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2019_생활2019.09.20 16:08


회사에서 학교로 오면서 많은 논문을 읽고 이와 관련된 글을 자주 남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생각만큼은 하지 못하고 있다. 은근히 바쁜 일상이다. 수업도 해야 하고, 논문도 써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고, 사람도 만나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한다. 그래도 내가 내 삶을 통제하면서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직장에 친한 동료가 있으면 나의 생산성에 어떠한 변화가 나타나는지 상당히 흥미로운 논문이 나왔다. 매우 재미있는 그림이다. 회사에서 나의 생산성이 낮았던 이유가 있었다. 가깝게 지낸 사람들이 많았다. 비슷한 이론 논문도 잠깐 읽는다. 회사에서 학교로 오니까 "직장 동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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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019_머리2019.09.07 18:18


정체성과 차별에 대한 고민은 나의 삶과 결부되어 끝없이 진행되고 있다. 아래 질문들에 대한 나의 답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 가지지 못한 사람을 위한다면서 왜 자신은 가지려고 하는가? 그리고 이 가짐의 핵심에 왜 학벌이 있는가? 모두가 용이 되고 강남에 살 수 없지만, 그렇다고 용이 되어 강남에 살고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용과 강남을 포기하라고 말할 자격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 스스로 위선자가 싫다고는 하지만, 그렇다면 완벽히 나쁜 놈은 될 자신이 있는가? 위선자 없이 나쁜 놈으로만 지도층이 구성된 세상이 과연 내가 생각하는 기회의 평등과 같은 정의를 지켜낼 수 있을까?


 - 내 자신은, 교수라는 안온한 직업을 배경으로 세상에 쓴 소리를 던지는 모습을 두고 위선적이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세상 전반에 걸쳐 적용되는 경쟁의 가치를 옹호하지만, 내가 속한 곳에 도입되는 경쟁의 부작용을 찾고 있지는 않은가? 교수가 되기 위해 그간 쏟아온 노력으로 스스로의 거친 소리를 비호하기에는 그 자격이 언제까지 유효할 수 있을까?


광주에 자리 잡은 지 일주일 정도 지났다. 차분하게 잘 정착하고 있는 것 같다. 이곳으로 오면서 몸과 마음의 평화라는 선물이 행운처럼 주어졌는데, 이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고 발췌해둔다.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 "386 세대유감"이라는 책이다. 최근 뉴스를 보면서 386세대, 강남 좌파 등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는 와중에 고르게 되었다.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현 중축세대의 환경과 가치관을 조금 더 알고 싶다.


136.

가슴 아픈 이야기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모든 학부모는 자녀교육에 '올인'하라는 것이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전쟁 같은 삶의 문법이라는 게 말이다. (...) 학벌 없이 진보의 리더십을 행사하는 게 매우 어려운 현실이 시사하는 게 뭔지 좀더 깊이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일단 기존 게임의 룰에 순응하고 나서 그 룰을 강요하는 체제를 바꾸겠다는 뜻을 탓할 순 없다. 다만 문제는 이 세상일의 대부분은 학벌주의라고 하는 게임의 룰에 순응하는 것에 의해 결정되며 이후 그 어떤 변화의 시도도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데에 있다. 달리 말하자면, 학벌의 값을 떨어뜨리려는 노력이 우선되지 않는다면, 대중의 일상적 삶은 좋은 학벌을 쟁취하기 위한 입시전쟁에 포획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변화의 동력 자체를 제거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의 제1차 이데올로기 전선은 좌우나 진보-보수가 아니라 학벌인 셈이다. 


145.

물론 모든 능력을 다 세습의 산물로 볼 수는 없으며, 그런 시각은 위험하기까지 하다. 지금 우리가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그 정반대의 것, 즉 모든 능력을 세습되지 않은 재능과 노력의 산물로 보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격차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 즉 능력주의다. 누가 이기고 지느냐의 차이가 점차 우연과 예상하지 못한 선택에 좌우되고 있는 것이 분명함에도, 그런 우연을 필연인 것처럼 가장하는 게 시대의 유행이 되고 있다.


148.

한국은 평등주의가 강한 사회라지만, 평등주의는 위를 향해서만 발휘될 뿐이다. 밑을 향해선 차별주의를 외치는 이중적 평등주의를 진정한 평등주의라고는 할 수는 없다. 


245.

한국은 '경쟁 과잉'과 '경쟁 과소'로 대변되는 '두 개의 나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사는 나라(을)는 경쟁 과잉이지만, 강자들이 사는 나라(갑)는 경쟁 과소다.


313.

즉,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모두 다 용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용과 미꾸라지의 격차를 해소하려고 애를 쓰는 게 아니라 모두 다 용이 되려고 각개약진 식으로 노력할 때에 일어날 수 있는 결과는 뻔하다. 지금과 같은 고통과 절망의 상황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그런 고통과 절망에서 탈출했다고 하는, 아니 어쩔 수 없이 탈출을 강요당한 일본의 '사토리 세대' 현상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323.

오히려 '체념'이나 '포기'를 동력 삼아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길을 모색해보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게 아닐까? 그간의 각개약진 방식을 연대와 협동의 방식으로 전환하는 데엔 반드시 '체념'이나 '포기'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즉, '전쟁 같은 삶'의 궤도 수정을 위해선 기존의 관성과 타성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192. 

민주화의 트로피를 들어올린 386세대는 중산층을 넘어 중상층의 사다리를 타는 꿈을 꾼다. 그런데 대의를 좇던 그들이 지난 30년 동안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한 것들이 적지 않다. 앞장서서 이 나라를 나쁘게 만들지는 않았지만, 물결치는 방향이 잘못됐음을 알고도 조용히 몸을 맡겨온 결과가 지금에 이르렀다


201.

세상이 이 지경에 이른 데에 더 큰 책임의식을 가져야 할 세대가 있을 터다.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크고, 가장 강력한 세대라 할 수 있는 386세대를 바라본다. 가난과 전쟁 탓에 못 먹고, 못 입고, 못 배운 부모 세대 등에 올라타 독재자가 허용한 효율과 성장의 과실을 맛보며 10대를 보내고, 두 번째 독재가가 교육의 평등을 설파하며 내건 교육개혁조치의 수혜로 20대를 열었던 386세대. 이어 반독재자가 내민 200만호 아파트 건설 카드와 청약통장 덕에 일찌감치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얻어 중산층에 진입했으며, IMF 외환위기의 파고조차 비껴간 운 좋은 세대. 시대가 선사한 거듭된 운을 실력이라 믿으며 불운한 뒷세대에게 '우리는 안 그랬다'며 '노오력'을 강조하는 이 사람들 말이다. 


219.

털끝만큼의 권력이라도 있다면 한 톨도 낭비할 수 없다는 집착, 옳은 것과 그른 것의 경계가 흐릿한 지대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는 염치, 결국 불의보다 불이익에 민감해진 우리 사회 양심의 모습을 386세대는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이 정도쯤이야' 하는 허술한 양심의 벽은 지난 30년간 시대가 부여해준 호의와 그 속에서 이룬 성공스토리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그건 반칙이야'라고 외치는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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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019_가슴2019.08.23 18:32


조국 법무부장관 내정자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예전에 이 분의 글에 대한 소고를 끄적였던 기억이 난다. 내정자의 위선적인 모습에 대해서 수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그간 정의를 표방해왔던 사람에 대한 배신감이 크게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경제학의 기본원리를 단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사람은 인센티브에 반응한다."를 선택할 것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 예쁜 사람과 만나고 싶다, 좋은 직장을 가지고 싶다 등등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기본적인 욕구가 인센티브에 반응하는 보통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인센티브가 있을 때 반응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기회가 있을 때 그것이 편법이더라도 합법의 테두리 안에 있다면 내 스스로는 그 선택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고백한다. 지금 서로 비교가 되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도 조국 전 민정수석도 그랬고, 두 분 모두 이해가 된다. 자기이익을 위해 기회를 잘 활용하는 보통 사람의 모습이다.


두 분을 다르게 만드는 부분은 무엇일까. 인센티브에 반응하는 사람의 동물적 본능을 개인의 의지 혹은 사회의 규율로 제어하는 것이 사람과 동물을 다르게 만드는 핵심 요소이다. 본능을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세상은 동물의 왕국과 다를 것이 없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차이가 생긴다. 어느 수준만큼의 본능을 제어해야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되는가? 사람마다 사회마다 기준이 다르다. 본능에 가까운 길을 택하면 보수적인 사람이 되고 솔직한 사람이 되지만, 나쁜 놈이 된다. 이성에 가까운 길을 택하면 진보적인 사람이 되고 정의로운 사람이 되지만, 위선자가 된다.


나쁜 놈이 될 것인가 위선자가 될 것인가, 자주 생각했던 문제이다. 나는 자기모순자가당착을 극복할 자신이 없었다.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나를 겨냥하는 시간의 힘도 무서웠고, 스스로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래서 굳이 따지자면 나는 전자의 길을 택했다. 그래서인지 나의 걱정거리를 모두 극복한 것처럼 구는 분들의 언행을 곱게 바라보지 못하는 편이다. 자기객관화가 부족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위선과는 별개로, 그러한 사람들이 공직자로서 부적합한지에 대해서는 생각을 달리한다. 공직은 성인군자가 아니라 경세가를 필요로 한다. 즉 공직은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의 최우선 목표를 가장 잘 달성할 수 있는 사람이 차지해야 한다. 따라서 현재 법무부의 최우선 목표를 가장 잘 달성할 수 있는 사람이 내정자라면, 내정자가 적임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공직에 경세가를 앉혀야 한다는 말이 위선자의 입에서 나오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은 있다. 대의를 외치면서 사욕을 챙겨왔던 위선적인 사람이 공직에 들어서면 개과천선하여 대의를 위해 권력을 쓸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내정자가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신이 공익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확실한 신호를 주는 것이다. 자신의 가장 큰 부분인 서울대학교 교수직을 내려놓음으로써 백의종군하겠다는 믿음을 사람들에게 심어주어야 한다.


대의민주주의 하에서 최고권력자는 국가의 최우선 목표를 세우는 권한을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설령 그 목표가 나의 철학과 다르더라도 일단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 목표를 점차 바꾸는 노력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 국가의 현 공직이 추구하는 목표가 현 사회의 수준이라고 생각하고, 그 수준을 높이는 것이 학교에 있는 사람들이 중장기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경제학이 멋진 학문이다. "사람은 인센티브에 반응한다."는, 사람의 본성을 이해하는 이 한 문장이 세상의 많은 것을 꿰뚫는 지혜가 된다. 세상이 이 기본원리를 제대로 이해하면 많은 사람들이 살 만한 사회를 만드는 것도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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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9.08.24 01:43 [ ADDR : EDIT/ DEL : REPLY ]
    • 언제부터인가 내 배가 아플 때 "나는 더 이상 배 아프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저 사람도 배 아프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이겨낸 것 같아요. 저는 다른 쪽 성향인 사람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내정자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쁘게 사시는 것 같아요~~ 세상살이가 쉽지 않네요 ㅎㅎ

      2019.08.24 10:07 신고 [ ADDR : EDIT/ DEL ]

2019/2019_생활2019.08.15 21:57


매번 그렇다. 항상 120%의 확신을 갖고 새로운 곳으로 떠나지만, 지냈던 곳에 그만큼의 마음을 남긴다. 떠날 때마다 그곳을 영영 떠난다고 생각하지 않고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고 여긴다. 남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모든 마음을 주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기도 하다.


나와 관련된 일에서 자주 자기비판적이기는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삶에 대한 자세 자체는 긍정적인 편이기 때문에, 어느 한 곳에 긴 뿌리를 내려도 충분히 만족하며 살 수는 있어 보인다. 어디에서든 온 정을 주면서 잘 살아낸다. 그간 거쳐왔던 곳들에 내 온 정을 주었고, 앞으로 거쳐갈 곳들에도 내 온 정을 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아직은 어느 한 곳에 오래 머무르고 싶지 않다. 한 곳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나도 모르는 마음 어딘가에 굳게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그리하여, 목표를 세우고 이루고, 또 목표를 세우고 이루고, 다시 목표를 세우고 이루고, 이 과정을 그치지 않고 반복하게 된다. 왜 그러는지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내 삶에는 역마살이 제대로 끼어 있다. 내 의지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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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019_머리2019.07.31 20:48


흥미에 기초해 여러 글을 무작위로 읽다가 혼자 작업 중인 논문에 참고할 수 있는 좋은 논문을 발견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내 고민이 실력 있는 분들의 고민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지는 않구나 하는 안도감, 부족한 내 논문도 이들처럼 언젠가는 저널에 올라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겨서 그러한 것 같다.


성차별 이슈는 상당히 흥미로운데, 이를 임금격차 등이 아닌 시간분배의 관점에서 접근해보고 있는 논문이 하나 있다. 82년생 김지영 세대에 초점을 두고 성별로 일상시간 분배가 어떠한지 작업 중인 논문이다. 우연히 읽은 부부 교수님의 한 연구와 연구에서 소개된 참고문헌을 보면서 오랜만에 글을 보완했다. 조만간 열매를 맺었으면 좋겠다.


어떠한 차이가 차별로 해석되고 있는데 이것이 기호적 차별인지 통계적 차별인지, 더 나아가 다름의 이유가 선천적 이유인지 후천적 이유인지 밝혀낼 수 있다면 제대로 된 정책적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차별의 근본 원인을 탐구하는 연구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사회현상은 실험이 어렵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갈 길이 멀어서 많은 사람들의 흥미가 고갈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모교 이철희 교수님이 쓰신 논문 중 하나는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다. 한동안 머무를 곳이어서 그러한지 다시 한 번 주의를 기울여 읽게 되었다. 학교와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방법 중 하나로 5.18 운동의 여러 파급효과를 경제학적 관점에서 분석해보면 어떨까 잠시 생각했다.


이철희 (2015), 생애초기 조건이 건강과 인적자본발달에 미친 영향 - 자연적 실험을 이용한 경제학 연구.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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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019_가슴2019.07.27 23:51

동환이와 두환이, 20년 지기들과 천안에서 술을 마시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국에서 돌아온 후 어느 순간부터 삶이 새롭거나 재미있다는 생각이 잘 안 들고, 심하지는 않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우울감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태바한테 자주 털어놓는 고민이기도 하다. 그러할 때마다 태바는 원래 삶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라고 말해준다.

요새 "왜 살아야 하는가?"처럼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는 고민이 갑자기 떠오르기도 하고,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질문에 마땅한 답을 못 찾는다는 사실에 마음이 가라앉기도 한다. 누가 보아도 나는 밝은 축에 속하지만, 정작 내 자신은 약간의 우울감을 달고 사는 스스로의 모습을 느낀다. 물론, 학교로의 이직이 확정되면서 앞으로 논문을 저널에 출판하지 못하면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실제적 압박이 나를 짓누르는 탓도 있을 것이다.

토요일 오후, 도서관에 책을 읽으러 가는 길에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다. 고민 없이 신나게 물놀이 하는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만, 나에게 그러한 시절이 있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가 느끼는 우울감은 연애, 결혼, 직장생활 등과 무관하게 근원적인 것인 듯하다. 오랫동안 가깝게 지내온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없는 우울감을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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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019_가슴2019.07.21 18:28


주말에 서울 다녀오면서 여러 생각을 했다. 만약 학교 세미나에서 전문가를 초청할 기회가 나에게 주어지면 어떤 분을 초청할지 즐거운 상상도 해보았다. 지역대학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하여 KDI 이종관 박사님, 재벌과 전관 문제와 관련하여 경북대 최한수 교수님, 대학 재정과 관련하여 서강대 김영철 교수님, 대학 신호효과와 관련하여 대구대 황진태 교수님 등이 떠올랐다. 직접 아는 분들도 있고 아닌 분들도 있다.


추천을 받아서 "아직도 가야할 길"의 사랑 파트를 읽어보았다. 책 전반에 종교적 색채가 깔려 있지만, 그와는 상관 없이 전체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각색해서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

사랑은 자기 자신이나 타인의 영적 성장을 도울 목적으로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이다.


자신을 확대하는 것은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노력이 뒤따르게 된다. 사랑은 노력이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음의 본질은 게으름이다. 사랑을 위해서는 게으름을 극복하고 두려움에 저항하고 싶은 마음과 싸워 미지의 미래 세계로 나아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진정한 사랑은 감정보다는 의지에서 나오고, 책임 있고 지혜로운 행동을 필요로 한다. 참사랑은 사랑으로 인해 압도되는 그런 느낌이 아니다. 그것은 책임감 있게 심사숙고한 끝에 내리는 결정이다. 사랑은 자기 훈육의 과정인 것이다.


사랑의 느낌에는 제한이 없지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누구에게 집중할지 선택해야 하고 사랑의 의지를 집중해야 한다.

===


세속적인 사람답게 위 책을 읽으면서 "이번 생은 처음이라" 드라마가 떠올랐다. 혼자 지내는 것이 편했던 주인공들은 나의 영역에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고, 이것은 서로의 중력을 깨뜨리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을 멀리 한다고 말한다. 책을 읽으며 이러한 핑계들이 사실은 자신의 게으름에 대한 변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외연을 확장시키는 것은 부던한 노력과 의지, 그리고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이직하는 나를 두고 마냥 부럽다고 하는 말을 요새 자주 듣는다. 그러나 내가 바라던 길에 들어서기는 했지만 한없이 좋지만은 않다. 심적 부담감이 상당하다. 학교에서의 새로운 출발이 무섭고,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도 걱정된다. 내가 맡은 일에서도 누군가와의 만남에서도 나의 경계를 확대해 나가야 할 시점에 겪는 두려움일 것이다.


여러 선배들이 잘 닦아온 길을 걷는 것도 벅찬 마당에 나만의 색깔을 칠하고 싶다는 마음이 동해 완전히 새로운 경로로 틀어버렸다. 솔직히 겁도 난다. 그러나 무섭고 걱정된다고 한없이 게으름을 피며 숨어서 지낼 수는 없는 것 같다. 자기 자신을 아낀다면 용기를 내어 두려움을 마주하고 어려움을 헤쳐 나가려는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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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019_생활2019.07.13 00:07


아래는 이직의 변.


기획재정부 사무관 생활을 매듭 짓고, 9월부터 전남대 경제학부 조교수로 이동할 것 같습니다.


많은 고민을 했고 큰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기재부는 떠나기 어려운 멋진 곳입니다. 뛰어난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기재부의 뚜렷한 장점입니다. 많은 것들을 배웠고, 행복한 기억들을 남겼고, 좋은 사람들을 사귀었습니다. 과거로 돌아가도 기재부를 첫 직장으로 택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을 직장에서도 찾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 이직을 결심합니다. 이직하면서 절대적 우선순위로 세운 원칙은 자율이었습니다. 개미 같은 구석이 있어서 하루가 꽉 찬 삶을 좋아하는데, 베짱이 기질 또한 다분하여 본인의지로 24시간을 채우고 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렇게 순전히 흥미로운 일을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마음에 제 몸을 맡기려고 합니다. 90년대생보다 더 90년대생스러운 자유분방함, 평소에는 차분하게 사유하며 살고 싶은 소탈함 같은 제 독특한 성격도 이직 결심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본인의 성향을 잘 담아주는 곳에서 불러주셔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빨리 사는 삶을 부러워하는 경우가 많지만, 부담감이 상당한 삶입니다. 빠른 만큼 준비가 부족하다는 자학에 시달리기 때문입니다. 행정고시에 일찍 합격하고 박사를 빨리 받았지만, 전체적으로 설익은 상태였다고 자평합니다. 이번에도 비슷한 마음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좋은 교수로서의 자질이 있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확신이 아직은 부족합니다. 감내해야 할 고통 같습니다.


대학 졸업 후 지난 10년 동안 사무관, 장교, 유학 등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남들과는 다른 새로운 길을 계속 개척하는 것 같아서 솔직히 겁이 안 나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걱정도 됩니다. 그렇지만 하고 싶은 일들이 있는데 능력과 노력이 닿을 때까지 도전해보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원래 남다른 짓에는 일가견이 있었지요. 그리하여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도전을 하며 살지 않을까요?


교수 생활하면서 사무관 생활과 비교할 부분이 자연스럽게 생기게 될 것 같습니다. 종종 이야기를 풀어내보려고 합니다. 연구, 수업 등등 미국에서 오래 해왔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참 새롭게 다가오네요. 눈 뜨는 날부터 눈 감는 날 걱정을 하게끔 만들어졌는지, 벌써부터 많은 것들이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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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13. 추가.


최근에는 공부할 시간이 있었는데도 의지가 별로 없었다. 그래도 얼마 전에 읽은 KDI 보고서(사회정책 효과성 평가를 위한 정책실험 도입방안 연구)는 인상 깊다. 연구자들의 좋은 제안에 현장에서 시기적절히 대응하지 못해서 많이 죄송스럽다. 조직은 결국 윗사람이 관심을 갖고 움직이는 부분만 변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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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8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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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019_가슴2019.05.27 21:47


여러모로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 아마도 내 자신을 헤아리지 못하고 주변을 보살피지 못해서 그러할 것이다. 과거의 모든 순간이 삶의 결정적 순간이었음을 과거를 벗어나야만 알게 된다는 사실이 야속하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는 말도 충분히 이해하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당장 그 순간에 마음이 힘든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가슴이 머리를 압도할 때가 있다.


그래도 나는 나의 부족함을 애써 회피하려 하기보다는 굳이 채워가려 하는 사람이었고, 앞으로도 그러한 사람이고 싶다. 미련이 남지 않을 때까지 욕심을 부리면서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가꾸고 싶다. 단 하루만 놓고 보았을 때는 그저 그러한 사람일지라도, 시간이 상당히 쌓여 있을 때는 많이 괜찮은 사람이 되어 있고 싶다.


지금의 어려움도 잘 헤쳐나갈 것이라는 믿음을 가슴 속 깊은 곳에 담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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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019_머리2019.05.16 21:17

 

나의 오랜 관심사인 차별 이슈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논문을 하나 읽었다. 기업의 임금 투명성이 성별 임금격차를 완화하는지에 관한 글이다.

 

2006년 덴마크에서 35인 이상 직원을 고용하는 기업에 대해 성별로 임금 현황을 공개하게 하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논문은 이러한 정책이 남녀 임금 및 기업 성과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이중차분법으로 분석하고 있다.

 

We examine the effect of pay transparency on gender pay gap and firm outcomes. This paper exploits a 2006 legislation change in Denmark that requires firms to provide gender dis-aggregated wage statistics. Using detailed employee-employer administrative data and a difference-in-differences approach, we find that the law reduces the gender pay gap, primarily by slowing the wage growth for male employees. The gender pay gap declines by approximately two percentage points, or a 7% reduction relative to the pre-legislation mean. In addition, the wage transparency mandate causes a reduction in firm productivity and in the overall wage bill, leaving firm profitability unchanged.

 

만약 논문을 조금 더 발전시킨다면, 임금 공개를 통해 성별 임금격차가 줄어든 결과의 메커니즘을 탐구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존재했던 부당한 성차별이 투명성 제고를 통해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부당한 성차별은 없었는데 다만 성평등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사회적 압박에 기업이 반응한 것인지 등등 다양한 경로를 생각해볼 수 있다. 현대 실증경제학이 아직 완벽하게 풀어내기 힘든 질문이기는 하다.

현장에서 내가 느끼는 정책의 핵심은 예산과 규제이다. 예산은 한정되어 있어서 문제이고, 규제는 자율을 침해해서 문제이다. 그리하여 "영리한" 정책은 돈도 덜 들고 자율도 덜 침해하면서 정부의 목표인 공공선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논문에서 소개하고 있는 덴마크의 정책은 매우 똑똑하다고 느껴졌다. 정보를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으니, 그야말로 투명성의 힘이다.

최근 주 52시간 근무와 관련하여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데 비슷한 정책 하나를 상상했다. 주 52시간 근무가 일과 삶의 균형을 대표하는 복리후생 지표이자 기업 입장에서 임금보다는 덜 민감한 지표이므로, 이를 실제로 시행하는지 공개하는 것은 순기능이 많을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현재 정부가 발표하는 고용동향, 물가동향 등과 같이 주 52시간 시행동향을 발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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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019_머리2019.05.11 16:28

 

일하다가 본 자료가 있는데, 갑자기 스타타로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다. 미국에서 경제학박사 받고 와서 스타타로 데이터를 다룬 기억이 없다. 일과 연구의 공존을 꿈꾸며 돌아왔지만 여건이 녹록지 않다.

 

 

 

하나, 보육시설에서 퇴소하는 보호종료아동에 대해 자립정착금이 1회 주어지는데, 이것이 시도별, 연도별로 다르다는 점에 주목해보았다. 미국에서는 하나의 정책도 주별로 집행시기 등이 달라서 패널 분석이 상대적으로 용이한데, 우리나라의 경우 시도별로 다른 정책 자체가 많지 않다. 설령 있더라도 데이터를 구하기 쉽지 않다. 

둘, 흔히 복지정책은 비가역적이라고 하지만, 있다가 없어지는 복지정책도 있었다. 지자체 자립정착금이 그러하다. 하필이면 정책대상이 사회에서 가장 목소리를 내기 힘든 요보호아동이라는 점에 주목해본다. 

필요한 정책연구 소재가 아닐까 싶다. 훌륭한 공저자가 있다면 같이 연구를 해도 좋을 것 같다. 여러 연구를 하고 싶은데 그러할 수 있는 물리적, 심적 여유가 없어서 많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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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019_머리2019.04.27 08:44

 

오랜만에 공부를 한다.

 

언제 어느 조직에서나 예외가 아니지만, 우리회사 실무자들 역시 윗사람들에 대해 다양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 재미있는 불만 중 하나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처럼 일한다는 것이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역할이 분명 다른데, 윗사람이 아랫사람처럼 일하니까 아랫사람이 고통을 받는다는 지적이다. 이와 같은 불만은 조직 내 어떤 사람은 무능한 자리에 오를 때까지 승진한다는 "피터의 법칙"을 떠올리게 만든다.

 

조직에서 누구를 승진시켜야 하는지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아랫사람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면 그에 대한 보답으로 윗사람으로 승진시켜야 마땅하다. 승진이라는 당근을 통해 아랫사람을 일하게 만드는 것은 일면 타당하다. 그러나 아랫사람으로서 일을 잘하는 것과 윗사람이 되어 일을 잘하는 것은 분명 다른 측면이 있다. 따라서 아랫사람으로 좋은 성과를 거둔 사람이 윗사람이 되어서는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할 수도 있다. 여기에 남기는 짧은 은 "조직에서 누가 승진하며, 이 승진은 기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와 관련하여 무척 흥미로운 분석을 하고 있다. 

 

So why might be firms be doing this, especially since the Peter Principle is a widely known phenomenon among managers? We provide evidence that the Peter Principle may be the unfortunate consequence of firms doing their best to motivate their workforce. As has been pointed out by Baker et al. (1988) and by Milgrom and Roberts (1992), promotions often serve dual roles within an organisation: they are used to assign the best person to the managerial role, but also to motivate workers to excel in their current roles. If firms promoted workers on the basis of managerial potential rather than current performance, employees may have fewer incentives to work as hard.

 

We also find evidence that firms appear aware of the tradeoff between incentives and matching and have adopted methods of reducing their costs. First, organisations can reward high performers through incentive pay, avoiding the need to use promotions to different roles as an incentive. Indeed, we find that firms that rely more on incentive pay (commissions, bonuses, etc.), also rely less on sales performance in making promotion decisions. Second, we find that organisations place less weight on sales performance when promoting sales workers to managerial positions that entail leading larger teams. That is, when managers have more responsibility, firms appear less willing to compromise on their quality.

 

Our research suggests that companies are largely aware of the Peter Principle. Because workers value promotion above and beyond a simple increase in salary, firms may not want to rid themselves entirely of promotion-based incentives. However, strategies that decouple a worker’s current job performance from his or her future career potential can minimise the costs of the Peter Principle. For example, technical organisations, like Microsoft and IBM have long used split career ladders, allowing their engineers to advance as individual contributors or managers. These practices recognise workers for succeeding in one area without transferring them to another.

 

AI 번역서비스가 무역을 증가시키는지에 대한 논문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선배 경제학자들이 좋은 논문을 번역하여 소개해주고 있다.

 

위 두 논문을 보니까 빅데이터를 한 번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이 기사에서 소개되고 있는 빅데이터가 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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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019_생활2019.04.21 19:51

 

상반기에 내려야 할 결정들이 앞으로 내 인생의 방향을 크게 좌우하게 될 것 같다. 일과 사생활 모두 중대한 선택에 직면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내 인생을 내 뜻대로 그려나가는 즐거움을 만끽하겠다. 오롯이 내가 책임지는 내 삶에 뿌듯함도 느낀다. 두렵기도 하지만 피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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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훌륭

    2019.04.25 11:1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019/2019_가슴2019.03.15 23:44


내가 시험을 치렀을 당시에 행정고시 3차 면접은 소위 말해 이상한 사람만 걸러내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튀지 말고 중간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보통이었다. 나는 이 통념에 의문을 가진 막내였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면접은 내 이름 석자를 면접관에게 각인시키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실제 면접장에서도 가장 통통 튀는 축에 속했다. 시쳇말로 관종이었다고 본다.


나이가 들면 튀고 싶어하는 성향이 조금은 가라앉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강해지는 것 같다. 자신감이 커져 가고 자신을 드러내는데 스스럼없는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다. 나의 편에 서주는 가족, 스스로 닦아온 능력, 누가 시키지 않아도 쏟는 노력, 자유분방한 기질 등이 결합하면서 그렇게 터무니없는 용기를 키워가는 것 같다. 가령 내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즐긴다.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나의 본래 모습을 숨기려 하지 않는 솔직함이 강해진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은 내 성향상 언제까지나 어느 한 곳에 머물러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서든 나는 내가 잠깐이라도 거쳤던 곳에서 내 이름 석 자가 나오면 그 사람 일 깔끔하게 했다는 말을, 성격 참 좋았다는 말을, 같이 지내는 동안 꽤 즐거웠다는 말을 듣고 싶은 욕심이 있다.


평일에는 정말 바쁘지만 주말에는 여유가 있다. 이번 주말에는 졸업 전 저널에 제출했던 논문을 고치고 여러 논문과 보고서도 읽으면서 차분히 보내려고 한다. 매 한 주 동안 바쁨과 여유로움을 왔다갔다하면서 앞으로 같이 지낼 사람과는 호흡이 비슷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예전에는 어느 한 쪽이 바쁘면 다른 한 쪽이 여유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요새는 많이 바뀌었다. 바쁠 때 같이 바쁘고 한가할 때 같이 한가로운 편이 서로에게 덜 미안하고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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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019_생활2019.03.03 21:43


봄이 되어 아빠가 풍기로 돌아갔다. 연휴에 시골에서 빈둥대고 싶어서 풍기에 잠깐 다녀왔다. 미세먼지가 너무 심해서 온돌방에 가만히 있었다.


귀국 후 공부는 거의 뒷전이지만, 일상의 곳곳에서 공부의 추억을 떠올리고는 한다. 온돌방에 쳐박혀 영화 "그린북"을 보는데 내 오랜 관심사인 모순적 정체성(oppositional identity)과 관련한 내용이 나와서 흥미로웠다. 인종차별과 계급차별이 있는 세상에서 출세한 흑인이 경험하는 삶은 어떠할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역시나 온돌방에 쳐박혀 스누라이프를 들어가보니 여전히 20대 남성들의 화를 느낄 수 있었다. 성차별과 관련하여서도 여러 공부를 했었다. 남녀 임금에 차이가 있다면 이것이 과연 성별에서 비롯되었는지에 대한 오랜 논쟁이 있다. 우버 택시기사를 분석한 John List 등의 최신 논문에 따르면 남녀 임금 차이는 성차별적인 요소보다는 합리적인 요소(경력이 더 많은가? 위험을 더 감수하는가?)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크다고 한다.


확실히 나는 90년대생보다 더 90년대생스러운 자유분방함이 있다. 이 기질을 숨기지 못한다. 회사의 친한 친구가 나보고 "너는 회사를 삼국지에 나오는 수경선생처럼 다니는 것 같다."라고 했는데 와닿는 구석이 있다. 현 회사에 욕심은 있지만 미련은 없다. 내 스스로도 참 묘한 감정으로 회사를 다닌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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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019_가슴2019.02.17 22:37

사람은 확실히 적응의 동물이다. 완전히 능숙해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일이 손에 잡히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사색하는 느낌이, 회사에서는 행동하는 느낌이 있다. 학교는 혼자서 차분히 있는 매력이, 회사는 여럿이 부산히 있는 매력이 있다. 둘 다 갖춘 곳은 이 세상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좋은 측면을 조금 더 보려고 노력한다.

무엇보다도 회사에는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좋다. 스스럼없이 지내는 친구들과 형누나들이 제법 있다. "뭐하냐?" 하면 옥상에서 바람 쐬고, "밥 안 먹냐?" 하면 식당에서 밥 먹고, "야근하냐?" 하면 휴게실에서 잡담하고, "시간되냐?" 하면 술집에서 한 잔 하는, 그러한 소소한 것들이 그냥 좋다.

불현듯 떠나고 싶으면 주말에 근처 도시에 놀러도 가보고, 괜히 해넘이를 보고 싶으면 근처 호숫가에 잠깐 나와 붉은 노을을 가만히 바라보고, 그러한 것들이 점점 나의 일상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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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말에 잠만잤는데 너랑 놀걸 그랬다

    2019.02.18 09:4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ㅋㅋㅋㅋㅋ 내가 암것도 안한다고 했는데 못봤냐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는건 참 좋은거지

    2019.02.19 01:5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019/2019_생활2019.02.10 19:12


귀국 후 당신들 집에 얹혀살고 있는 처지인지라 주말에 어디 가자고 할 때 거역할 수가 없다. 비자발적 효도 중이다. 당신들은 주로 산과 사찰에 간다. 집 뒷산인 원수산과 전월산부터 조금 더 멀리 조계산(송광사), 천태산(영국사), 계룡산(갑사), 광덕산(광덕사), 장태산 등지에도 다녀왔다.



태바가 산을 정말 좋아하는데 태바는 오는 5월에 결혼한다. 롱바는 이미 지난 주에 결혼했다. 태바와 태바 여자친구 둘 모두에게 아직 돌이킬 시간이 있다고 말하지만 가볍게 무시당하고 있다. 그래도 서울에 놀러갈 때 잠은 재워준다고 하니 그것으로 만족한다.


올해부터는 당신들도 아니고 태바도 아니고, 착한 여자친구와 함께 산에 올라보겠다. 알록달록한 색으로 예쁘게 물든 가을 산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태바가 댓글에 "ㅋ"를 몇 개나 달아놓을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담대한 목표를 담담히 세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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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너랑 같이 가을에 등산??다닐 착한 여자친구??????? 전월산.....

    2019.02.13 10:2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나는 노력보다 준비를 한다 ㅋㅋ 준비가 더 중요한 것 아니냐

      2019.02.17 22:08 신고 [ ADDR : EDIT/ DEL ]

2019/2019_머리2019.02.09 09:33


모처럼 시간을 내어 논문을 몇 편 읽었다.


한 편은 요새 회사 업무에서 느끼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번 정부의 경우 여러 중요한 정책 추진에 학교, 연구소, 시민단체, 이익단체 등이 참여한 위원회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인상이 있다. 아예 위원회가 정책을 결정하는 경우도 있고, 국회나 정부에 결정권은 있지만 위원회가 무시할 수 없는 권고를 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 소개하는 논문은 인천대 이인재 교수님의 글로 최저임금위원회의 운영원리를 경제학적 시각에서 보여주고 있다. 매년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는 근로자위원 9인, 사용자위원 9인, 공익위원 9인으로 구성되는데, 이들 중 중간자적 성향에 있는 공익위원의 의사가 사실상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내가 몸소 경험하고 있는 현 정부의 운영원리와도 맥이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다른 한 편은 나의 오랜 관심사인 "권력자의 인적사항이 공공자원 배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와 관련이 깊다. 대영제국 시절 최고권력자와 친한 통치자가 지배한 식민지 지역은 재정적 역량에서 부족함이 드러났다고 한다.

The results provide evidence that colonies that were exposed to a large share of patronage governors exhibit lower fiscal capacity today. This negative relationship is persistent over time and driven by the lower capacity to generate indirect tax revenue. Consistent with the negative impact of patronage governors on the generation of indirect trade taxes during the colonial period (Xu, 2018), the results thus provide evidence for a public finance channel through which colonial legacies may extend beyond independence. More broadly, the empirical findings resonate with an emerging empirical literature that identifies patronage as a key impediment to state effectiveness. The long-run results caution that patronage appointments - no matter how fleeting - can have substantial persistent effects.


마지막으로 다문화가정의 국가정체성과 관련하여 논문을 쓴 적이 있는데 우연히 비슷한 논문을 읽었다. 엄마가 영국 사회에 동화되려고 노력할수록 아이의 성적이 떨어지는 흥미로운 결과가 나타난다. 그 이유로 자원의 희소성을 말하고 있다. 주제가 무척 비슷하고 데이터만 다른 내 논문은 수많은 저널에서 계속 리젝되고 있다. 이 논문의 결과는 어떠할지 자못 궁금하다.


대학원 시절에 내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고 즐겁게 연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것이 취미로 작용했던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돌아갈 직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논문이 취미가 아닌 업이 되었을 때 과연 당시의 마음가짐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좋아하는 음악도 모닝콜이 되면 싫어지는 법이다.


Posted by 고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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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019_생활2019.02.02 13:03


나는 내가 관심 있는 것에 대해 혼자 오랫동안 생각하고 정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충분한 시간 속에 주변 방해도 안 받고 자료도 찾아보고 다른 사람들 의견도 구하면서 혼자 곰곰이 생각하고 내 의견을 이끌어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회사에서는 이러한 여유를 부릴 수가 없다. 신선처럼 살고 싶은 성향이 다분하지만, 어쨌든 그렇게 살 수 없는 길에 제 발로 들어섰다. 스스로도 회사에서 본래의 성향에 맞춰 살 수 있겠다는 기대는 예나 지금이나 하지 않는다. 신선의 삶을 기회비용으로 여길 만한 사리분별은 있다.


문제는, 회사의 요구와 나의 능력 및 성향 사이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강이 있다는 점이다. 간극을 예상하기는 했지만 이것이 내 생각보다 더욱 깊고 넓다. 재빠르고 기민하게 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중이다. 굼뜨고 어리숙하다.


더 큰 문제는, 당장 면피는 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내 자신을 압도한다는 사실이다. 설익은 것들이 자꾸 다 익은 것처럼 포장되어 나올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해 스스로 큰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다.


매일 같이 무시 당하고 혼나는 삶에 점점 내성이 생기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전에서 공개적으로 싫은 소리를 들을 때 기분이 가라앉는 것은 부인할 수 없고, 자연스레 앞으로 여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굉장한 압박감을 느낀다.


내 자신이 여러 측면에서 부족하다는 자책에 미국에 다녀왔다. 그리고 나름 공부를 일찍 잘 마치고 돌아왔다. 그런데 크게 변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여전히 맞지 않는 옷을 입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여하튼 많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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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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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원래 대부분의 직장일들이 별것아닌걸 그럴듯하게 포장하는일이지머 쇼잉만 잘해도 직장생활 90%는 성공인것같음 나도 잘 못하지만 ㅋㅋ 나머지는 운이다. 좋은 사람들과 일하는것도 운이지. 힘내슈

    2019.02.08 00:4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러게 ㅋ 재적응을 위해 약간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2019.02.09 09:02 신고 [ ADDR : EDIT/ DEL ]