시간 사용에서 비대칭이 발생한 것일 수 있다. 인위적으로 구조화된 제도의 대칭성이 과연 원하는 결과를 낳을 것인지 의문이다. 따라서 평균적인 우리나라 부부가 이 제도를 어떻게 활용할지 예측이 잘 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아빠만 쓸 수 있고 엄마에게 양도할 수 없는 스웨덴의 유급 육아휴직제도가 부부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한 AEJ 논문이 있다. 놀랍게도 동 논문은 이 제도가 결혼 초기 이혼률을 높였다는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이 제도의 취지는 엄마 대신 아빠가 육아를 하고 이를 통해 엄마가 계속 일을 하게 돕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의도와 다르게 현실에서는 엄마가 무급을 감수하고서라도 육아를 하는 선택을 했다. 따라서 동 제도는 가구 총소득을 줄였고, 이것은 이혼률을 증가시키는데 일조했다. 물론 아이슬란드 사례를 이용하여 비슷한 제도를 연구한 논문은 상반된 결과를 도출한다는 점에서 해석에 주의를 요한다. 우리나라는 어떠할 것인가?


Posted by 고숑
2018/2018_머리2018.10.26 03:28


2018-2019 잡마켓 논문들을 "흝어" 보고 있다. 매년 이맘때쯤 즐기는 취미이다. 논문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하나하나를 아주 꼼꼼하게 보지는 않는다. 졸업하게 되면 한동안 즐길 수 없을 취미 혹은 앞으로 잊혀질 취미가 될 것 같아서 올해는 더 애착이 간다.


관심 있게 본 논문들을 아래에 간단히 소개했다. 계속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Terry Moon. Capital Gains Taxes and Real Corporate Investment

이미 예전에 글을 남긴 적이 있는 이다.


Mingyu Chen. The Value of US College Degrees in Foreign Labor Markets: Experimental Evidence from China

"중국에서 미국 학부 졸업장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라는 주제로 27,000개의 가짜 이력서를 직접 제출해서 계량적 증거를 탐구한 논문이다. 예전에 흑인/백인 이름으로 가짜 이력서를 회사에 제출했던 실험과 유사하다(Bertrand & Mullainathan, 2004). 조기유학 열풍이 있었다가 점점 사그라들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참고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내가 알기로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가짜 이력서 보내면 업무방해죄로 처벌 받는다.


Jaime Arellano-Bover. Career Consequences of Firm Heterogeneity for Young Workers: First Job and Firm Size

청년층의 첫 직장이 대기업인지 중소기업인지에 따라 커리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는 논문이다. 동 논문은 뱀 머리보다는 용 꼬리의 길을 택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인과관계 측정을 위해 Bartik IV를 차용하였다. 논란이 많은 도구변수(IV) 분석이지만 그래도 정형화된 도구변수 중 하나가 바로 Bartik IV이다.

(The IV approach uses variation in the composition of regional labor demand across time and space. It relies on the notion that the idiosyncratic hiring shocks of a small number of large employers can impact regional labor demand composition. Expansions or openings of new operations will make large firms hire batches of inexperienced workers differentially across years. Depending on when and where a young worker enters the labor market, she will be exposed to different propensities to join larger or smaller firms.)


Yiwei Chen. User-Generated Physician Ratings - Evidence from Yelp

많은 환자들이 병원 방문 후 Yelp에 리뷰를 남기는데 이것이 의료서비스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한 논문이다. 데이터 수집을 위해 머신 러닝 기법을 이용하였고, 영리하고 독특한 IV를 사용하여 내생성 문제를 완화하였다.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주제, 테크닉 등 여러 측면에서 매우 압도적이다.


Y. Joy Chen & Sitian Liu. Mate Preferences and House Prices in China: Evidence from Online Mate Search

잡마켓 논문이 아니어서 덜 다듬어지기는 했지만 두 학생이 같이 공저한 논문 중에는 중국에서 짝을 찾는데 있어 부동산이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엄한 현실을 보여주는 글이 있다. 내 또래 남자들이 느끼는 압박감을 잘 보여준다. 집을 가진 남자가 유리하다는 결론이다. 그밖에도 두 학생은 배우자 동의 없는 이혼이 끼리끼리 매칭을 야기한다든지 명나라 관료의 사회경제학적 기원을 밝힌다든지 등등 상당히 재미있는 주제의 논문을 많이 쓰고 있는 것 같다.


Kieu-Trang Nguyen.

우연히 홈페이지를 둘러보게 되었다. 내 졸업논문 첫째 장을 작성하는데 영감을 준 사람이라 기억하고 있다. 연구 능력이 출중한 것 같다.


Lauren Russell. Better Outcomes Without Increased Costs? Effects of Georgia's Public College Consolidations

조지아 주에서 있었던 대학 통합이 학생 등록률 및 졸업률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한 논문이다. 나와 비슷한 스타일로 논문을 쓴다는 느낌이었다. 다른 MIT 학생들과 비교할 때 특출난 논문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문제의식과 시사성이 좋아 보인다. 이 논문을 읽으면서 나는 다른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우리나라의 경우 몇몇 지방 대학이 주요 거점 국립대로 통합되면서 갑자기 "신분 상승"을 경험한 학생들이 있다. 이 사건을 이용하여 명문대 효과(신호 효과)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SCM 방법 등으로 분석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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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26. 추가.


성차이, 성차별과 관련한 경제학 연구는 나의 주된 관심사이다. 친구들끼리 만나면 남녀 간 연애, 결혼이 주요 이야깃거리가 되는데, 스스로는 이들과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조금 더 과학적으로 생각하고 싶을 뿐이다. 최근 이수역 사건이 부각되면서 남녀 차이 논쟁이 불필요한 방향으로 전개된다는 인상을 받는다. 어느 한 극단으로 휩쓸리기 쉬운 분위기를 경계한다.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이슈라는 점을 잘 인지하고 관련 논의를 근본적으로 풀어가는 것이 내가 갖추어야 할 자세라고 생각한다.


Valentin Bolotnyy. Why Do Women Earn Less Than Men? Evidence from Bus and Train Operators

성차별의 주요 이슈 중 하나인 남녀 임금 격차의 원인을 탐구하면서 여성이 노동시간 유연성에 가치를 조금 더 주는 행태가 이러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내가 쓰고 있는 82년생 김지영 논문, Goldin & Katz 논문 등과 이 상당히 유사하다. 논문이 흥미로워서 저자와 논문에 대해서 이메일도 주고 받았다. 

(Mechanically, the earnings gap can be explained in our setting by the fact that men take 48% fewer unpaid hours off and work 83% more overtime hours per year than women. The reason for these differences is not that men and women face different choice sets in this job. Rather, it is that women have greater demand for workplace flexibility and lower demand for overtime work hours than men. These gender differences are consistent with women taking on more of the household and childcare duties than men, limiting their work availability in the process.)


Judith Liu. The Long-Term Impact of Work-Hour Regulations on Physician Labor Supply

시라큐스가 경제학 랭킹이 높지는 않은데 공무원들이 많이 가는 학교에서 종종 들러본다. 상당히 흥미로운 논문을 쓴 학생이 있다. 레지던트 근무시간을 줄이는 정책의 효과를 평가하면서 이 효과가 남녀 간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얼마 전에 최 박사님의 글에 논평을 남긴 바 있는데 해당 과도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다. 우연히 알게 된 Melanie Wasserman도 관련 연구를 깊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고숑
2018/2018_머리2018.10.22 21:59


9시 등교제와 관련한 논문 한 편을 Asia Pacific Education Review라는 교육학 저널에 올린다. 저명한 저널도 아니고 경제학 저널도 아니다. 부족함이 많은 논문이지만 그래도 첫 출판이라고 애정은 있다. 사랑하지만 숨기고 싶은 자식 같다고 할까. 출판에 일 년 이상 걸렸다. 회사에 비해 호흡이 긴 세계인지라 조금 답답하다.


다른 분야에 어떠한 끈도 없는 경제학도가 여타 사회과학 분야 저널에 단독 저자로 논문을 출판할 만큼 경제학의 범용성을 확인했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 내 능력에 경제학 탑저널은 불가능한 꿈이라는 것을 일찍 깨달았다. 어차피 연구자가 길이 아니라면 남들과 다르게 가자는 생각으로 여러 사회과학 분야 저널에 출판하겠다는 특이한 길로 선회했다. 다만 대부분이 단독 저자라 졸업하면 처리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흔히 박사에게 전문성을 기대하지만, 사실 박사의 박이 "넓을 박"이기도 하다. 타 분야에 대한 존중을 전제한다면 다른 영역에 기웃대는 것을 고깝게 여길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비단 연구에만 한정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더 많은 경제학도들이 더 다양한 영역에 나아갔으면 싶다. 공직도 마찬가지여서 경제 부처뿐만 아니라 다른 부처에도 경제학도가 많이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사변과 구호는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운좋게 물려받은 약간의 번뜩임과 부지런함 덕분에 자기 스스로 사변과 구호 너머의 경제학적 증거를 탐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작은 요량과 성실에 비하면 정말 큰 선물인 것 같다.


물론 사회과학적 현상에 대한 인식이 완전한 과학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이념, 정치, 현실, 힘의 논리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나도 너무나 잘 안다. 내 스스로가 매우 세속적이고 또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몸에 밴 사람이라 똑똑한 연구는 좋아하면서도 갑갑한 연구자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재미있는 모순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세상사를 최대한 과학이라 여기고 싶은 신념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그러한 측면에서 기술관료는 참 괜찮은 이상향이다. 연구 자체의 책임은 이상적인 과학자가 짊어지고, 연구 반영의 책임은 현실적인 기술관료가 부담한다. 훌륭한 과학자에게 자유로운 연구를 위임하고, 분별력 있는 기술관료가 이를 참고한다. 기술관료는 궁극적으로 연구자가 아닌 연구를 빌릴 수 있어야 한다. 사람 말고 그 사람의 연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짧은 기간 동안 이 세계를 거치면서 만든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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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26. 추가.


저널에 출판된 나의 첫 논문은 9시 등교제와 관련된 것이다. 이 논문을 볼 때면 나는 상당히 복잡미묘한 감정이 생긴다. 지도교수님 등 여러 사람들이 동 논문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일견 타당한 측면이 있었기 때문에 저널에 올리기에는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투고했던 저널에서는 논문이 호평을 받으면서 큰 어려움 없이 출판되었다.


Alan Sokal의 "Sokal Affair"를 떠올리게 한다. 과학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포스트모더니즘 학자들이 과학을 비판하는 세태를 풍자하고자 Alan Sokal은 적진 한가운데로 침투, 가짜 논문을 작성하여 이것을 포스트모던 학술지에 올리는데 성공한다. 가짜 논문을 저널에 투고하는 행동 자체는 학계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경박함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연구에 대한 최고의 진지함이 담겨 있다. 잘 알지 못하면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 내 논문은 고의로 조작된 것이 아니고 능력이 되는 선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의 타당한 비판을 제법 많이 받았다. 그러한 측면에서 내용적으로나 결과적으로나 결국 가짜로 조작된 논문과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 이 경우 나는 내 논문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그렇기 때문에 나는 논문이 출판된 저널의 랭킹을 따지고 그렇게 연구자들을 서열화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내 연구가 많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어느 수준에서는 용인되는 것을 직접 겪으니까 더욱 그렇다. 연구자를 서열화하는 나를 두고 학문에 대한 진지함이 없다면서 천박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랭킹 놀이"를 하는 내 경박함의 이면에는 사실 좋은 연구만을 참고하고 싶다는 나만의 진지함이 담겨 있다고 스스로를 변호한다.


궁극적으로 어디에서든 경쟁을 피할 수는 없다. 이것을 자신에게 얼마나 긍정적으로 승화시키느냐가 중요하다. 실제로 존재하는 실력의 차이가 분할 따름이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더 부단히 자신을 발전시키는 것이 더 나은 자세 아닐까.


Posted by 고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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