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018_생활2018.09.24 11:34


오피스 친구들과 근처 호숫가에 하이킹을 다녀왔다. 중국 친구 Zhigang에게 "빙빙이 정말 어떻게 된 거냐?"라고 계속 물어보면서 편하게 즐기다 왔다.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내니까 무척 한국스러운 풍경이라고 했다.


오늘처럼 오피스 친구들과 멀리 나오는 것은 아마도 마지막이었을 것 같다. 다들 마음이 바빠지고 있는 시기이다. 가을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주말 동안 심심해서 황 기자의 예전 블로그 포스팅을 훑어보다가 재미있는 글을 발견했다. 멀쩡한 대기업 때려치고 수많은 사람들이 "기레기"라고 폄하하는 직업으로 전직하여 고군분투하고 있다. 모든 직업은 자기가 하기 나름인 것 같다. 황은 적성을 잘 찾았다.


"재미있는 논문 발굴은 어떤 종류건 덕후 기자의 고상한 취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페북 열심히 하는 한 교수는 어렵게 쓴 논문을 알기 쉽게 해석하는 것이 기자의 역할이라고 하는데, 풀어 놓고 보면 별 의미 없는 내용도 중언부언 어렵게 써놓는 것이 특기인 사람들이 할 말은 아니라고 본다. 심지어 그들이 이야기하는 재미는 그야말로 그들만의 재미이다."


"페북은 언제부터인가 소위 지식 소매상 관종들의 시장이 되었다. 어떤 종류의 이야기든 토론을 두려워하지 않고 글을 올리는 사람들을 보며 경외감이 들면서도, 가끔은 글을 올려 내 지식을 뽐내겠지만 반박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식의 전문가들도 보게 된다. 토론을 거부하는 전문가는 사실 글을 올릴 자격이 없다고 본다. 비판에 상처 받고 징징될 것이라면 애초에 글을 올리지를 말아야 한다. 비이성적인 댓글은 대한민국에서는 그저 주어진 환경이다. 언제 대한민국의 네티즌에 고상함을 기대한 적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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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머리2018.09.21 02:37


아래는 작년에 기록했던 글이다.


======

얼마 전에 여기 4학년 미국 학생이 발표를 하나 했다. 전형적인 산업조직론 논문이다. 아래 5개 문장으로 간단히 정리된다.

 - 미국의 경우 전체 인구의 15%가 시골에 사는데 전체 1차 진료(primary care) 의사 중 10%만 시골에서 근무하고 있다.

 - 이들 의사가 부족한 시골 사람들의 건강 상태가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금전적 인센티브, 가령 시골 의사의 월급을 높이는 등의 정책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 왜냐하면 의사들이 자기 고향 혹은 자기가 나온 의대 근처 지역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 성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 따라서 정부가 사회 후생을 높이려면 의사가 모자란 시골 출신을 의사로 뽑는 지역할당제를 쓰는 것이 좋다.

======


이 친구가 말하는 지역할당제가 시골의 열악한 의료 서비스를 개선할 수 있는 좋은 정책적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위 논문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최신 논문을 보면 꼭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시골에서 일하는 의사가 늘더라도 의료 서비스가 개선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에서 실시한 "MPP(More Physicians Program)" 정책은 시골에 의사 공급을 증대시키는 결과를 이끌어냈지만 국민(신생아)의 건강 수준을 향상시키지는 못했다. 이는 첫번째 논문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부분 때문이다. 바로 의사와 간호사가 서로 대체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의사 증가라는 긍정적 효과가 간호사 감소라는 부정적 효과로 이어지면서 국민의 건강 수준에는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의료 서비스 부족으로 고통 받고 있는 시골 지역에 어떠한 다른 정책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이 쯤에서 우리나라에서도 논의 중인 원격 의료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아래와 같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던지다 보면 이것이 좋은 대안인지도 불확실해 보인다.


 - 지방의 의료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 의사들이 지방으로 가지 않는 주된 이유는 무엇인지?

 - 의사들이 지방으로 가게 할 금전적 및 비금전적 유인책이 있는지?

 - 일련의 유인책이 효과가 없다면 원격 의료가 대안이 될 수 있는지?

 - 일본에서 관련 정책이 어떠한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지? 원격 의료 도입으로 어떠한 부작용이 나타나는지?

 - 원격 의료로 인해 지방 소규모 병원이 사라진다면 의료 서비스 접근성이 오히려 더 나빠지는 것은 아닌지?

 - 차라리 의료인의 의료 행위 영역을 재검토하여 약사나 간호사에게 그 역할을 맡기는 것이 원격 의료보다 좋은 것 아닌지?


그렇기 때문에 상기의 논의는 "간호사 직역의 업무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로 전환될 수도 있다. 여기에서도 소개한 바 있다. 


"지방 의료 서비스 개선"이라는 정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금전적 인센티브, 의료인 지역할당제, 원격 의료, 의료인 업무 범위 재설정 등 다양한 방법이 제시될 수 있다. 그리고 제각각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무엇이 더 나은지 우선순위를 세우는 것은 정말 어렵다. 


이 글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정책이든 연구든 어떤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생각해야 하는 연결고리가 너무 많다는 것이고, 이 순환에는 끝이 없기 때문에 이것을 모두 고려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책에서든 연구에서든 어느 선까지 생각하는 것이 최선인지 결단을 내리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모든 이해관계자의 기대에 부응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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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숑
2018/2018_머리2018.09.20 07:18


스스로 발품을 팔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우리나라 경제학자들의 좋은 연구가 참 많다. 나는 이것을 많이 아쉬워한다. 그래서, 약간의 과장을 보탠다면, 나는 최근에 졸업한 우리나라 경제학자들이 어떤 연구를 하는지 거의 다 먼저 찾아 보는 편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아무래도 경제학 박사 시장의 특수성 때문이다. 우리 회사나 한국은행 출신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잡마켓에 나가기 위해 개인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여기에 자신의 연구를 공개한다. 그 중 나의 관심 분야에서 활발하게 연구 활동을 하는 분들만 추려 즐겨찾기를 해두고 가끔씩 취미 삼아 들러보고는 한다.


응용미시 분야에서 우리나라 사례를 이용한 연구의 경우, 진심으로 반가운 마음에 해당 논문을 굳이 읽어보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나 대신 우리나라 사회 현상 분석과 정책 연구를 해준 것인데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굉장한 영광이다. 가끔 감격이 넘칠 때면 미친 척하고 메일도 보내본다. 특이한 오지랖이다. 물론 답이 오지 않을 때도 있지만 단짝 친구들에게도 "읽씹" 당하는 것이 일상인지라 개의치 않는다. (적어도 태바는 항상 답을 해주니까 위로가 된다. 보통 "배고파. 잠이나 자."라고 한다.)


예전에 우리나라 사례로 좋은 연구를 하여 화제가 된 외국인 교수님이 있다. 프린스턴 대학에 있는 David Schoenherr인데, 이 교수님과 인연이 닿는 것으로 보이는 한 분이 역시나 우리나라 사례를 이용한 연구를 들고 잡마켓에 나온다. "자본이득 과세가 기업 투자, 주가 및 주식 발행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이다. 논문이 탄탄하다. 혼자 읽기 아까워서 소개한다. (아직 비공개이고, 나는 구버전을 읽은 적이 있다.)


참고로 David Schoenherr은 우리나라 사례를 이용한 또 다른 두 편의 연구를 공개하고 있다. 하나는 2006년에 공포된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중 제74조 [기존 경영자 관리인 제도]의 도입이 어떠한 경제적 효과를 낳았는지 분석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려대로 이어지는 학연이 은행의 기업자금 대부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한 것이다. (링크 1, 2) 일본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한자와 나오키"라는 드라마가 있다. 은행원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는 기업 파산, 자금 대부 등과 관련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이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았다면 우리나라 금융시장에 관한 이 두 논문 역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우리나라 학자들도 분석하기 어려운 것들을 도대체 어떻게 했는지 너무나도 신기하다.


현장의 경제부처 사무관들이 더 많은 경제학 연구를 이해하고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다만 현장에서 그렇게 할 시간이 전혀 없다는 것을 매우 잘 안다. 다들 극악의 업무 환경이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비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사무관들이 잠시나마 공부할 기회를 얻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국책연구기관이 그것을 대신 해주는 것 아닌가?"라고 말하기에는 서로의 간극이 생각보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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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숑
2018/2018_머리2018.09.19 06:49


* 스스로의 이해를 돕기 위해 비속어를 썼다. *


재미있는 데이터 패턴을 잘 보여주는 공헌으로 논문이 좋은 저널에 실리는 경우가 간혹 있다. 내가 좋아하는 Bertrand 교수님의 2015년 논문이 좋은 사례이다. 첨부한 그림은 아내의 소득이 남편보다 많아지는 순간 아내가 남편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가정의 비율이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을 보여준다.



이 그림을 보며 [한남충]은 성차이의 원인을 논할 것이다. "여자는 결국 자기보다 잘난 남자를 만나려는 경향이 있다."로 그림을 해석하는 사람이다. 경제학 용어로 [한남충]은 이 그림을 매칭 시장의 균형 상태로 보고 있다.


이 그림을 보며 [김치녀]는 성차별의 결과를 논할 것이다. "여자가 남자보다 더 잘 나가면 안 된다는 사회적 억압을 보여준다."로 그림을 해석하는 사람이다. 경제학 용어로 [김치녀]는 이 그림을 매칭 시장의 실패 상태로 보고 있다. (Bertrand 교수님은 이쪽 해석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 소개하는 논문은 [한남충]도 [김치녀]도 아닌 전혀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한남충]과 [김치녀]는 모두 이 데이터 패턴을 우측 분포가 찍어눌린 시각에서 보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와 같은 시각에서는 이 그림을 "남편보다 아내가 돈을 더 버는 가정의 비율이 줄었다."로 해석하게 된다.


그러나 이 그림은 우측 분포를 찍어눌러서도 가능하지만, 사실 좌측 분포를 끌어올려서도 가능하다. 고정관념에 빠져 있으면 좀처럼 생각하지 못하는 방향이다. 만약 우리가 이 그림을 좌측 분포가 끌어올려진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이 패턴을 "아내 소득이 남편 소득에 근접할 정도로 상승했다."로 볼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그림 패턴에서 성차별적 사회 관념의 존재를 이끌어낸 Bertrand 교수님의 해석과는 180도 다른 해석을 할 수 있게 된다. 직관적으로 정말 탁월한데 이 간단한 원리를 생각하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오타쿠]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통계청장 교체 시점에 특정 통계의 해석과 관련하여 많은 이야기가 돌았다. "당신들이 데이터를 제대로 다루고 타당한 추론을 했는가?"라는 큰 우산 밑에서 누구인가는 [한남충]이 되고 누구인가는 [김치녀]가 되어 열띤 논쟁을 벌였다. 아마 나도 그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오타쿠]스러운 논문을 보니 내가 우산 속에 갇혀 있던 것은 아니었는지, 특정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놓쳤던 것은 없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우측 분포만 짓누르는 [한남충], [김치녀]보다는 좌측 분포도 올려보는 [오타쿠]가 아무래도 낫지 않나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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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숑
2018/2018_머리2018.09.15 02:53


정책 기획을 담당하는 공직자들의 경우 박사님들이나 교수님들의 연구를 참고해야 할 때가 자주 생긴다. 이들을 평가하는 다양한 기준이 있겠지만, "연구자와의 관계"라는 범주에 한정하여 내 나름대로 세운 기준이 있다.


레벨 1. 다 필요 없고 결과가 어떻게 나왔습니까?

 ⇒ 창피하다고 할 수 있다.


레벨 2. 이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 적당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설명을 알아듣지 못하면 멸시나 사기를 당하는 수가 있다. 내가 유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레벨 3. 이 결과를 이끌어낸 연구 설계에 문제가 있는 듯한데 아닙니까? 다른 연구에서는 이렇게 말하던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만족스럽다고 할 수 있다. 대학원에서 살뜰히 시간을 보내면 이 수준에 그럭저럭 도달할 수 있게 된다.


레벨 4. 제가 더 잘 할 것 같습니다. 그냥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

 ⇒ 미쳤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대단하고 놀라운 분들이 실제로 소수 존재한다.


다만 공직자가 연구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사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역을 중시하고 또 아끼는 편이지만, 솔직히 현실에서는 그렇게 큰 비중으로 작동하지는 않는 것 같다.


공직자는 정책 연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무작정 수용하기도 거부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학교나 연구소에서 정책 연구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자기가 직접 경험하면 균형을 잡는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아래는 연구자로서 바람직한 자세는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경제학 실증 연구를 손수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가상의 사례이며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육아 수당을 늘리면 출산율이 증가한다."라는 가설을 검증해보려고 한다.

 ⇒ 모든 인맥과 검색을 총동원하여 데이터를 구한다. 그리고 많은 시간을 쏟아 데이터를 분석 가능한 형태로 정리한다.

 ⇒ 학교 수업, 기존 문헌, 교수님 조언 등을 토대로 가장 합리적인 회귀식을 설정한다. 그리고 회귀식을 돌릴 수 있는 통계 프로그램을 배운다.

 ⇒ 회귀식을 돌린다. 그런데 결과값에 별(*)이 뜨지 않는다. 그간의 노력이 무의미하게 되는 순간이다.

 ⇒ "안 돼!"를 외치며 여러 통제변수들을 집어 넣었다가 뺐다가 한다.

 ⇒ 운이 좋으면 어느 순간 결과값에 별(*)이 뜬다. "만세!"를 외치며 회귀식에 이 통제변수를 넣은 이유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위와 같이 처음에는 직관에서 결과를 이끌어내고자 했는데, 중간에 결과가 신통치 않아서, 나중에는 일단 유효한 결과를 만들어낸 후 직관을 보완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이 존재한다.


"좋은 연구"가 '타당한' 방법으로 가설이 검증된 것이라고 한다면, "정말 좋은 연구"는 '어떠한 타당한' 방법으로도 가설이 검증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정말 좋은 연구"는 다양한 분석 방법에 관계 없이 결과를 도출하고 지지할 수 있어야 한다. 연구를 어떻게 설계했느냐에 따라(=어떠한 계량 분석 방법을 사용했느냐에 따라) 결과의 유효성이 달라지면 이 연구의 신뢰성은 낮아진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대부분의 경우 연구 설계에 제약이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방법만이 차용될 뿐이다.


현대 계량경제학의 주요 분석 방법인 이중차분법, 도구변수법, 회귀단절법, 실험설계법, 이 네 가지를 이용하여 좋은 정책 연구가 많이 생산되고 있다. 가령 최저임금 이슈의 경우 이중차분법을 쓰지 않은 연구를 찾기 힘들 정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들을 과연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여기에 소개하는 이 짤막한 논문은 "이 네 가지 연구 방법에 따라 결과의 신뢰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무척 흥미로운 사실을 지적한다. 이를 "P-Hacking"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공(公)직자이자 공(工)직자라면 상당히 재미있게 읽어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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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가슴2018.09.13 04:30


우연히 피아노 연주곡을 들었는데 무척 아름답고 잔잔했다. 악보를 보니 이 건반에서 저 건반으로 정말 어렵사리 손가락을 옮기는 나도 얼추 따라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직접 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아마존에서 가장 싼 전자 피아노를 사서 연습하고 있다.


나라는 사람은 고상함이라고는 한 움큼도 찾아보기 힘든 사람이지만, 어울리지 않게 피아노 연주곡은 많이 좋아한다. 문이 두 개 달린 아빠의 빨간 프라이드를 타고 네 식구가 놀러다녔을 때 아빠는 항상 피아노 연주곡 테이프를 틀고 다녔다. 아마도 그 탓이 아닐까 싶다.


 


------


18.09.14.


악보를 본다기보다는 귀로 듣고 "이 음은 피아노 건반 이것과 대응이 되겠구나."라고 짐작하면서 치는 것 같다. 그래서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지만, 그래도 아는 곡을 내 손으로 직접 구현하는 재미가 있다. 아래 세 곡을 주말 동안 연습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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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숑
2018/2018_머리2018.09.11 02:16


"법원 판결에 법리 해석 외의 다른 요소가 영향을 미치는가?"와 관련한 일련의 연구들이 늘고 있다. 법관의 성별, 인종, 정당, 심지어 날씨가 사법부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다룬 논문을 살짝 훑어본 바 있다.


우리나라 사례를 이용한 연구도 점점 늘고 있다. 우리 최 박사님의 노력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최 박사님 등께서는 법원의 판결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공정하고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문제인식 하에 좋은 연구를 많이 하고 계신다. 특히 우리나라 법원 판결이 대기업 범죄 혹은 전관예우 사건에서 관대해지는 측면을 집중적으로 보고 있으며, 몇몇 논문들이 저널에 출판되기 시작했다. (링크 1, 2) 최근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커지는 가운데 사회적으로 매우 가치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연구들이 심증을 물증으로 잇는 가교 역할을 함으로써 보다 발전된 사법 시스템 구축에 도움이 되기를 소망한다. 개인적으로도 정말 축하 드릴 일이다.


다만 상기 일련의 연구들도 매우 냉철한 제3자의 입장에서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이 없지는 않다. 전수가 아닌 표본의 균형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전관들의 은퇴가 외생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 하급심과 상급심 중 어떤 것을 관측해야 효과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지, 범죄를 구성하는 어느 요인이 얼마만큼의 형량을 야기하는지와 같은 양형 기준을 적절히 통제했는지, 변호인단으로 구성되는 대부분의 사건에서 개별 변호사의 실력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등등 완벽에 가까운 연구를 위해 고려해야 할 여러 사항들이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무엇보다도 강조하고 싶은 점은, 법리 해석 외의 다른 특성이 판결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 자체가 판결의 오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효과를 야기하는 다양한 채널은 추론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측면을 간과하고 연구를 자극적으로 곡해하여 세상을 호도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인과관계 식별에 필요한 수많은 문제점을 완전히 극복한 경제학 연구가 과연 있을지는 의문이다. 경제학은 반증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과학이라고 할 수 있고, 이러한 과학적 성격 때문에 조금 더 신뢰할 수 있는 연구가 있을 뿐이지 완벽한 연구는 없다고 해야 한다. 또한 세상사를 오직 경제학적 관점에서만 바라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경제학의 한계를 겸허히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실력 있는 동료들의 객관적이고 엄격한 질문에 "현재까지 최선이라고 할 수 있는" 대답을 한 좋은 논문들이 좋은 저널에 실리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우리의 합리적 판단에 매우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 한 사람의 판단에 과학과 이성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해야 한다는 믿음에는 변화가 없기 때문에 나는 이러한 측면을 꾸준히 강조할 것이다. 물론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역시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균형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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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생활2018.09.06 03:52

평일과 주말 및 출근과 퇴근의 구분이 없고 작은 의무에서조차도 해방되어 있는 지금은 삶 전체가 취미로 가득차있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니지만, 그래도 굳이 취미를 꼽자면 몇 가지가 있다.

일단 테니스를 빼놓을 수 없다. 여건이 되면 가장 먼저 찾는 취미가 테니스이다. 직접 치는 것 외에 구경하거나 보는 것도 좋아한다. 프로 테니스의 경우 4대 메이저 대회ATP 1000 마스터즈 대회 등 매년 주요 대회가 정기적으로 열리기 때문에 좋아하는 선수들의 경기를 꾸준히 볼 수 있다. 나는 Dominic ThiemJelena Ostapenko를 좋아하는데 엄청나게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잘 생기고 예쁘게 생겨서 좋아한다. 테니스인으로서 좋아하는 이유를 굳이 찾자면, 공이 긁히는 날에는 공을 "팬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멋진 포핸드를 가지고 있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경기 운영을 공격적으로 가져가는 용감함을 보여준다.

테니스를 치기 어려운 상황인데 몸을 움직이고 싶을 때면 음악을 들으며 뛴다. 고3 시절 체력을 관리한다는 미명 하에 오후 6시에 수업이 끝나면 항상 학교 밖 논길을 30분 정도 달렸는데 그 때 나의 눈과 귀로 스며든 저녁 햇살과 음악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해질녘 고즈넉한 풍경을 만끽하며 달리는 것을 특히 좋아한다. 매우 오랫동안 규칙적으로 하고 있는 취미 중 하나이다.

그러나 움직이는 것을 귀찮아하는 성향도 없지 않아서 몸을 안 움직이는 취미도 제법 있다. 대표적으로 드라마 및 영화 보기를 들 수 있다. 특히 드라마 등에 현실 감정을 이입하거나 이들로부터 사회 이슈를 끄집어내어 생각하는 것을 즐긴다. 가장 최근에는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라는 일본 드라마를 보았다. 외모로 보나 성격으로 보나 남자 주인공이 롱바를 빼닮았다. 여자 문제에 있어 나와 별반 다르지 않거나 나보다도 한참 모자란다고 생각했던 롱바가 내가 유학 나온 사이에 연애를 하고 조만간 결혼까지 할 수 있는 이유를 이 드라마를 보며 어렴풋하게나마 추론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밖에 남다른 취미로 블로그에 글 남기기, 논문 찾아 읽기를 들 수 있겠다. 그렇지 않아도 머리를 과잉 소모해야 하는 직장인의 삶인지라 머리를 상당히 굴려야 하는 이들 취미가 오래 이어질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지적 욕구와 배설 욕구를 고려하면 생각보다 강력한 취미로 명맥은 유지할 것이라고 본다. 

주변 사람들이 내가 책을 많이 읽을 것이라고 오해를 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나의 경우 취미도 두세 시간을 넘기면 집중력이 흩뜨러지고 지치기 시작한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단행본을 거의 못 읽고, 읽더라도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책만 읽는다. 그래서인지 목적 없는 인터넷 서핑처럼 짧은 시간에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간단한 취미가 독서의 자리를 대신한지 오래 되었다.

전반적으로 볼 때 나는 취미마저도 규칙처럼 만드는 단조롭고 건조한 사람이다. 예전에는 이러한 나의 투박함을 이겨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마냥 피하고 싶지만은 않은 것 같다. 개인의 생활에서만큼은 평온함, 잔잔함, 단순함, 소박함, 수수함, 예측가능함이 확실히 나의 지향점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담담히 느끼고 오롯이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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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가슴2018.09.03 05:17


마음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상황에서는 좋은 면보다 나쁜 면을 먼저 보는 반면에 타인의 상황에서는 나쁜 면보다 좋은 면을 먼저 찾아서 자기신세를 한탄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너는 집이 있지?" "너는 정년이 보장되지?" "너는 박사가 되지?" 등등 나의 성취에서 보이는 밝음을 말하면서 자신의 어두움을 끄집어낸다. 동정하지 못할 일도 아니지만 막상 이들이 처한 상황을 보면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다. 이들도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룬, 대체로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너는 서울에 살지?" "너는 연봉이 높지?" "너는 자격증이 있지?" 등등 내가 맞받아칠 말이 없어서 안 하는 것이겠는가. 다만 나는 그렇게 자신에 대한 불만 속에 평생을 살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그러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갈 수 있었던 길이었으나 결국 가지 않고 다른 길을 택해서 생긴 회한이나 미련을 왜 상대방에게 불편함을 안겨주는 방향으로 해소하는지 잘 모르겠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끼리도 삶의 태도가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다.


모든 것에는 명암이 있고 밝은 만큼 어두운 법이다. 다른 사람을 볼 때는 그 사람의 밝은 점만 보이기 쉽다. 그러나 이 밝음을 위해 그 사람이 얼마나 큰 어두움을 견뎌냈는지는 잘 헤아리지 못한다. 가령 다른 사람들이 연애, 유흥, 여행 등으로 보낸 20대를 나는 도서관에서 외롭게 견뎌야 했다. 처음 미국에 온 1년 동안 나는 지옥과도 같은 삶을 경험했다. 그렇다고 나는 내 어두움을 상대방에게 이해해달라고 굳이 투정부리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모든 선택에는 스스로가 책임지고 감내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어른이 다 되어서까지 아이처럼 받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현재의 자신에게 엄격함으로써 미래의 자신이 더 나아지기를 기대하면서, 현재의 자신에게 만족함으로써 과거의 자신을 위로하는, 자신에 대한 엄격함과 만족함을 갖춘 사람만이 결국 내 주변에 남게 될 것이다. 기본적인 삶의 자세가 다르면 오랫동안 함께 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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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가슴2018.08.25 07:40


지난 몇 년 간 연구와 관련해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 중 하나는 세미나와 수업에서 발표하는 것이었다. 짧은 영어는 큰 방해가 되지 않는다. 마치 우리가 외국인의 서툰 국어를 기가 막히게 알아듣는 것처럼, 내가 개떡 같이 말해도 대부분은 찰떡 같이 알아듣는다. 


그간의 발표를 돌이켜보면 나는 한국 홍보대사와 다름 없었다. 내 연구가 오직 한국 이슈에만 초점을 맞춘 탓이었다. 청중들은 본의 아니게 한국의 예산 과정, 고등학교 배정 시스템, 9시 등교 제도, 국회의원 재산 공개 규정 등에 대한 이해를 강요 받았고, 얼마 전에는 "82년생 김지영" 책도 배워야만 했다.


우리나라 주제이기만 하면 다행인데, 나는 "발표는 내가 즐거워야 한다."는 믿음으로 이상한 시도를 자주 했다. 어려운 수식이 난무하는 경제학 특유의 건조한 프레젠테이션 사이에서 나는 약간 다른 길을 걸었다. 한일고 시절 영어 수업 후 학급 전원이 전멸하여 자고 있는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것이 바로 9시 등교의 필요성이 대두된 배경이다."라고 말한다든지, 레드벨벳 아이린 사진을 슬라이드에 올려놓고는 "이 아이돌 스타마저도 '82년생 김지영' 책을 읽었다는 사실만으로 몇몇 이상한 한국 남자들한테 비판받은 적이 있다."고 알려준다든지 등이 기억난다.


물론 이러한 시도들이 정신 나간 짓이었을 수도 있지만 "저 친구는 원래부터 저랬다."라는 암묵적 동의 하에 교수님들에게도 비교적 관대하게 받아들여진 것 같고, 그래서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자존감이 많이 사라지는 박사 과정에서 학생의 명줄을 쥔 교수님들의 작은 친절과 배려는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솔직히 일희일비하는 것이 대학원생의 삶이다.


나는 일비보다 일희가 많았다는 점에서 큰 은혜를 입었다. Christopher Taber, Matthew Wiswall, Jeffrey Smith 교수님 등은 누구를 지도교수님으로 해도 잡마켓에서 밀리지 않는 노동/공공경제학 분야의 저명한 사람들인데, 나 같이 부족한 학생에게도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고 시간도 많이 내어주셨다. 물론 자신들 면전에서 우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학생을 보며 적잖이 당황하신 탓도 있을 것이다. 한국 사람의 성향 상 혼자 속앓이하는 대학원생이 많지만, 나는 정반대로 속마음을 드러내는 길을 택했다.


그렇게 나는 좋은 교수님들과 함께 했다. 험난하다고 하는 위스콘신 경제학 박사 과정인데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사실 회사에서도, 군대에서도, 매번 새로운 곳에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다. 그간 꽃길만 걸었던 것인지 아니면 꽃을 심으며 걸었던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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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머리2018.08.25 07:19

"끼리끼리" 현상과 맞닿아 있는 최신 논문 두 편을 읽었다. 혈연, 지연, 학연 등 각종 연고주의 속에 살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끼리끼리 현상은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며 정책적으로도 생각해볼 부분이 많다. 꾸준히 공부할 가치가 있다.


칠레 사례를 이용, 명문대 입학이 고소득층/사회지도층 진입에 도움이 되는지에 관한 연구이다. 저자 Seth Zimmerman에 따르면 "개룡"은 설사 명문대에 입학하더라도 별볼일 없으며 오직 명문사립고를 나온 "이너서클"만이 명문대 효과를 누린다고 밝힌다. 이와 같은 냉정한 결과의 주된 메커니즘으로 끼리끼리 뭉치는 현상이 제시된다.

명문대 입학의 효과를 제대로 식별하기 위해 회귀단절법을 사용하였고, 이 효과가 어떠한 메커니즘을 통했는지 파악하기 위해 이중차분법을 사용하였다. 축약형(reduced) 계량경제학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읽으면서 계속 감탄한 논문이었는데, 역시나 American Economic Review에 실릴 예정이다.

칠레 사례라 외부적 정합성(external validity)에 문제가 없을까 생각했지만, 이곳의 교육 및 사회 환경을 보니 미국이나 유럽 등 다른 나라들과 아주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에도 적용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명문대(스카이), 대학시험(수능), 전공(경제학, 경영학, 법학, 의학), 이너서클(특목고, 자사고, 강남8학군) 등 상호 치환되는 부분이 많다.

어떠한 차이가 유발하는 효과를 식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차이가 발생하기 이전에 표본들의 특성이 서로 비슷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이 제도적으로 잘 드러나는 환경 중 하나가 바로 우리나라 아파트 청약 시장이다. 가점제 하에서 청약 신청자들의 인적 배경은 점수를 통제하면 얼추 비슷해질 것이고, 사실 그러할 필요도 없는 것이 청약 기준을 넘긴 지원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의 청약 결과는 임의적으로 결정되므로 청약 당첨 효과를 깔끔히 식별할 수 있게 된다.

데이터를 확보하면 우리나라에서 아파트가 그 사람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조금 더 과학적인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가공하고 정리하는 것이 문제일 뿐 정부 어디인가에 전산 기록은 남아 있을 것이라고 본다. 다만 국토부나 국세청의 담당 사무관이 그럴 만한 여력이 되는지, 개인정보보호법에 위반되는 것은 아닌지 등은 잘 모르겠다.

또한 현재 서울 아파트를 보면 굳이 그러한 수고를 들일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답이 자명해 보인다. 청약에 당첨되면, 이 아파트는 더 큰 부를 가져다 줄 것이고, 이 동네는 점점 더 범접할 수 없는 곳이 될 것이며, 이 집안은 대대손손 잘 살게 될 것이다. 위 논문에서 언급된 끼리끼리 현상은 여기에서도 관찰될 것으로 예상한다.


얼마 전 경제학과 세미나에서 "82년생 김지영" 책과 관련하여 나의 가벼운 연구를 소개했다. 여기에서 나는 남녀 간 시간 사용의 차이가 주로 선천적 차이 때문인지 후천적 차이 때문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고 했다. 선천적 이유가 클 것이라는 심증은 있지만, "남자는 일, 여자는 가정"이라는 사회적 관습 하에 습득된 후천적 요소도 무시할 수는 없어 보인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편인데 요즘의 한국 분위기에서는 이 정도의 자세조차도 적폐로 인식되는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다행히도 발표는 적당히 훈훈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짧은 영어로 이렇게 저렇게 민감한 이슈를 다루려는 내 처지가 안쓰러웠는지 발표 후 Jeffrey Smith 교수님이 논문 하나를 알려주셨다. 교수님이 알려주신 이 논문은 무척 흥미로운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가령 "남편이 아내보다 키가 크다." 혹은 "남편이 아내보다 돈을 잘 번다."처럼 평균적으로 관측되고 있는 현실은, 일견 "남편은 아내보다 키가 커야 한다." 혹은 "남편은 아내보다 돈을 더 잘 벌어야 한다."라는 전통적 관념에 의해 비롯된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위대한 경제학자 Gary Becker가 재등장한다. Becker가 말하는 "끼리끼리 매칭 현상(positive assortative matching)"을 고려하면 어떠한 선택으로부터 진실된 선호나 사회적 관습을 추론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령 한 여성이 "내 남편이 될 사람은 나보다 키가 작아도 괜찮아."라는 사회적 관습에 반한 선호를 지녔더라도 실제 매칭은 키 큰 남자와 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관측되는 결과에서 오직 전통적 관념을 탓하는 것은 어려워진다.

이 논문의 분석은 성차별 이슈에서 흔히 언급되는 "남자는 일, 여자는 집"과 같은 사회적 관습의 영향력이 유전적 차이나 사회물리학적 역학과 비교했을 때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을 수 있다는 내 추론과 궤를 같이 한다. 다만 이 논문을 읽으면서 재미있었던 것은, 저자들도 세상이 무서웠는지 "To be clear, our results do not imply that gender norms do not exist."라고 명백히 적시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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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머리2018.08.21 04:12


이탈리아 사례를 이용하여 특정 직업의 진입장벽을 완화하는 정책이 해당 직업의 대물림을 줄였다는 내용의 논문을 읽었다. 세대 간 불평등을 직업 대물림의 관점에서 연구한 좋은 논문이다. 아직 작업 중인 것 같은데, 내용이나 분석을 종합해보면 좋은 저널에 출판될 것으로 예상한다. 논문의 제목("Knocking on parents' doors: Regulation and intergenerational mobility")도 재치있다.


어릴 적 나는 미국에서 공부하는 것 자체를 꿈 같은 일로 여겼다. 미국에서 공부하면 무엇이 될 수 있는지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거니와 또 모르는 것이었다. 단지 유학이라는 것 자체를 이루지 못할 꿈으로 여길 만큼 나에게 유학은 무지의 영역이었다. 주변에 유학에 대해 알려주는 사람도, 유학을 갔다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자신들의 부모처럼 미국에서 박사를 받고 한국에서 교수가 되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다. 미국 대학원에 있는 지인들 중 제법 많은 수가 교수를 부모로 두고 있다. 유소년기에 가장 많이 보고 또 배우는 사람이 부모이니까 일면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자신의 재능 때문이든 부모의 환경 때문이든 어느 정도의 연구 역량을 보여주면서 교수가 되는 것에 토를 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제도적으로도 많은 개선이 있어서 이제는 교수 임용에 있어 객관화된 실적 지표가 크게 작동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교수가 되기 위해 필요한 인맥, 정보 등 부모에게 물려 받을 수 있는 출발점의 차이를 무시할 수는 없어 보인다. 재미있게도 교수를 부모로 둔 사람들 중 몇몇은 그러한 중요한 차이를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고 별다른 문제의식도 느끼지 않는다. "아는 교수님이 엄마와 같이 공부했던 분이라 그 교수님한테 부탁하면 추천서는 받을 수 있어요," "아빠 지도교수님이 제가 지원하는 곳 회사 사장님이라 거기에서 인턴하는 것은 쉬워요."와 같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할 때면 잠잠해져가는 내 안의 계급적 열등감이 다시 고개를 들면서 세상 참 아니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교수라는 직업도 대물림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결국 교수가 되면 좋으니까 부모는 시키려고 하는 것이고 자식은 하려고 하는 것이다.


부모는 선택할 수 없고 나는 이미 태어나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일단 기득권이 세워둔 울타리를 최대한 넘어서는 것이고, 자신이 울타리를 세울 정도로 기득권의 중심에 들어섰을 때에는 과거의 서러운 마음을 되새기며 울타리를 낮춰주는 것이다. 기득권으로의 진입장벽을 낮추면서 발생하는 경쟁과 피로는, 그로 인한 부작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 정의를 위한 필요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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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14. 추가.


이코노미스트 창간 175주년 기념 에세이는 자유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엘리트 계층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함을 역설한다.


"Success turned liberals into a complacent elite. They need to rekindle their desire for radicalism"


LIBERALISM made the modern world, but the modern world is turning against it. Europe and America are in the throes of a popular rebellion against liberal elites, who are seen as self-serving and unable, or unwilling, to solve the problems of ordinary people. Elsewhere a 25-year shift towards freedom and open markets has gone into reverse, even as China, soon to be the world’s largest economy, shows that dictatorships can thrive. 


For The Economist this is profoundly worrying. We were created 175 years ago to campaign for liberalism not the leftish "progressivism" of American university campuses or the rightish "ultraliberalism" conjured up by the French commentariat, but a universal commitment to individual dignity, open markets, limited government and a faith in human progress brought about by debate and reform.


Our founders would be astonished at how life today compares with the poverty and the misery of the 1840s. Global life expectancy in the past 175 years has risen from a little under 30 years to over 70. The share of people living below the threshold of extreme poverty has fallen from about 80% to 8% and the absolute number has halved, even as the total living above it has increased from about 100m to over 6.5bn. And literacy rates are up more than fivefold, to over 80%. Civil rights and the rule of law are incomparably more robust than they were only a few decades ago. In many countries, individuals are now free to choose how to live and with whom.


This is not all the work of liberals, obviously. But as fascism, communism and autarky failed over the course of the 19th and 20th centuries, liberal societies have prospered. In one flavour or another, liberal democracy came to dominate the West and from there it started to spread around the world.


Yet political philosophies cannot live by their past glories: they must also promise a better future. And here liberal democracy faces a looming challenge. Western voters have started to doubt that the system works for them or that it is fair. In polling last year just 36% of Germans, 24% of Canadians and 9% of the French thought that the next generation would be better off than their parents. Only a third of Americans under 35 say that it is vital they live in a democracy; the share who would welcome military government grew from 7% in 1995 to 18% last year. Globally, according to Freedom House, an NGO, civil liberties and political rights have declined for the past 12 years - in 2017, 71 countries lost ground while only 35 made gains.


Against this current, The Economist still believes in the power of the liberal idea. Over the past six months, we have celebrated our 175th anniversary with online articles, debates, podcasts and films that explore how to respond to liberalism's critics. In this issue, we publish an essay that is a manifesto for a liberal revival - a liberalism for the people.


Our essay sets out how the state can work harder for the citizen by recasting taxation, welfare, education and immigration. The economy must be cut free from the growing power of corporate monopolies and the planning restrictions that shut people out of the most prosperous cities. And we urge the West to shore up the liberal world order through enhanced military power and reinvigorated alliances.


All these policies are designed to deal with liberalism's central problem. In its moment of triumph after the collapse of the Soviet Union, it lost sight of its own essential values. It is with them that the liberal revival must begin.


Liberalism emerged in the late 18th century as a response to the turmoil stirred up by independence in America, revolution in France and the transformation of industry and commerce. Revolutionaries insist that, to build a better world, you first have to smash the one in front of you. By contrast, conservatives are suspicious of all revolutionary pretensions to universal truth. They seek to preserve what is best in society by managing change, usually under a ruling class or an authoritarian leader who "knows best".


True liberals contend that societies can change gradually for the better and from the bottom up. They differ from revolutionaries because they reject the idea that individuals should be coerced into accepting someone else's beliefs. They differ from conservatives because they assert that aristocracy and hierarchy, indeed all concentrations of power, tend to become sources of oppression.


Liberalism thus began as a restless, agitating world view. Yet over the past few decades liberals have become too comfortable with power. As a result, they have lost their hunger for reform. The ruling liberal elite tell themselves that they preside over a healthy meritocracy and that they have earned their privileges. The reality is not so clear-cut.


At its best, the competitive spirit of meritocracy has created extraordinary prosperity and a wealth of new ideas. In the name of efficiency and economic freedom, governments have opened up markets to competition. Race, gender and sexuality have never been less of a barrier to advancement. Globalisation has lifted hundreds of millions of people in emerging markets out of poverty.


Yet ruling liberals have often sheltered themselves from the gales of creative destruction. Cushy professions such as law are protected by fatuous regulations. University professors enjoy tenure even as they preach the virtues of the open society. Financiers were spared the worst of the financial crisis when their employers were bailed out with taxpayers’ money. Globalisation was meant to create enough gains to help the losers, but too few of them have seen the pay-off.


In all sorts of ways, the liberal meritocracy is closed and self-sustaining. A recent study found that, in 1999-2013, America's most prestigious universities admitted more students from the top 1% of households by income than from the bottom 50%. In 1980-2015 university fees in America rose 17 times as fast as median incomes. The 50 biggest urban areas contain 7% of the world's people and produce 40% of its output. But planning restrictions shut many out, especially the young.


Governing liberals have become so wrapped up in preserving the status quo that they have forgotten what radicalism looks like. Remember how, in her campaign to become America's president, Hillary Clinton concealed her lack of big ideas behind a blizzard of small ones. The candidates to become leader of the Labour Party in Britain in 2015 lost to Jeremy Corbyn not because he is a dazzling political talent so much as because they were indistinguishably bland. Liberal technocrats contrive endless clever policy fixes, but they remain conspicuously aloof from the people they are supposed to be helping. This creates two classes: the doers and the done-to, the thinkers and the thought-for, the policymakers and the policytakers.


Liberals have forgotten that their founding idea is civic respect for all. Our centenary editorial, written in 1943 as the war against fascism raged, set this out in two complementary principles. The first is freedom: that it is "not only just and wise but also profitable…to let people do what they want." The second is the common interest: that "human society…can be an association for the welfare of all."


Today's liberal meritocracy sits uncomfortably with that inclusive definition of freedom. The ruling class live in a bubble. They go to the same colleges, marry each other, live in the same streets and work in the same offices. Remote from power, most people are expected to be content with growing material prosperity instead. Yet, amid stagnating productivity and the fiscal austerity that followed the financial crisis of 2008, even this promise has often been broken.


That is one reason loyalty to mainstream parties is corroding. Britain's Conservatives, perhaps the most successful party in history, now raise more money from the wills of dead people than they do from the gifts of the living. In the first election in unified Germany, in 1990, the traditional parties won over 80% of the vote; the latest poll gives them just 45%, compared with a total of 41.5% for the far right, the far left and the Greens.


Instead people are retreating into group identities defined by race, religion or sexuality. As a result, that second principle, the common interest, has fragmented. Identity politics is a valid response to discrimination but, as identities multiply, the politics of each group collides with the politics of all the rest. Instead of generating useful compromises, debate becomes an exercise in tribal outrage. Leaders on the right, in particular, exploit the insecurity engendered by immigration as a way of whipping up support. And they use smug left-wing arguments about political correctness to feed their voters’ sense of being looked down on. The result is polarisation. Sometimes that leads to paralysis, sometimes to the tyranny of the majority. At worst it emboldens far-right authoritarians.


Liberals are losing the argument in geopolitics, too. Liberalism spread in the 19th and 20th centuries against the backdrop first of British naval hegemony and, later, the economic and military rise of the United States. Today, by contrast, the retreat of liberal democracy is taking place as Russia plays the saboteur and China asserts its growing global power. Yet rather than defend the system of alliances and liberal institutions it created after the second world war, America has been neglecting it - and even, under President Donald Trump, attacking it.


This impulse to pull back is based on a misconception. As the historian Robert Kagan points out, America did not switch from interwar isolationism to post-war engagement in order to contain the Soviet Union, as is often assumed. Instead, having seen how the chaos of the 1920s and 1930s bred fascism and Bolshevism, its post-war statesmen concluded that a leaderless world was a threat. In the words of Dean Acheson, a secretary of state, America could no longer sit "in the parlour with a loaded shotgun, waiting".


It follows that the break up of the Soviet Union in 1991 did not suddenly make America safe. If liberal ideas do not underpin the world, geopolitics risks becoming the balance-of-power, sphere-of-influence struggle that European statesmen grappled with in the 19th century. That culminated in the muddy battlefields of Flanders. Even if today's peace holds, liberalism will suffer as growing fears of foreign foes drive people into the arms of strongmen and populists.


It is the moment for a liberal reinvention. Liberals need to spend less time dismissing their critics as fools and bigots and more fixing what is wrong. The true spirit of liberalism is not self-preserving, but radical and disruptive. The Economist was founded to campaign for the repeal of the Corn Laws, which charged duties on imports of grain into Victorian Britain. Today that sounds comically small-bore. But in the 1840s, 60% of the income of factory workers went on food, a third of that on bread. We were created to take the part of the poor against the corn-cultivating gentry. Today, in that same vision, liberals need to side with a struggling precariat against the patricians.


They must rediscover their belief in individual dignity and self-reliance - by curbing their own privileges. They must stop sneering at nationalism, but claim it for themselves and fill it with their own brand of inclusive civic pride. Rather than lodging power in centralised ministries and unaccountable technocracies, they should devolve it to regions and municipalities. Instead of treating geopolitics as a zero-sum struggle between the great powers, America must draw on the self-reinforcing triad of its military might, its values and its allies.


The best liberals have always been pragmatic and adaptable. Before the first world war Theodore Roosevelt took on the robber barons who ran America's great monopolies. Although many early liberals feared mob rule, they embraced democracy. After the Depression in the 1930s they acknowledged that government has a limited role in managing the economy. Partly in order to see off fascism and communism after the second world war, liberals designed the welfare state.


Liberals should approach today's challenges with equal vigour. If they prevail, it will be because their ideas are unmatched for their ability to spread freedom and prosperity. Liberals should embrace criticism and welcome debate as a source of the new thinking that will rekindle their movement. They should be bold and impatient for reform. Young people, especially, have a world to claim.


When The Economist was founded 175 years ago our first editor, James Wilson, promised "a severe contest between intelligence, which presses forward, and an unworthy, timid ignorance obstructing our progress." We renew our pledge to that contest. And we ask liberals everywhere to join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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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머리2018.08.19 01:10


정말 모처럼 Larry Summers의 거시경제 관련 짧은 글을 읽었다. 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를 고령화(aging) 및 개방경제(open economy)와 연결시킨, 간단하지만 통찰이 돋보이는 글이다. 구조적 장기침체 하에서 고령화의 부정적 영향을 지적하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재정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Dean Corbae 교수님의 1학년 거시경제학 수업을 생각나게 하는 논문들이었다. (링크 1, 2


미국에 온 이후 응용미시경제학 논문만 읽은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이 "경제학" 하면 떠올리는 거시경제학이나 국제경제학은 거의 쳐다보지 않았다. 최근에도 미중 무역분쟁, 터키 위기 등 따라가야 할 이슈가 많아 보이지만, 미약한 의지로 인해 거의 그러지 않고 있다. 그러나 회사에서 맡았던 일은 역설적이게도 대부분 국제 경제와 관련된 것들이었고, 이들을 여전히 좋아하는 편이다. 당장 앞에 보이는 밥그릇을 두고 개처럼 싸우는, 그러한 첨예한 국내 이해관계에 직접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방관자적 성향이 없지 않아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미시적 수완과 거시적 안목을 모두 갖추는 일은 무척 어렵다. 국내외 환경을 이해하고 대안의 효과를 분석하고 이해관계자를 설득하는 등의 복잡다단한 일련의 정책 과정을 곰곰이 따져 보면, 이것은 과학도 정치도 아닌 예술의 영역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각자가 맡은 전장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례한 말이겠지만, 한걸음 물러나 관조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참 아름답다는 표현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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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가슴2018.08.10 06:05


현명한 어른에게 조언을 구하니 불투명했던 앞날이 한결 분명해진다. 수십 번을 읽을 정도로 가슴에 와닿았다.


학교에 남으면 무엇이 좋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때마다 괜찮은 연봉, 많은 자유시간, 높은 자율성 등 결국 "편함"으로 귀결되는 대답에 나는 매번 의아해했던 것 같다. "연구가 좋아서"라는 대답은 좀처럼 하지 못했다.


결국 나의 지향점은 부족한 연봉, 적은 자유시간, 낮은 자율성 등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일에서 보람을 느껴서"라는 대답을 할 수 있는 곳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러한 성향의 사람인 것 같다.


올해 겨울에 졸업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굳혔다. 지도교수님께도 오늘 메일을 보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수 있는 박사 과정 3년 반의 시간을 잘 마무리하고자 한다. 성심껏 준비하려고 한다.


------


젊었을 때 좋은 저널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은 자기 실현이고 세상에 대한 기여이고 무엇보다도 재미있고 박진감 있는 일입니다. 따라서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좋습니다. 다만 비용에 대해 고려할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혹시라도 공직에 계속 계실 것이라면, 출판은 그 가치에 대해 잘 아는 주위 몇 분들을 감동시키는 데는 상당히 중요할지 몰라도 인생의 큰 흐름을 좌우하지는 않을 겁니다.


살다보니 "이번이 마음껏 보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라고 생각하는 타이밍이 결코 한 번만 주어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몇 번의 그러한 기회에 정말로 한 번은 잘 챙겨서 놀 것인지, 아니면 역시나 쉬지 않고 바로 다음 일에 몰두하면서 "다음에 비슷한 기회가 오면 꼭 한동안 편하게 지낼 거야!"라고 다짐할 것인지, 그것 역시 사람 나름인 것 같습니다.


조금 더 느긋한 분들은 누릴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누리려 하지만, 살아가며 지켜야 할 것이 있다고 믿는 분들은 빨리 정리하고 돌아가려 합니다. 후자의 경우, 누리지 못하고 귀국한 것에 대해 오랜 시간 아쉬워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다시 같은 상황이 온다면 또 일찍 귀국할 것이라고 생각들 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몇 번 생각을 거듭하면서, 선택하지 않은 대안에 대해 약간의 아쉬움을 가지면서, 마음이 정리되어 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음이 흘러가는, 그 방향이 바른 답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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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가슴2018.08.04 01:56


축구하며 뛰노는 것이 너무 좋아서 표준전과나 동아전과의 파란 글씨를 숙제 공책에 옮겨 적는 일조차 귀찮아하던 초등학생 시절이었다. 무슨 신묘한 조화인지 모르겠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나에게 공부는 갑자기 관성 같은 것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여러 운동을 많이 하면서 키워온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 공부에 전이된 것은 아닐까 싶다.


유학까지 나온 것을 보면 이 관성이 조금은 오래 가는 모양이다. 물론 그 전에도 몇몇 증세가 있기는 했다. 2008년 행정고시에 통과하고 1년 가량 남은 대학생 시절, 이 황금기를 나는 안타깝게도 도서관에서 보냈다. 교양을 쌓는다는 명분으로 민법, 회계원리, 재무관리 등의 교과서를 슬쩍 들춰본 기억이 난다. 진주훈련소에서 군사훈련을 받을 때조차도 나는 관성에 굴복했다. 엄마한테 당신의 편지 대신 책이나 칼럼을 보내달라고 해서 받아읽고는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별짓을 다해도 결국 머릿 속에 남는 것은 공부한 내용이 아니라 공부한 시기의 잔상이라는 점이다. 사회대 도서관에서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잠깐 마주친 붉은 노을이라든지, 나눔고시에 가서 고시 공부했던 책 몽땅 팔고 건네 받은 몇 장의 지폐라든지, 밤에 몰래 나와 책을 읽었던 훈련소 화장실의 푸른 비상등이라든지, 이러한 것들만 내 머릿 속에 남아 있다.


아마 여기에서도 종국에 내 기억으로 변하는 것은 잡스러운 논문이 아니라 자전거 타면서 보았던 동네 풍경, 테니스 치고 코트에 드러누워 바라본 하늘 같은 것일 듯하다. 이번 주말에는 나이아가라 폭포와 토론토의 잔상을 내 머릿 속에 남기기 위해 떠날 예정이다.



------


18.08.07. 추가.


즐겁게 잘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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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가슴2018.07.31 02:22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바쁘고 힘겹고 지루한 평소의 삶에서 벗어나 종종 필요한 나만의 휴식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잘 보여준다.


일 밖의 삶에서는 공기 같은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좋다.


간직하고 싶은 침묵을 깨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사라진 관계, 그러나 함께 있다는 사실 자체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관계.

때로는 넓고 때로는 좁아서 종잡을 수 없는 자기만의 경계를 서로 알아서 잘 지켜주는 관계, 그리고 이러한 모습에 대해 굳이 캐묻지 않는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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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생활2018.07.28 05:41


이번 겨울에 박사를 마칠 때 장점은 "3년 반만에 한국에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3년 반만에 한국에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도교수님은 "그것은 너에게 달렸다."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원론적인 답을 하신다.


연구 적성이 아예 없지는 않아 보였는지 몇몇 분들이 학교로 갈 생각이 없냐고 물어본다. 나는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훨씬 더 크다고 답한다.


이 세상은, 논문 몇 편 쓸 수 있는 재량으로 쉽게 훈수를 둘 수 있는 곳이 아님을, 역설적으로 연구를 하면서 체득해간다. 그런데 연구를 하다 보면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도 한다. 이것을 보면 연구를 꾸준히 하지 않으면 또 안 될 것 같다.


테니스 치느라 흑면이 되어서 그러한가, 아무래도 백면이 될 팔자는 아니다. 그런데 서생으로서의 기질은 다분하다. 그렇다면, 대부분은 바깥에 싸돌아다니다가 가끔 방구석에서 공부를 하는 흑면서생이 되면 되려나.


회사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나는 박사 공부 기간을 최대한 단축하고 싶어하고 이를 항상 고민한다. 나중에도 참고할 수 있도록 내 생각을 남겨둔다. "그저 그런" 수준의 경제학 박사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사람의 생각이다.


일반적으로 경제학 박사 과정은 "프릴림(prelim exam) 통과 (1학년) → 페이퍼퀄(field paper) 통과 (2학년) → 코스웍(coursework) 완료 (3학년) →프로포절(dissertation proposal) 통과 (4학년) → 잡마켓 및 졸업논문 통과(advance to job market, oral defense & dissertation deposit) (∞)"의 과정을 거친다.


"1학년 때는 정말 공부만 한다. 3학기에 페이퍼퀄을 끝낸다. 4학기에 코스웍을 끝낸다. 6학기에 프로포절을 끝낸다. 최대한 빨리 졸업논문을 끝낸다."와 같이 하면 물리적으로 4년이 가능하다. 6년이 평균이고 7년도 흔하다는 사실에 비추어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다. 물론 각각의 단계가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시간을 절약하는 만큼 연구와 관련해서 포기해야 할 것이 제법 생긴다. 연구에 뜻이 크다면 나처럼 조급해서는 어려운 점이 많다.


"3편의 논문을 쓰고, 지도교수의 인정을 받아, 졸업논문 완성하기"를 하면 학위 받는 것 자체는 가능하다. 그러나 몇몇은 이를 두고 무늬만 박사, 즉 "가짜 박사"라고 평한다. 이들은 논문이 익명의 동료평가를 거쳐 출판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논문이 아니라고 한다. "혼자 논문을 쓰고, 지도교수 외 다른 익명의 연구자들에게 인정을 받아, 저널에 출판하기"까지 해야 "진짜 박사"가 되었다고 말한다.


가짜 박사와 진짜 박사, 어떤 길을 선택할지는 자신의 몫이다. 다만 최근 경향을 볼 때 "가짜 박사"를 생각하며 박사 과정에 오는 것은 그리 현명한 판단이 아닌 것 같다.


연구에 대한 동경이나 의지 같은 추상적인 것을 이유로 들 수도 있지만 그리 와닿지는 않을 것이다. 현실적인 이유에서 생각해볼 문제들이 많다. 박사 학위에 수반되는 기회비용이 상당히 커지고 있다. 옛날과 달리 경제학 박사 학위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없다. 박사 학위에 상응하는 연구 성과를 요구하는 곳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박사 대우 역시 예전에 비해 박해지는 느낌이 있다. 공급 과잉이라 그러한 듯하다. (한국인 미국 경제학 박사만 매년 70명 넘게 배출된다고 한다.)


"가짜 박사"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고, 그러려면 저널 출판이 필요하고, 회사로 돌아가면 논문들을 저널에 낼 시간이 없고, 그렇다고 졸업 시기를 늦추는 것은 싫고, 내 역량에 탑저널은 어렵고.


이러한 이유로 "4년 졸업 + 평범한 저널 2개"라는, 나름 타협점이라고 생각한 목표를 세웠다. 그런데 이것을 타협점으로 생각한 자체가 오만이었던 것 같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 셀 수 없을 만큼의 논문 리젝을 겪으면서 알게 되었는데 논문 리뷰 기간이 대체로 1년 이상이다. 졸업 전 저널 출판을 위해서는 많이 부지런해야 한다.


회사원에게 저널 출판이 옳은 선택인지는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생각은 바뀔 수 있는 법인데, 이들을 저널에 출판하면 더 이상 바뀌지 않는 견해로 여겨질 것 같은 어려움이 있다. 그렇지만 현실적인 이유에서 단순한 이분법도 필요하다. 저널에 출판이 안 된 논문은 이 세계에서 의미가 없다. 90% 완성? 이러한 구분은 없다. 출판되면 100%, 아니면 0%이다. 미래의 세상이 생각의 변화에 대해 조금 더 관대해질 것이라고 기대하면, 저널 출판도 도전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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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머리2018.07.26 11:49


나는 개화기 배경의 드라마나 영화를 유독 좋아하는데, 마침 "미스터 션샤인"이 나와서 재미있게 보고 있다. 김태리라는 배우에 흥미가 동해 몇몇 인터뷰를 읽어보았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관심과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고 밝힌 내용이 인상 깊다.


보통은 "저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라고 대답한다.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는 모습을 두고 "관심종자"라는 표현을 써가며 이를 천박하게 여기는 사회의 분위기가 없지 않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정욕을 바라는 자신의 마음을 숨겨야 한다는 방어 기제가 자연스럽게 작동하고는 한다.


나는 인정욕이 강한 편이다. 그래서 김태리의 인터뷰에서 괜히 위로를 받은 느낌이었다. 배우의 인터뷰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지만, 비교적 솔직하고 당당한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스터 션샤인" 말고 또 재미있게 보는 드라마는 바로 "라이프"이다. 종전의 의학 드라마들이 다루지 않은 시사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바로 영리의료법인 문제이다. 여기에도 여러 차례 내 생각을 남긴 적이 있다. (링크 1, 2)


드라마가 보여주는 것처럼, 영리의료법인의 경우 이윤을 많이 창출하는 분과에 의료 서비스를 집중하려고 한다. 나의 문제의식은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는 것이다. 의료 서비스의 공공성이 일정 수준 보장된다면, 의료 서비스의 선택권 역시 보호받아야 할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투자개방형 병원의 도입은 의료 서비스의 차별화 및 전문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다.


세간에서 지적하는 문제점 중 하나는 영리의료법인의 도입이 국민들의 건강 수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근거가 불충분하다. 첨부한 학술 논문은 병원 소유 형태와 의료 서비스 성과 간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링크)


영리의료법인 도입에 따른 부작용은 여타 정책적 수단으로 보완하는 방향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유지하되 비급여 항목을 개편하여 재원을 충분히 확보한다면 정상적인 공공 의료 서비스 제공이 가능할 것이다. 오래 되었지만 여전히 유효한 측면이 많은 KDI 연구보고서를 참고한다.


때마침 다음 달 정도에 영리의료법인 이슈가 대중들의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최초의 영리병원인 제주 녹지국제병원이 운영될 수 있을 것인지 논의될 예정이다. (링크) 만약 최종 허가가 나면 이중차분법 등으로 좋은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드라마가 영리의료법인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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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가슴2018.07.23 21:28


모자란 사람으로서 감히 말하지만, 내 생각에 정치와 행정은 도덕보다는 경세에 가까운 영역이다. 뜻한 바를 이루어야 살아남는 곳이다. 이것을 쟁취해야 하고 놓치지 않아야 한다.


개천이 따뜻하면 좋겠지만, 개천은 욕심을 줄이거나 삶의 덧없음을 느낀 소수에게만 따뜻할 수 있을 뿐이다. 어렵사리 개천을 벗어난 입장에서 "이제는 따뜻한 개천을 만들어야 합니다." 류의 위선을 보이고 싶지는 않다. 결국 개천은 차가운 곳이었고 나는 돌아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누구나 개천을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 내가 만약 경세를 논한다면 뜻한 바는 바로 이것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나는 평등과 평화라는 인간적 가치 위에 자유와 경쟁이라는 자연적 법칙을 둘 것이다. 그렇게 각박한 세상이 그래도 더 많은 기회를 주면서 조금 더 정의로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법은 다를지라도 뜻한 바가 비슷하다면, 그리하여 "누구나 잘 사는 사회"를 같이 생각한다면, 궁극적으로는 함께 할 수 있는 법이다.


경세의 길에 들어선 사람으로서 자신을 도덕의 틀에 지나치게 속박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타인에게 엄격한 이상으로 자신에게 엄격했기에 그러한 극단적인 선택을 내린 것일까. 나라는 인간과는 본성부터 다른 귀한 사람이었기에 스스로에 대한 잣대 역시 높았을 것이다. 궂긴 소식을 접하며 안타까운 마음이 생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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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8_가슴2018.07.21 04:56


가까운 친구들이 결혼을 앞두고 있다.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그러한 친구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문제에 있어 마음은 점점 더 차갑게 식어가는데 머리는 점점 더 뜨겁게 타오르는, 이성은 다른 종류의 사람도 받아들여야 함을 말하는데 감성은 여전히 같은 종류의 사람에게 끌리는, 이래저래 설명하기 힘든 오묘함이 존재한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신은 조만간 좋은 사람 만나서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있다. 고민과 선택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해서 더욱 그러한 것 같다. 아직까지 정신을 못 차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진짜 그렇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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